천안 위례산, 부소산
천안 위례산, 부소산
1. 위치: 위례산(慰禮山, 523m) 부소산(扶蘇山, 460m) 월봉산(435.3m) 바랑산(392.7m) 북면산(맷돌봉)(480m)
2. 위치: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9. 산행코스 : 신덕2리 버스정류소 – 금성사 – 위례산 – 부소령 – 부소산 – 엽돈재 – 월봉산 – 바랑산 – 북면산(맷돌봉) - 양곡리 버스정류소 [산행거리: 21km, 산행시간: 5시간 29분]
10. 특징:
위례산
정상부에 위례성(慰禮城)이 있다. 하지만 이 성이 백제 온조왕이 세웠다는 위례성 또는 하남 위례성(河南慰禮城)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 따르면, 온조왕 13년(BC 6년)에 왕이 신하들에게 “동쪽의 낙랑(落浪)과 북쪽의 말갈(靺鞨)이 자주 침범하니 한수(漢水)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한 뒤,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백제의 첫 도읍지가 직산이라 하였다. 학자들은 대체로 하남 위례성이란 ‘강 남쪽의 위례성’이라는 뜻이며, 여기서의 강은 지금의 한강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에 따른다면, 백제의 도읍은 처음부터 한강 남쪽에 있었던 셈이 된다. 하지만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한강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또 다른 기록에 따른다면, 위례성은 한강 북쪽의 하북 위례성과 한강 남쪽의 하남 위례성으로 각각 나뉘게 된다. 지금 역사학계는 이 두 가지 해석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례성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울타리를 뜻한다는 해석이다. ‘위례’는 사방을 널리 둘러싼다는 뜻의 위리(圍籬)와 음이 비슷하므로 목책을 세우고 흙을 쌓아 만든 담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강 옆에 쌓은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위례’는 욱리하(郁里河), 아리수(阿利水)와 함께 한강을 가리키는 이두(夷讀)식 이름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왕이 사는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주서(周書)』에는 “백제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부르는데 중국 말로 왕(王)”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위례’는 어라와 함께 왕 내지 ‘크다’라는 뜻이며, 위례성은 왕성 혹은 큰 성[대성(大城)]이라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견해 중 가장 널리 인정되는 것은 ‘위례’가 담이나 울타리를 뜻한다는 첫 번째 해석이다.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서로 다르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학자들은 위례성이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조선 시대의 직산군 이동면] 지역이라고 믿었다. 천안시 입장면의 위례산 정상부를 감싼 위례산성(慰禮山城)이 그 흔적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인 학자들이 주로 유적·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적 방법으로 위례성의 위치를 밝히려 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남한산성·풍납토성처럼 한강 유역의 규모가 큰 성에 주목했다. 광복 이후에는 처음에 하북 위례성이 북한산 기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널리 인정되었다. 1970~1980년대에는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몽촌토성(夢村土城)에 비정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위례산성과 마주하여 경기도 안성시의 서운산성이 남향으로 축조되어 있어 주목된다. 일부 학자는 서운산성이 고구려 장수왕의 남쪽 끝 기지였고, 위례성은 백제 문주왕의 북쪽 끝 방어선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명칭 유래]
산의 정상부에 위례성이 있어서 위례산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위례성이란 명칭에서 ‘위례’는 우리말의 ‘울타리’를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위례산은 직산 위례성, 검은 산, 신산(神山)으로도 불린다. 위례산 비탈의 마을들은 명칭 및 유래와 관련하여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호당리의 호계리 마을은 옛날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던 곳, 당곡 마을은 산제당이 있던 곳, 운용리 삼용리 마을은 지형이 용처럼 생긴 곳, 장생이 마을은 과거에 장(場)이 섰던 곳, 군단이 마을은 백제 때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라고 각각 전한다. 위례산 정상부에는 위례성 터가 있는데, 둘레 약 550m, 높이 약 3m의 흙으로 쌓은 산성을 비롯하여 식수로 사용한 듯한 우물인 용샘, 문 받침돌로 여겨지는 큰 돌, 평평한 대궐 터 추정지 등이 있다. 용샘은 용천(龍泉), 위례산성 우물[위례성 우물]로도 불렸는데, 1945년 해방 전까지도 깊이 1m, 직경 1.5m 정도의 대접처럼 생긴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용샘에는 백제 시조 온조왕 관련 전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온조왕이 밤이면 용이 되어 우물로 들어가서 부여 백마강(白馬江)에서 놀다가 날이 밝으면 우물에서 나와서 다시 왕 노릇을 하곤 했는데, 그만 처남의 꾐에 우물에 빠져서 죽었다.”라는 것이다. 위례산 서남쪽으로 오르는 계곡은 경관이 수려하고, 산기슭에 금성사라는 사찰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주변에 독립 기념관, 유관순 열사 유적지, 천안 상록 리조트 등의 유적지 및 관광지가 있다.
부소산
천안 시가지를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해발 459m의 산으로 주변의 연속적인 산지와 이어져 있다. 북쪽으로는 엽돈재가 있으며, 북동 방향으로 서운산[547m]과 능선이 연결되고, 남서쪽으로 부수문이 고개를 지나 위례산[523m], 성거산[579m], 태조산[420m]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부소산의 분수계를 기준으로 천안시의 서북구와 동남구가 나뉜다,
[명칭 유래]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에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부소령이 위치해 있다. 부소산이라는 명칭은 백제 시조 온조의 도읍인 위례성이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있었다는 직산 위례성설과 관련하여, 이 산이 위례산 바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또 부여족의 대이동과 관련되어 설명되기도 하고, 단군의 아들인 부소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천안을 비롯한 충청남도 부여와 경기도 개성의 부소산, 태백산의 부쇠봉 등 여러 곳에서 부소산과 같은 계열의 지명이 분포한다.
부소산 남쪽에 부소문이[부수문이] 고개가 있으며, 북쪽에 있는 엽돈재는 충청북도 진천군과 충청남도의 경계가 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산줄기이야기
금북정맥;
속리산 천황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칠장산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나누어진다. 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헤어진후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칠현산,서운산,성거산, 광덕산을 거쳐 백월산에서 산줄기는 다시 북서진하면서 덕숭산, 가야산, 일락산 등을 솟구치게 한후 은봉산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백화산등을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서서 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하고 서해바다로 가라않는다. 구간종주는 칠장산에서 안흥진으로 내려가면서 종주하는 약 279km정도 되며 14구간으로 나누어서 구간 종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