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보광사(普光寺)
파주 보광사(普光寺)
영조대왕의 효심이 깃들어 있는 사찰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천년고찰 보광사(普光寺)를 찾았다. 서울 은평구에서 고양의 벽제관지를 지나 양주에서 파주로 넘어가는 됫박고개를 넘어서면 오른편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622m의 고령산, 그 산자락에 보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광사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4년)에 도선국사가 왕명에 따라 창건했으며, 고려조에 들어서면서 원진국사와 도선국사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조선조에 와서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절집이 불에 타버린 것을 광해군 4년(1622년)에 승려 설미와 덕인이 법당과 승당을 다시 지어 중건했다. 그 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쌍세전과 나한전, 산내에 수구암 등을 지으며 중창했으나 6.25전쟁 때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탄 것을 1957년 이후 꾸준히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광사는 조선조 영조대왕의 효심이 깃들어 있는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82세로 가장 오래 살았으며, 재위기간 또한 가장 길었던 왕이다. 무려 52년간 왕위를 지켰던 그는 손자 정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끌었다. 그는 미천한 무수리 출신의 궁녀 소생이라는 개인사적 불행을 안고 있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요절한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당파싸움의 와중에서 아들 세자(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임오화변(壬午禍變)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이전의 그 어느 왕보다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성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보광사가 있는 광탄면 영장리 인근에는 조선조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무덤 소령원(昭寧園)이 있다. 숙빈 최씨는 무수리로 궁에 들어가 내명부 정1품인 숙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이다. 그리고 숙종과의 사이에 연잉군(뒤에 영조)을 낳았으며, 죽어 파주 광탄에 묻혔다. 효심이 지극했던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숙빈의 묘호(廟號)를 육상궁으로, 묘호(墓號)를 소령원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보광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등을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보광사를 소령원의 기복사(祈福寺)로 삼았다. 보광사 법당의 ‘大雄寶殿’(대웅보전) 편액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보광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고령사(高靈寺)였으나 영조가 절을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 보광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광사 대웅보전 오른쪽 위 높은 둔덕에는 왕실에서 세운 전각이 하나 있으니 바로 숙빈 최 씨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어실각(御室閣)이다. 숙빈 최씨는 비록 임금의 생모지만 후궁 출신이라 완고한 신분제사회에서 종묘에 안치되지 못했기 때문에 원찰인 보광사에 별도의 전각을 세워 신위를 모시게 된 것이다. 어실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의 아담한 규모에 사모지붕을 얹었다. 어실각으로 올라가는 오른편에는 제법 우람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 300년이 넘은 이 향나무는 영조가 어실각을 조성할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영조는 생모의 묘소인 소령원에 친필의 비문을 새겨 세웠으며, 보광사를 소령원의 원찰로 삼아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였으니 어실각과 더불어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에서 극진했던 효심이 전해진다. 또한 보광사는 대웅보전에 그려진 판벽화로 유명하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장중한 건물로 경사진 지형에 장대석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지었으며,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일반적으로 전각의 벽체는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보통이나 보광사 대웅보전의 벽체는 모두 판자를 끼워 구성한 판벽이다. 판벽은 회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져 벽화들의 수명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보광사 대웅보전의 판벽화는 짧은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용선인접도, 대호도, 노송도, 금강역사도, 관음도, 연화화생도 등 10점의 벽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벽화는 고종 35년(1898년)에 대웅보전을 중수할 때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반 사찰 벽화와는 달리 민화풍으로 그려져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밖에도 보광사 만세루 툇마루에는 길이가 287cm, 두께가 68cm가 되는 목어(木魚)가 걸려 있는데 다른 사찰에 걸려 있는 목어와는 달리 몸통은 물고기 모양이지만 부릅뜬 눈, 도드라진 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머리에 솟아 있는 뿔이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다. 또한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보광사의 내력을 명문으로 담고 있는 범종이 있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관음전, 나한전, 쌍세전, 산신각, 응진전, 원통전, 요사 등의 당우가 있다. 숭유억불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불교신앙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보광사는 숙비 최씨에 대한 영조의 지극한 효심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다. 보광사를 둘러보는 동안 경내 곳곳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영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