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비봉산, 이자산, 원적봉
영주 비봉산, 이자산, 원적봉
1. 산행지: 비봉산(飛鳳山427m), 이자산(二子山621m), 원적봉(963m)
2.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와 태장리 사이에 위치한 산
9. 특징:
■ 비봉산(飛鳳山427m)은 봉황형국으로 순흥(順興)의 진산이다. 산 모양이 봉황이 날으는 모양이라 비봉산이라 칭하였다.봉황이 날아가면 고을이 쇠퇴한다 하여 고을 남쪽에 누각을 지었다. 앞쪽에는 봉황이 깃들어 산다는 봉서루(鳳捿樓)를 세우고, 뒤쪽에는 봉황을 맞이한다는 영봉루(迎鳳樓)라 이름 지었다. 누각주변에는 봉황의 알로 상징되는 흙봉우리(조산)를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고, 마을주위에는 봉황이 깃들도록 오동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순흥(順興)은 고려 충렬왕과 충숙왕, 충목왕의 태를 연이어 묻은 곳이 되면서 순흥부로 승격 하였다. 그러나 조선 세조때 금성대군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단종복위 운동이 일어난 것이 발각되면서 순흥부가 폐지되고 풍기, 예천과 봉화로 세 조각나고 지금은 영주시 순흥면으로 쇠락한 고장이다.
■이자산(二子山621m)은 선조때 정승 유영경(柳永慶)의 둘째 아들(二子)이 서거하여 이 산에 입산 하였다 하여 이자산(二子山)이라 칭하였다.
유영경(柳永慶)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소북(小北)의 영수. 북인이 대북(大北) ·소북(小北)으로 분당될 때 소북파의 영수가 되었고 같은 소북인 남이공(南以恭)과의 불화로 자기추종자들을 이끌고 탁소북으로 분파하였다. 선조 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세자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광해군 즉위 후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 일파의 탄핵을 받고 경흥(慶興)에 유배, 사사(賜死)되었는데, 인조반정 뒤에 복권되었다.
■원적봉(963m)은 소백산 비로봉(1440m)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선 능선이 달밭재로 떨어졌다가 886봉을 일으키고 다시 가장 높은 봉을 일으켜 세우는데 원적봉이다. 주능선상에서 약 0.3km 떨어져있는 원적봉(961.0m)에는 삼각점(401재설/78.6건설부)이 있다.
참고: 들머리: 태장1리 마을회관
우리산줄기이야기
백두원적단맥
백두대간 小白산 毘盧봉(△1439.6)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달밭재-밀목재(770, 2.5)-圓寂봉 약0.3km전에 동쪽으로 二子산(613, 단맥)을 떨구고 圓寂봉(△961.0, 1.5/4)-△765.4봉(2.3/6.3)-욱금고개(470, 1/7.3)-도간재(370 1.5/8.8)-401.3봉(1/9.8)-363봉-931번지방도로 돌고개(250, 1.8/11.6)-老人봉(△376.7, 0.7/12.3)-263봉-3번군도 안심고개(210, 5.1/17.4)-石壁산(△276.2, 3.4/20.8)-도로(170, 0.6/21.4)-중앙선 철로를 지나 영주시 창진리 용두마을 서천변(150, 0.2/21.6)에서 끝나는 약21.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백두원적이자단맥
백두소백원적단맥 원적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641.3봉-二子산(613, 3.5)-임도(370)-353봉-915번지방도로 가랑고개(270, 3.4/6.9)-松鶴산(365)-△300.9봉-본마을(310, 3.2/10.1)-도로(210)-△268봉-영주시 아지동 단산천과 홍교천이 만나는 곳(150, 5.5/15.6)에서 끝이나는 약15.6km의 산줄기를 말한다.[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