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지도

鎭川郡 관내의 아름다운 山

꼴통 도요새 2018. 9. 27. 15:50

鎭川郡 관내의 아름다운 山

자료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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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뢰산(萬賴山)[611.7m]은 만노산(萬弩山)·금노산(今奴山)·금노산(今弩山)·금물노산(今勿奴山)으로도 불리는데, 고구려시대의 지명을 따서 그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 지역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만노태수로 부임하였는데 북으로 고구려, 서쪽으로 백제군과 대치하면서도 군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군민들이 평화롭게 지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덕성산(德城山)[519m]의 한 지맥이 서운산(瑞雲山)[547m]을 이루고, 다시 엽둔재[葉屯峙][344m]를 넘어 남방으로 뻗치어서 이루어진 산이다. 봄철이면 능선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산행하기에 좋다. 연곡계곡이 발원하며, 연곡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태령산(胎靈山)[421m]과 이웃하고 있다. 문화재로 보물 404호로 지정된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가 있다. 만뢰산정상에는 화가 소암 최양호가 제작한 장승이 서 있다. 장승은 대중이 좋아하는 해학적인 표정을 짓고 있으며, 뫼 ‘산(山)’자 형태를 갖추어 만뢰산이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임을 상징하고 있다. 인근 백곡면 대문리성대리는 마을 전체가 안개꽃 단지이다.


국사봉(國師峰)  360m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경계에 있는 산.

국사봉(國師峰)[360m]은 국사(國師)와 봉(峰)으로 나뉜다. 국사는 보통 국사당(國師堂)을 가리킨다. 국사당은 곧 서낭당으로 서낭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인데, 지방에 따라 조금씩 명칭이 다르다 성황당(城隍堂)으로 불리거나, 전라남도에서는 할미당, 경상북도에서는 천황당(天隍堂), 평안도에서는 국사당 등으로 불린다. 따라서 국사봉은 ‘국사당이 있는 산봉우리’를 뜻한다. 국사봉은 대낙골 골짜기 뒤에 있는 산으로 문백면 계산리 산직말마을 서쪽에 국사암(國仕岩)이 있고, 산직말마을에서 막골마을로 넘어가는 막골고개, 막골마을에서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 산리마을로 넘어가는 거멈고개가 있다. 국사봉남쪽에는 환희산(歡喜山)[402m]이 있다. 환희산진천읍 지암리문백면 봉죽리, 천안시 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자 뜻대로라면 ‘기쁨을 안겨 주는 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환희산은 하늘산과 관련된 어형일 수도 있다. 하늘산이 한으산을 거쳐 환희산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지명의 선행 요소 환희가 하느[하늘] 또는 하누와 대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하늘산은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환희산이 하늘산에서 변한 어형이라면 ‘높은 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사봉정상에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쌓은 토성인 국사봉산성(國師峰山城)이 있다. 국사봉

은 삼국시대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많은 도적 떼가 웅거하였다 한다.


두타산(頭陀山)  598m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괴산군 도안면, 증평군에 걸쳐 있는 산.

단군(檀君)이 팽우(彭虞)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려 온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자 팽우가 이 산으로 피해 머물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하여 머리 ‘두(頭)’자와 섬 ‘타(陀)’자를 써서 두타산(頭陀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부처가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인 두타산은 해발 고도 598m로 비교적 높은 산이다. 정상에서는 진천군의 너른 들판과 충청북도에서 가장 큰 초평저수지,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보강천, 북서쪽의 초평천, 북쪽의 원남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산 정상 산성 부근에는 갈대밭이 우거져 있다. 중부고속도로 진천 IC를 지나 증평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4호선 초평삼거리에서 용정교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두타산이 나온다. 증평 IC에서 진천 방면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 주변의 초평저수지붕어마을로도 유명하다. 두타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이 있다. 둘레 약 1㎞, 높이 1.2m, 폭 2.7m의 규모로 성안에 2개의 우물터가 있고, 가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 상산 8경 중 하나인 고찰 영수암(靈水庵)을 산자락에 품고 있다.

봉화산 (烽火山)  416m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에 위치하고 있는 산.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산이라고 하여 봉화산, 봉화뚝으로 불리운다. 소나무가 무성한 솔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이는 지명으로 소을산(所乙山), 소인산(所仁山), 소을산(蔬乙山), 소월산(所月山) 등이 있다.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문안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미호천을 둘러싼 평야와 청주 방면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진천읍내가 조망된다.
산 정상에 소흘산(所訖山) 봉수대라고도 불리우는 봉화산 봉수 터가 있어 남쪽으로 청주의 거차대산(巨次大山)의 봉수를 받아 북쪽으로 충주의 망이산(望夷山) 봉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문안산(文案山)  416m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 사석리, 행정리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노적가림처럼 생겼다 하여 노적봉이라고도 하나 이 산의 맞은 편 산인 봉화산(烽火山)의 안에 있다하여 문안산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안산(文案山)으로 쓰고 있고, 또문한산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서쪽의 태령산, 동쪽의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백곡천성암천의 분수계가 되어 진천읍의 생활권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문안산에는 문안산성이 위치하고 있는데 1.2㎞의 돌로 쌓은 성으로 신라에서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를 머물게 했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중요한 군사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봉화산과 사이에 잣고개가 위치하고 있어서 진천군의 남쪽 관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진천읍
에서 승용차로 약 10분이 소요된다.




덕유산 (德裕山)  412m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와 천안시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
진천군의 남서쪽, 환희산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덕유산만뢰산사이에 천안시로 넘어가는 고개들이 위치하고 있다. 천안시와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천안으로 넘어가는 여러 개의 고개가 인접하여 있다.



무제봉(武帝峰)   574m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노원리백곡면 성대리·명암리에 걸쳐 있는 산.

무제봉(武帝峰)[574m]은 무제(武帝)와 봉(峰)으로 나뉜다. 무제는 무제골·무제당터·무제동·무제둠벙·무제들·무제바위·무제봉·무제산·무제터 등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전부 요소이다. 여기서 무제는 무우제(舞雩祭)를 가리킨다. 무우제는 기우제(祈雨祭)와 같은 말이다. 즉 ‘하지가 지나도록 가물 때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를 뜻한다. 따라서 무제봉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제사를 올리는 산봉우리’로 풀이된다. 다만 한자 표기는 그 뜻을 잃어 ‘무제봉(武帝峰)’으로 달리 대응시키고 있다. 무제봉은 무제산(武帝山)으로도 불린다.

백장나무골·방아골·구고개·삼밭골 따위의 여러 골짜기가 있고, 무제봉의 남동쪽으로 옥녀봉이 솟아 있다. 옥녀봉은 ‘옥녀가 금비녀를 꽂고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옥녀봉동쪽 아래에는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宮洞]이 있다.

무제봉에는 임도를 통한 등산로가 있어 오르기 수월하다. 당당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산세와는 반대로 계곡의 물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산행 코스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이월면 신계리 어당이마을에서 무제봉정상을 거쳐 옥녀봉을 지나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산행 거리는 8㎞,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다.

두 번째는 백곡면 성대리 모리마을에서 절골을 거쳐
무제봉정상에 오르고, 옥녀봉을 경유하여 백곡면 명암리 동말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산행 거리는 7.7㎞이고, 소요 시간은 4시간 30분이다. 무제봉에서는 지금도 가뭄이 심할 때에는 기우제를 지낸다. 무제봉남쪽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마을에는 한국순교복자수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양천산(凉泉山)  350.9m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

양천산(凉泉山)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양천을 양천(良泉)으로 보아, 산 정상에 좋은 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양을 양씨(梁氏)의 양으로 보아, 양씨 성을 가진 사람 1,000명이 피난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양천(養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을 구해 준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달리는 말의 형상을 한 분마형(奔馬形)으로 정상은 평원이며, 산중턱에 석지(石池)가 있어 찬물이 그치지 않고 솟아난다. 옥성교에서 그럭재마을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사양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사미마을 쪽으로는 경사가 가파르다.

문백면중앙부에 돌출되어 있는 산으로 해발 고도 350m이다. 산 정상에는 임진왜란 때 주민들이 피난했던 양천산성(凉泉山城)이 있다. 둘레 약 320m의 토성으로 임진왜란 때 중수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옥녀봉(玉女峰)  457m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457m]은 ‘옥녀가 금비녀를 꽂고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옥녀봉은 수백의 예가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신선봉(神仙峯)과 병용되는 것도 있다. 유래 또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 옥녀가 산발한 형국의 명당인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등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적인 특성은
옥녀봉은 산 모양이 매우 단아하고 수려할 때 붙여진다는 점이다. 한 예로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의 옥녀봉도 충북선 철도가 지나가기 전이나 청주·충주 국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진천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만뢰산(萬賴山)[611m] 주변에는 옥녀봉을 비롯하여 도덕봉(道德峰)·약수봉(藥水峰)·망해봉(望海峰)·국사봉(國師峰)·동고봉(瞳高峰)·노은봉(老隱峰)·수령봉(壽齡峰)·서운봉(瑞雲峰)이 솟아 있다. 만뢰산앞으로 보련골마을이 있고, 옥녀봉북서쪽으로 약 4.5㎞ 떨어진 곳에 무제봉이 솟아 있으며, 동쪽 아래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宮洞]과 이웃하고 있다.





장군산 (將軍山)  436.1m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 용덕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에 김유신장군이 공부하고 무술을 연마하던 산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군산은 산의 형세가 장군처럼 크고 우람하여 붙여진 이름에 불과하다. 실제 이 산은 주변에서 가장 높고 웅장하다.

백곡면의 중앙부를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안성시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칠현산, 칠장산의 두 산과 능선상으로 바로 이웃하여 연결되어 있다. 정상에서 서쪽 능선으로 하산하는 길은 수림이 매우 우거져 있어 심마니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장군산의 정상부에는 장군산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나 현재는 토루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장군산에서는 동쪽으로 넓은 진천평야가 위치하고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무제봉백석봉의 산줄기가 마주 바라다 보인다.




백석봉(白石峰)   468m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용덕리·성대리에 걸쳐 있는 산.

백석봉(白石峰)[468m]은 백석과 봉으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백석봉·백석골 또는 백송골[白松골, 栢松골] 등은 그 예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자로 미루어 백석봉·백석골은 ‘흰 돌이 있는 봉우리’나 ‘흰 돌이 있는 마을’, 백송골은 ‘흰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나 ‘잣나무와 소나무가 많은 마을’과 관련된다. 백석봉꼭대기에 하얀 차돌이 박혀 있다는 설명을 참고하면, 백석봉은 ‘흰 돌이 있는 봉우리’로 해석할 수 있다.

백석봉은 백곡면 명암리 양달말마을 앞 놋적골 골짜기 위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무제봉(武帝峰)[574m]이 솟아 있고, 무제봉남동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옥녀봉(玉女峰)[457m]으로 이어진다.

백석봉·무제봉·옥녀봉세 봉우리 모두 백곡면 명암리에 있으며, 거의 삼각형을 이루어 삼태성(三台星)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무제봉은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제사를 올리는 산봉우리’로 풀이되며, 옥녀봉은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등 다양한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다. 백석봉서쪽에는 백곡초등학교 성대분교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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