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기마봉, 외솔봉, 삿갓봉, 속동산
강릉 기마봉, 외솔봉, 삿갓봉, 속동산
1. 산행지: 기마봉(騎馬峰 말탄봉 383m), 외솔봉(295.8m), 삿갓봉(226.4m), 속동산(180.8m)
2. 위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7. 들머리/ 날머리: 금진항 삼거리[원점회귀]
8. 산행코스:
A. 코스: 금진항 삼거리→기마봉(381.7m)→외솔봉(295.8m)→삿갓봉(226.4m)→정동 심곡바다 부채길 입구→솔바위→사다라바위→금진항 삼거리
B. 코스: 코스: 밤재 -기마봉 -재랑말 -삼거리 -외소솔봉 -정동진
9. 특징:
동해바다를 끼고 있는 산으로서 정동진역 남쪽에 솟아 있다. 정동진역에서 남쪽 정동천을 건너자마자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산임에도 그동안 괘방산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산이다. 기마봉도 괘방산 등산로가 개설된 시기인 98년 말 정동진지역번영회와 정동2리 청년회가 7번 국도가 넘는 밤재(약 280m)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개설했다.
밤재는 옥계면 낙풍리와 금진리, 강동면 산성우2리 사이에 있다. 밤재 고개 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다. 밤재 휴게소 뒤쪽(동쪽)으로 올라가면 강동면 정동진2리 조각공원쪽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고, 휴게소 앞 7번 국도를 넘어 피래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주민들이 '말탄봉'으로도 부르는 기마봉은 이웃하고 있는 괘방산 자락에 있는 낙가사 같은 유명사찰은 없다. 그러나 괘방산은 정상 통신철탑 때문에 정상을 밟지 못하는 반면 기마봉은 정상이 헬기장으로만 되어 있어 정동으로 떠오르는 해돋이를 즐기는 명소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밤재 휴게소에서 뒤쪽으로 오르면 소나무 숲이 나오고, 숲 사이로 15분 정도 오르면 산 능선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강동면 정동진 2리까지, 산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광활한 동해의 푸른 물결과 진달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산객을 맞는다. 동해의 선경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으면 오르막 길이 나온다.
짙은 흙 냄새와 소나무 숲, 기암괴석이 어울려 절경(絶景)을 펼친다. 출발지인 밤재 휴게소에서 40분 정도 가면 기마봉에 도착하게 된다. 기마봉 정상의 동쪽 방면으로는 확 트인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피래산(彼來山 753.9m)이 우뚝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9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장공비의 도주로인 안보체험 등산로가 보인다.
기마봉 정상에서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서로 어우러지고 제 흥에 겨워 나름대로의 자태를 뽐낸다.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강동면 심곡리와 산성우2리를 넘나드는 고개에 이르게 된다. 이곳까지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계속하여 펼쳐지는 참나무 숲. 끝 없는 숲 사이로 오르막길이 보인다. 그 오르막을 넘으면 산봉우리가 나온다. 이곳까지는 1시간 25분 정도 걸린다. 봉우리 정상은 노송이 햇볕을 가려 주어 한숨 쉬어가기 좋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가면 외솔봉에 이른다. 이곳까지는 2시간 35분 정도 걸린다. 지금은 노송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오른쪽 길은 조각공원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조각공원으로 가려면 삿갓봉을 지난다. 산봉우리가 삿갓처럼 생겼다하여 삿갓봉이다. 왼쪽 길은 강동면 정동진 2리 본동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외솔봉에서 정동진 해돋이 관광지와 봉화 뜰을 내려다보면 확 트인 전경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바다를 끼고 조각공원과 헌화로를 가는 차량들이 한가롭게 지나가는 광경도 이색적이다. 외솔봉에서 마을까지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산봉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을 쌓아 집안의 안녕을 비는 돌탑들도 볼 수 있다. 이 등산로는 가족단위로 많이 이용된다. 밤재에서 조각공원까지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부채바위의 전설
심곡의 서낭당에는 여서낭 세분이 모셔져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바닷가에 나가 보라고 해서 나가 보았더니 여서낭 세 분이 그려진 그림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낭당을 짓고 거기에 모시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림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서낭신이 몹시 영험이 있다고 믿어 왔으며, 마을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꼭 가서 고한다고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지금부터 한 200여년 전에 이씨 노인의 꿈에 어여쁜 여인이 함경도 길주에서 왔다고 하면서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했다. 이씨 노인이 이튿날 새벽 일찍 배를 타고 가 보니 부채 바위 끝에 나무 궤짝이 떠내려 와 있어서 열어 보니 여자의 화상이 그려져 있어 이를 부채바위에 안치해 두었다. 그 뒤 이씨 노인은 만사가 형통했다고 한다. 얼마 후 노인의 꿈에 그 여인이 외롭다고 해서 서낭당을 짓고 화상을 모셔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투구바위와 육발호랑이 전설
바다를 바라보며 투구를 쓰고 있는 바위의 형상에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바위의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투구바위라고 불리운다. 또한 이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 중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장군과 관련된 '육발호랑이의 내기바둑 두기'라는 설화가 있는데, 여기서 육발호랑이는 발가락이 여섯개인 무서운 호랑이를 뜻한다고 한다. 아주 옛날 육발호랑이가 밤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사람(스님)으로 변해 내기 바둑을 두자고 하고, 열십자의 바둑판을 그려놓고 호랑이가 이기면 사람을 잡아먹었다. 당시에는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재길 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침 그 당시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 장군이 강릉에 부임해와 마을 주민들이 밤재에 사는 육발호랑이를 없애달라고 간청하니 강감찬 장군이 내력을 듣고 관리를 불러 '밤재에 가면 스님이 있을 테니 그 스님한테 이걸 갖다 주거라' 하고 편지를 써주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 편지를 받은 즉시 그 곳에서 떠나거라. 만약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전멸시킬 것이다' 라고 썼다. 육발호랑이가 강감찬 장군임을 알아보고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 그래서 그 이후로 육발호랑이가 없어졌고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비장한 바위의 모습이 당시 용맹스런 강감찬 장군의 형상으로 비춰진다.
우리산줄기이야기
백두만덕피래정동진(기마)단맥
백두대간 두리봉에서 분기한 만덕지맥을 따라오다 만덕산에서 4갈래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에 피래산으로 가는 피래단맥을 따라 덕우리재를 지나 皮來산(△753.9)어깨(690)에서 피래단맥은 북쪽 피래산으로 가고 한줄기를 동쪽으로 분기하여 △509.1봉(2.4)-임도삼거리(230, 1.8/4.2)-구7번국도 밤재(170, 0.3/4.5)-영동선철로 밤재터널위(210, 0.2/4.7)-319봉(0.6/5.3)-騎馬봉(△381.7, 1.1/6.4)-속동산(290, 1.8/8.2)-외솔봉(△296, 0.6/8.8)-갈림길Y자능선(290, 0.2/9)-임도삼거리(110, 1/10)-5번군도(10, 0.9/10.9)를 지나 정동진천이 바다가 되는 정동진해수욕장 일출교(0, 02/11.1)에서 끝나는 약11.1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