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지도

임실 노산, 응봉, 봉화산

꼴통 도요새 2018. 11. 29. 08:55

임실 노산, 응봉, 봉화산

 

1. 산행지: 노산(540m), 응봉(609m), 봉화산(467.6m)

2. 위치: 전북 임실군 오수면 주천리

     

6. 산행 시간: 5시간 15[이동거리: 12.33km]

7. 들머리/ 날머리:

참고:임실군 오수면 주천리 마을회관 앞 공터에 주차

8. 산행코스: 주천마을회관삼계서원노산응봉되재노산봉봉화산말치임도차도오촌마을

9. 특징:

임실군 오수면과 임실읍 대곡리에 걸쳐 있는 이 산줄기에는 노산, 응봉, 봉화산이 솟아 있는데 그중에서 응봉과 봉화산은 성주지맥에 속해 있다.

노산은 공자의 산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이며 유교의 개조인 공자(BC 552~479)는 노나라 사람이다. 단양군 적성면의 맹자산(577m)과 정선군 북면의 노추산(1335m)도 공자와 맹자에서 연유한 산 이름들이다. 노산은 명감나무, 산초나무, 딸기나무의 날카로운 가시와 길을 막는 곁가지에 숱한 상처를 훈장으로 받았다. 그러나 태초에 어디 길이 있었으랴. 용기 있는 사람이 지나가면 길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산자락에 수북한 문화유산이며 멋진 이름과 아름다운 산세의 노산은 앞으로 등산로가 정비되고 산꾼들도 더러 찾는 명산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노산-봉화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임실군 오수면 주천리의 경로당이다. 경로당 앞에 회관건립 기념비가 있다. 빗돌을 읽어보니 마을의 유래가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회관 오른쪽으로 오석으로 만든 의사유적비와 효자비 효열각 등이 자리한다. 빗돌 너머로 바라보는 노산 응봉의 산세는 또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경로당 왼쪽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가면 개울을 건너 커다란 옛 건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주천리의 자랑인 귀노재와 삼계서원이다. 대문이 잠겨 옆집을 통하여 서원에 들어선다. 두 그루 은행고목이 하늘을 찌른 서원 마당에는 지난해에 떨어진 누런 은행열매가 그대로 깔려 있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 본 은행나무의 가지에도 은행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서원의 빗돌들을 살펴보고 재실 앞에 선다. 귀노재(돌아갈 , 나라이름 )라고 쓴 현판을 보는 순간 산 이름을 지은 사람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노나라는 바로 공자의 조국, 조선 오백년 유교를 따르던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공자를 사모했는가.

 

재실 담장을 끼고 시멘트길이 이어진다. 뒤이어 비포장 밭길이 시작된다. 서쪽으로 올려다보이는 노산의 산세는 무척 아름답다. 서쪽 길을 이어가면 솔숲과 참나무숲을 지나 임도를 만난다. 더러 가시나무가 가로막는 임도를 오르면 문득 길이 끊어진다. 몇 년간의 장맛비에 길이 패이고 바위돌이 드러난 계곡 길을 100m쯤 올라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이리저리 쓰러진 나무와 가시덤불을 피해가며 오르노라면 임도도 끝이 난다. 이곳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능선길을 올라야 한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명감나무, 산초나무, 딸기나무의 가시가 날카로운 복병으로 숨어있어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국립공원의 산들은 사람들이 너무 몰려 휴식년제가 실시되는 요즘 세상에, 이렇듯 산꾼들 조차 찾지 않는 산이 있다니 너무 대조적인 현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백두대간과 9정맥을 모두 오른 사람들은 대단한 산꾼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대간과 정맥종주는 기본이요, 기맥과 지맥마저도 완주하려는 산꾼들이 제법 있다.

길도 없는 산을 오르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아로새겼을까. 앞으로 북한의 문이 열리면 올라야 할 산은 또 얼마인가. 소나무가 숲을 이룬 노산의 정수리는 쓸쓸하다. 빗돌이나 삼각점 커녕 팻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들의 표지기가 새롭게 펄럭인다. 산자락에 오백년 역사의 마을이 자리하고, 서원 효자비 효열각 등 문화재가 자리하는 이름도 당당한 이 노산. 오수면민들이 애향심을 발휘하여 등산로를 정비하여 전국의 산꾼들이 자주 찾는 명산으로 가꾸길 기원해본다.

 

응봉을 향한 길은 서쪽(왼쪽)으로 조금 돌아내려 능선길이 이어진다. 가로막는 장애물을 피해 천천히 걷다보니 싸리나무와 억새가 빽빽이 들어선 응봉에 올라선다. 가로막는 장애물을 피해 천천히 걷다보니 싸리나무와 억새가 빽빽이 들어선 응봉에 올라선다. 진달래가 환히 핀 응봉은 예전 산불이 난 곳으로 큰 나무가 없다. 낡은 삼각점이 있는 정수리에서 굽어보는 남녘 노산의 산세와 서북녘 정월저수지의 산세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산길을 이어 봉화산을 향한다. 되재 부근에는 대규모 인삼밭이 자리하고 산길도 순탄하다. 능선길 같은 541m봉 솔숲속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이곳에서 봉화산은 지척으로 15분이면 도달한다. 진달래꽃이 어우러진 억새밭 속에서 오래전에 설치한 삼각점을 찾아낸다. 드물게 보는 국방부지리연구소의 삼각점이다.

 

이 봉화산보다 높은 541m봉이 이름이 없거나 노산봉(영진문화사 발행지도)으로 표기되고, 노산보다 높은 응봉 또한 ''으로 표시된 것이 필자에게는 상당한 모순으로 생각된다. 여러 개의 봉들이 모여야 산이 되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산 이름이 있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설치한 삼각점은 측량기준점에 불과하다.

 

봉화산에서 하산은 북동녘으로 조금 내려가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냉천마을을 굽어보는 곳에서 특이한 빗돌을 만난다. 1899'오루유상대(五老遊賞臺)' 라고 자연석에 새긴 희미한 글씨의 다섯 사람 이름과, 1993년 후손들이 다시 만든 오석빗돌이 자리한다. '국운이 날로 기울던 조선말기 이 고장의 다섯 어른이 어려운 세태와 가난을 무릅쓰고 꿋꿋한 우의와 덕행, 신의를 지키며 한평생 고락을 함께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새겨놓았다.

 

산을 내려서며 산자락에서 살다 간 옛사람들을 생각한다. 비록 오늘의 우리보다 넉넉하지 못했지만 인의예지의 학문을 숭상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들과의 신의를 지키며 보람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아득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러한 삶은 대자연을 사랑하는 산꾼들이 살아야 할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