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및 전설

서산 서원

꼴통 도요새 2018. 12. 10. 15:53

서산 서원

西山書院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462

1706년(숙종 32) 지방유림의 공의로 생육신인 조려(趙旅)·원호(元昊)·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西山(서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4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외문(外門), 육각정(六角亭), 3칸의 고사(庫舍)와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려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원호·김시습·이맹전·성담수·남효온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등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서재는 향사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두거나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를 하는 곳이며, 고사는 제구(祭具)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매년 3월 중정(中丁: 두번째 丁日)과 9월 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4,000평, 임야 100정보, 대지 1,000평 등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조려

조선 전기의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

본관은 함안. 자는 주옹, 호는 어계. 할아버지는 고려말 공조전서 열이며, 아버지는 증사복시정 안이다. 1453년(단종 1)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이 추복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정조 때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신만원 등의 사당 제향 건의에 따라 김시습(金時習)·원호·남효온·이맹전·성담수 등 다른 생육신과 함께 함안의 서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어계집〉이 있다. 시호는 정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