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지도

안성 국사봉, 금광산

꼴통 도요새 2019. 3. 13. 13:22

안성 국사봉, 금광산

산행지: 국사봉(430m, 311.6m), 금광산(241.4m)

2. 위치: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보개면

  

7. 들머리/ 날머리: 금광2교[원점회귀]

8. 산행코스: 금광2교→금광산→금광2터널→삼각점봉(422.3봉)한남정맥 길 진입→372봉→한남정맥 길 이탈→국사봉→금광3터널→금광2교

9. 특징:

금강산(金剛山) 혹은 금광산(金光山)

먹뱅이 사람들 삶 녹아있어 더욱 소중한 산

주민들 말에 의하면 해발 350m쯤 되고, 안성시지의 기록에 의하면 242m인 금광산(金光山). 높이에 상관없이 그 이름만으로도 금광면(金光面)의 이름이, 그리고 금광리(金光里)의 이름이 유래되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산.

금광산의 이름에 대해 현재 대부분의 기록이나 마을 주민들은 금광산이라고 했지만, 일부 기록에는 금강산(金剛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일부 마을 주민들도 금강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소문난 그 금강산과 한자표기가 똑같다) 특히 기록은 옛기록에 금강산이라는 기록이 많이 등장하는데 1750년대 초 즉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금강산(金剛山)이라는 표기가 뚜렷하다. 특히 이 지도에 등장하는 당시 안성군의 산과 봉우리 이름이 6개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금강산이라는 점에서 볼 때 중요하게 여겨졌던 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광여도에도 금강산이라는 지명이 뚜렷하게 표기되어 있는데 1872년 즉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방도에는 금강산이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0년을 전후해 제작된 조선지지자료금강산(金崗山)’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어 불과 100년전에도 금강산으로 불리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언제 어떤 이유로 금강산에서 금광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금광면이나 금광리 등의 명칭과 함께 생각해볼 때 1910년을 전후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던 시기의 일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금강산이라는 산의 이름과 관련해 이 산에 절터가 3-4개가 있었고, 불상이 있었으며 자그마한 불상을 봤다는 증언을 주민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증언을 뒷받침해주는 옛 기록으로,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찰의 명칭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되는 것으로 평가받는 동여비고(東輿備考)에는 금강사(金剛寺)라는 절 이름이 등장한다. 주민들은 불상에 대해서는 묻힌 것까지 하면 2m쯤 되는 불상이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마을로 옮겨놓은 후 누군가가 가져갔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어느 절터 인근에서는 수십년전 나물캐러 갔다가 조그마한 불상을 봤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고, 속이 비었는지 바닥을 치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절터도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었다. ‘금강이라는 명칭 자체도 악귀로부터 사찰을 보호한다는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떠올리게 하고, 금강산의 위치도 옛 안성을 보호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금강사의 내력이 더욱 궁금해졌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교통의 요지에 축조된 금광산성

금광산(이글에서는 편의상 현재의 표기대로 금광산이라고 표기)에는 산성이 있다. 지난 1986년 안성시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된 이 산성의 지명 역시 금광산이라는 지명이 그러하듯 어느 곳에는 금광산성(金光山城, 안성시문화유적분포지도), 어느 곳에는 금강산성(金剛山城,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안성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혹은 금강성(金崗城, 조선지지자료)으로 표기되어 있는 등 통일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 유래에 대해서도 통일되어 있지 않은데 1999년에 발간된 안성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에서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고려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안성시 문화유적 분포지도(2005)에 의하면 이 산성은 8부 능선에서 정상에 걸쳐 총연장 2km, 높이 1.3m, 4m로 축조된 토석혼축의 테뫼식 산성이라면서 그 규모를 감안할 때 삼국시대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산성의 정상에 오르면 옥정리와, 서운산성, 비봉산성이 한눈에 들어와 예부터 삼남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이자 한성방어의 전초기지로서 그 위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산성이 다시 축조된 것은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하하는 청나라 군사들을 막기 위해 다시 쌓았다는 견해와 1728(영조 4) 이인좌의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도순무사 오명항이 주민을 동원해 다시 쌓았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미 오산리에서 소개한바 있듯이 이 산성이 안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이인좌의 난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음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산줄기이야기

한남보개단맥

한남정맥이 안성시 칠장산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흐르다 안성시 삼죽면, 보개면의 경계선상에 있는 國師(430)에서 한남정맥은 북쪽으로 흐르고 한줄기를 남쪽으로 분기하여 306, 325번지방도로 예정지인 십자안부로 내려선다 寶蓋(347, 2.5)-마루터도로(110, 1.6/4.1)-임도-살갱이도로(90, 1.8/5.9)-177.2-매봉(179.2)-도로-돌섯산(152.8, 2.1/8)-57번국지도-보개면사무소 북측 도로(70, 1.6/9.6)-325번지방도로 불치개고개 삼거리(70)-비봉산(229.5, 1/10.6)-머린골산(277.8, 1.6/12.2)-샛죽바위산(197.7)어깨를 지나 70번국지도 구리고개(70, 2.1/14.3)로 내려선다 시무실고개 임도(90)-14번군도 신70번국지도 삼거리(2.2/16.5)-171-23번국지도 쇠골고개(2.2/18.7)-채석장임도-181-38번국도, 23번국지도 삼거리(1.7/20.4)-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내리도로(2/22.4)에 이르고 이후 논 밭 구릉을 진행해 평택~음성간고속도로(1.3/23.7) 지나 논두렁 밭두렁 수로 등으로 진행해 302번지방도로 안성천교 옆으로 해서 안성시 죽리 안성시환경사업소가 있는 한천과 안성천이 만나는 곳(1.7/25.4)에서 끝이나는 약25.4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