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국사봉, 명지봉, 도덕봉, 성치산, 말동산
옥천 국사봉, 명지봉, 도덕봉, 성치산, 말동산
1. 산행지: 국사봉(391.3m), 명지봉(404.2m), 도덕봉(447.3m), 성치산(285.1m), 말동산(342m)
2. 위치: 옥천군 군서면 은행리(銀杏里)
7. 들머리/ 날머리: 은행리(뱀골) 원점회귀
8. 산행코스: 은행리(뱀골)⟶닭재→국사봉⟶506.2봉⟶분기봉(389.5봉)⟶명지봉 왕복⟶도덕봉⟶222.1봉(명경소류지)→성치산성지→말동산→성치산→은행리(뱀골)
9. 특징:
옥천군 [沃川郡]
옥천군 북부에 거멍산(494m)·덕대산(德大山, 573m)·금적산(金積山, 652m)·관모봉(冠帽峰, 569m)·삼승산(三升山, 574m), 남부에 망덕봉(望德峰, 420m)·장룡산(壯龍山, 656m)·마니산(摩尼山, 640m)·월이산(月伊山, 551m), 동부에 팔음산(八音山, 762m)·천관산(天冠山, 440m)·천금산(千金山, 464m)·철봉산(鐵峰山, 450m), 서부에 환산(環山, 581m) 등이 있다. 중동부에는 마성산(馬城山, 497m)과 남쪽의 도덕봉(道德峰, 407m), 서쪽의 용봉(龍峰, 437m) 등으로 둘러싸인 옥천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흘러가는 옥천분지 내의 중심하천의 서쪽에는 용봉과 마성산을 배후산지로 하여 하부에 너비 5㎞, 길이 1.5㎞의 대규모 완사지가 발달하였고, 중앙에는 귀화봉·새보로봉 등의 소규모 구릉들이 있으며 하천변에는 평탄면이 발달해 있다. 충남 금산으로부터 북류하는 금강(錦江)이 이원천(伊院川)·건진천(乾榛川)·보청천(報靑川)을 합류하면서 감입곡류를 이루어 곳곳에 절벽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나타내고 있다. 안내면의 장계리 일대는 금강의 대표적인 감입곡류지역으로 지질구조를 따라 흐르는 필종하천(必從河川)이다. 금강의 분류는 이원면 백지리로 흘러들어 북류하다가 용방리에서 서류해 옥천읍에서 다시 북류해 산간계곡을 곡류하다가 안남면 둔주봉(屯駐峰) 부근에서 대청호로 흘러든다. 보청천은 문암천(文巖川)·항건천(恒乾川)·삼가천(三街川)·예곡천(禮谷川)·장연천(長連川) 등의 지류를 합류해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 본류에 흘러드는데 평야의 대부분이 옥천분지에 전개되고 있다. 군북면 용호리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打製石器]와 형체조각품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금강 지류인 보청천 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동이면 석탄리 안터에 있는 고인돌떼는 북방식[卓子式]과 남방식[碁盤式]이 한 지역에 나타나며, 선돌의 특별가공 흔적이 있어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으로, 지금의 동이면 청마리에 있는 솟대·장승·원탑 등은 이때부터 내려오는 민속신앙의 전승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로서 양국의 싸움이 치열할 때는 교대로 점령하던 격전지였다. 486년(소지마립간 8) 신라가 이곳에 굴산성(屈山城)을 개축해 국경선을 다졌다. 관산성을 비롯해 지금의 옥천읍을 중심으로 분포된 여러 산성터는 이 지역이 삼국시대의 요충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군은 본래 옥천·청산·이원·안읍을 합한 군으로서, 옥천은 신라 때 고시산군(古尸山郡), 청산은 굴산현(屈山縣), 이원은 소리산현(所利山縣), 안읍은 아동혜현(阿冬兮縣)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관성군(管城郡)·기산현(耆山縣)·이산현(利山縣)·안정현(安貞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뒤에 기산현은 삼년군(三年郡: 지금의 보은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기산현은 청산현(靑山縣)으로 개칭되어 상주에 속했으며, 안정현은 안읍현(安邑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관성군·이산현·안읍현이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의 관할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 관성군이 현으로 강등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182년(명종 12) 이민(吏民)이 현령 홍언(洪彦)을 잡아 옥에 가두고 민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폐현되었다. 1313년(충선왕 5) 지옥주사(知沃州事)로 승격되었고 경산부 관할인 이산·안읍·양산(陽山) 등 3현이 이곳에 분속되었으며, 지금의 군서면 금천성에 있는 관청을 지금의 옥천읍 죽향리로 이전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청산현에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옥천군(沃川郡)으로 개칭되었고 청산현과 함께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1414년 청산이 황간에 합쳐져 황청현(黃靑縣)이라 했다가 다시 분리되어 청산현으로 복구되었다. 1584년(선조 17) 조헌(趙憲)이 안읍에 와서 후율당(後栗堂)을 짓고 인재를 양성해 임진왜란 때는 많은 의병이 배출되었다.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자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김문기(金文起),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했던 곽자방(郭自防) 등이 이곳 출신이다. 1895년 공주부 옥천군·청산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옥천군·청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산군이 옥천군에 통합되었고, 학산면·양산면·용화면이 영동군에 이속되었다. 1919년 3월 27일 허상기(許相基)·허상구(許相球) 등이 주동해 이원장터에서 수백 명이, 청산면에서는 3월 26일과 4월 1·4일 3회에 걸쳐 수천 명이, 군서면에서는 김순구(金舜九)의 주동 하에 50여 명이 3·1운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이내면과 이남면을 합해 이원면으로 고치고, 청서면과 청남면을 합해 청성면으로 고쳐 모두 9면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옥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이원면 우산리가 동이면에, 안남면 오덕리·인포리와 군북면 장계리가 안내면에, 안내면 용호리·막지리가 군북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보은군 삼승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90년 4월 1일 안남면 오대리와 안내면 장계리 일부가 옥천읍에 편입되었다. 1995년 군북면의 구건리가 국원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우리산줄기이야기
식장지맥(食藏支脈)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동쪽 인대산(661.8m) 백령고개 사이에 있는 무명봉(610m)에서 분기하여 월봉산(543m), 금성산(439m), 만인산(537m), 지봉산(464m), 망덕봉(439m), 식장산(598m), 고봉산(335m), 계족산(423m)을 거쳐 대전 대덕구 문평동 갑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그 맥을 다 하는 도상거리 약56.1km의 산줄기로 금산과 대전지방을 지나며 최고봉인 식장산의 이름을 따서 식장지맥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