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와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에 소재한 산이다. 백화산(주행봉.한성봉)에 가려 그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옥동서원을 들머리로 하고 반야사를 날머리로 한다.
옥동서원(尙州 玉洞書院)
경상북도 상주시 수봉2길 29 (모동면)에 소재한 서원이다. 2015년 11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518년(중종 13) 황맹헌(黃孟獻), 황희(黃喜), 황효헌(黃孝獻)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580년(선조 13) 백화서원으로 이름짓고 영당(影堂)을 지어 봄, 가을에 향사를 지내다가 1714년(숙종 40) 추가로 전식(全湜)을 배향하고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1783년(정조 7) 황뉴(黃紐)가 배향되었으며 1789년 ‘옥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옥동서원으로 개칭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조치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하였다. 1987년 청월루(淸越樓), 1991년 경덕사(景德祠)와 온휘당(蘊輝堂)을 보수하였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경덕사, 학문 강론이나 유림의 모임과 행사장소인 강당, 향사 때 제수를 장만해두는 전사청(典祀廳), 서원을 관리하는 고직(雇直)과 화직(火直), 묘직(廟直)이 거처하는 고사, 화직사, 묘직사, 누각인 팔각정 등이 있다. 황희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고 《갈천문집(葛川文集)》 등의 귀중한 필사본과 목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해마다 3월과 9월 상정(上丁:첫째번 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반야사(般若寺)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720년(신라 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명인 상원(相源)이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이 일대가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알려져 절 이름을 반야사라 하였다. 반야(般若)는 바로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절이 들어선 지장산이 백화산(白華山)이라고도 불리므로 관세음 보살이 머문다는 설도 있다. 1352년(고려 충숙왕 2)에 중건하고, 1464년(조선 세조10) 세조(世祖)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9일 동안 법회에 참석한 뒤 신미(信眉) 등의 청으로 이 절에 들러 새로 지은 대웅전에 참배했다고 한다. 세조가 이 절에 들렀을 때의 설화가 전한다. 세조가 대웅전에 참배하자 문수동자가 나타나더니, 세조를 절 뒤쪽에 있는 망경대(望景臺) 영천으로 인도한 후 목욕을 하라고 권하였다. 세조가 목욕을 시작하자, 문수동자는 왕의 불심이 지극하므로 부처의 자비가 따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고, 1993년 대웅전을 중창한 뒤 요사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극락전·산신각·백화루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993년까지 대웅전으로 쓰이된 건물로 1975년 중수한 바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조선 중기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은 1993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하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영산회상도와 신중탱화·감로탱화가 있다. 유물로는 요사에 있는 신중탱화와 삼층석탑이 유명하다. 신중탱화는 화기(畵記)에 따르면, 본래 보국사(輔國寺)에 있던 것으로 1890년(고종 27) 응상(應祥)이 그렸다고 한다. 이 탱화를 누가 언제 이 사찰로 옮겨왔는지는 알 수 없다.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에 세워진 것으로, 1950년 성학(性學)이 절 동쪽 500m 부근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세웠다. 전체 높이 315cm이고 조성 양식으로 보아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절 남쪽 100m 쯤에는 부도 2기가 전하는데, 그 중 하나는 탑신 위에 원반 모양의 옥개석을 놓고 그 위에 원통형 석재를 올린 것으로 형태가 매우 독특하다. 이밖에 왕이 죽었을 때 그 영위를 봉안하는 영위판(靈位板)과 문수동자가 탔다는 목각사자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