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구청 앞 백설교 넘어 야산(예진산)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대단지 터는 임진왜란 격전지입니다. 예진산(芮津山 135.8m)과 연결된 소실봉(韶室峰 186.1m)이 품은 아늑한 보정동 뜰은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 1600명에게 조선 농민군 6만 명이 무너진 용인전투장입니다. 예진산(芮津山)의 다른 이름은 임진산(壬辰山 壬陳山)입니다. 한양과 부산을 잇는 요충지인 예진산은 왜군의 한양 진입을 방어하기 위한 보루가 있었으므로 임진산, 이진봉 등으로 호칭 되어왔습니다. 출처_ 1998년 용인문화원(원장 송재권) 구성면지(駒城面誌) 115쪽. 한편으로는 왜적들의 주둔지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東國輿地誌 龍仁縣 ‘在縣西十里大路上山麓萬曆壬辰倭寇連營屯據處’ 1997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발견된 총통 2정과 인근에 왜골고개, 왜골(이현 남쪽 뜰), 군사들이 풍덩풍덩 빠진 풍덕천등 지명만이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전쟁터였음을 대변합니다. ‘옛날 진터가 있는 산이라 옛진산이라고 하다가 예진산이 되었다’는 해설입니다. 2004. 12. 02 용인시민신문 정양화 용인의 옛 땅이름 예진산(임진산) 옆으로 신봉천과 성복천이 합류한 풍덕천이 탄천과 합류, 한강으로 유입되는 자연 환경을 고려해 ‘물가 예(芮)와 나루 진(津)’을 빌려 예진산(芮津山)으로 한자 표기했다고 추측합니다. 용인군(龍仁郡) 시절 발행한 구성면지(駒城面誌) 605쪽에서 예진산(芮津山) 한자 표기는 찾았지만 풀이는 없습니다. 임진산성 유적지에서 발견한 총통 복제품과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전시관과 부지를 용인시에 기부 채납해, 지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공간으로 2002년 개관한 ‘임진산성 유적전시관’은 찾는 사람이 줄어들며 임시 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크게 안타깝습니다.[출처/ 인터넷]
산행후기
오전에 태봉산을 탐방하면서
태봉산에서 응달산을 거쳐 청계산으로 갈까 하다가
대지산, 예진산, 소실봉 .....등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오전 태봉산, 오후 예진산으로 나누어 탐방하였다.
이 코스도 예진산→소실봉→매봉→형재봉(광교산)으로 코스를 그으면 좋을 듯해 보였지만
연 이틀 코스를 길게 하다보니 체력에 무리가 있어
짧게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탐방하였다.
이 코스도 주변 시민들이 많이 이용한 탓에 모두가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하는 도심 빌딩들 통과하여 각각의 산 들머리를 찾는 지점들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