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 대문산, 수용골산, 삼봉, 갈미봉, 백중산

꼴통 도요새 2024. 5. 13. 19:35

충주 대문산, 수용골산, 삼봉, 갈미봉, 백중산

[탄금대 입구에서 정영택시비까지]

1. 산행지: 수용골산(225m), 삼봉(276.5m), 갈미봉(275m), 백중산(180.6m), 대문산(탄금대, 106.9m)

2. 위치: 충주시 중앙탑면/ 칠금동

3. 일시: 2024년 5월 11일(토)

4. 날씨: 덥고 맑았다 흐림

5. 누구랑: 나 홀로

6. 탐방거리및 소요시간: 11.02km/ 4시간 26분

7. 들머리/ 날머리: 탄금대 입구/ 창동마을회관

8. 탐방코스: 탄금대 입구→탄금대 주차장→대문산 정상(감자꽃 노래비)→열두대→대흥사→탄금대주차장→탄금대 입구→탄금교→창동리마을화관→맞은편 마을길→고속도로 밑 통과→들머리 못찾아 잠시 헤멤→하늘농장 입구→정문묘원→정영택시비→능선→수용골산 정상→삼봉 정상→임도→철문→갈미봉 정상→도로 삼거리→창동리마을회관→마애여래입상 왕복

9. 특징:

탄금대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우륵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고 곧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탄금대 주변에는 지금도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모두 가야금과 관련된 것이다.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 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탄금대는 옛날부터 유명한 지명으로 지리지와 고지도 등 각종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탄금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탄금대는 견문산에 있다. 푸른 절벽은 낭떠러지로 높이가 20여 길이요, 절벽 위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여 양진명소(楊津溟所)를 굽어 임하고 있는데 우륵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후세 사람이 이곳을 탄금대라 이름 하였다.” 또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충주 서쪽으로 8리에 위치하며, 강 아래에 큰 내가 있는데 금휴포(琴休浦)라 한다.”라고 하여 가야금을 타며 쉬던 곳이란 의미로 쓰였다. 이밖에도 《해동지도(海東地圖),《구한말지형도>,《조선지형도>등 다수의 고지도에 탄금대 지명이 나타난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悉王) 때의 사람으로 490년경 대가야의 직할 현인 성열현에서 태어났다. 우륵의 고향인 성열현은 현재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치적, 문화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쟁(箏)을 본받아 만들었고, 우륵이 12곡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가야금은 중국의 악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가야국의 혼이 담긴 새로운 악기로 만든 것이다. 가야금은 우리의 고유한 악기다. 본래 대가야연맹을 상징하며 가야인의 천문의식을 담고 있다. 가야금은 위가 둥글고 아래가 평평한데 이것은 천원지방의 천문관을 나타내며, 12개의 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다. 가야금은 가야국이 예악(禮樂)을 중시한 문화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악으로서 백성을 통치하고자 했던 가야의 높은 문화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야에서 만들어진 가야금은 고국을 떠나 충주에서 탄금대라는 장소와 결합하여 장소적 의미를 취하게 된다. 가야국보다는 오히려 충주가 가야금의 고을이 된 것이다. 탄금대는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도순변사였던 신립(申砬)은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출처/ 다음백과]

우리산줄기이야기

부용지맥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보현산에서 가지를 쳐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의 탄금교

(남한강과 달천의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이 산줄기에는

부용산,수레의산,매방채산,자주봉,햇골산,평풍산,송수산,삼봉

등이 있다. 이 산줄기의 동쪽과 남쪽에는 음성천, 요도천 등이 달천으로 흐르고, 서쪽과 북쪽에는 용천, 한포천, 한천 등이 남한강으로 흘러간다.[출처/ 인터넷]

산행후기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다.

일기예보를 자세히보니 서울은 오후 1시부터 비, 충주는 오후 4시부터 비로 나온다. 4시가 되기 전 산행을 마치자란 생각으로 충주의 미답지 대문산(탄금대), 수용골산, 삼봉, 갈비봉, 백중산을 탐방하기로 한다. 오늘 산행 코스 중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대문산(탄금대)만이 산명이 있을 뿐 나머지는 무명봉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선답자분들께서 탐방하시고 산명들이 적혀 있는 걸 보면 분명 다른 지도에는 산명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산행을 한다. 무엇보다도 대문산 산행에서는 탄금대의 유적들이 많았고, 수용골산을 탐방하기 전에는 창동마을의 유적들이 많았다는 것이 다른 산들과의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오늘 수용골산의 산행에서는 필자는 처음 들머리를 못 찾아 진입로에서 잠시 헤매었지만 전체의 산행 로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산 전체가 초입부터 낡은 철조망으로 되어 있어 방심하다가 철조망에 상처 입기가 쉬워 조심 산행하여야 한다. 마지막 백중산은 비가 오려고 하늘이 시커멓게 되기에 탐방을 취소하고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