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홍난유(洪蘭裕, 1923. 3. 9 ~ 1969. 3. 26)와 어머니 반남 박씨(1926. 3. 14 ~ 2017. 10. ?)[13]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증조부대에 이를 때까지 재지사족(在地士族)이었고 하인들을 보유한 명문가 집안에서 자랐다. 순흥국민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영주국민학교로 전학해 졸업했고, 이후 영주중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대한민국 해병대에 병 130기로 입대해 해병대사령부 의장대에서 의무복무하였다. 졸업 후에는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하였고, 한국기자협회 부회장도 지냈다. 명지대학교와 숭전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75년 4월 23일, 중앙일보 기자로 있을 당시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과 관련해 IPI(국제신문편집인협회)와 IFJ(국제기자연맹)에 '한국의 현 언론 사태에 관한 보고서'를 보내려다 발각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이하 생략
탐방후기
오늘은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비봉산→송학산→노인봉을 탐방하기로 하고 영주여객(시민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순흥면에 내려 비봉산 들머리인 내죽1리를 지나는데, 홍사덕 추모비-생가터라는 이정판이 보였다.
앗! 홍사덕 추모비?
내가 아는 의원님이 맞으신가?라며 찾아가본다.
역시 그 분이셨다.
그 옛날 내가 컴퓨터 사업할 때
많은 국회의원님(정?용의원님, 김?룡의원님,심?보의원님, 강?재의원님...등등)들게
컴퓨터를 판매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 의원님들은 컴퓨터 금액에 특별한 말씀 없이 인사만 나누고 컴퓨터를 판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