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화등산, 자마산, 봉동산, 시루봉, 웅산, 불모산, 화산, 굴암산, 마봉산
1. 산행지: 화등산(140.2m), 자마산(234.4m), 봉동산(481.2m), 시루봉(663.1m), 웅산(709.9m), 불모산(佛母山·801.7m), 웅산(710m), 화산(799.2m), 굴암산(663.2m), 마봉산(400.8m)
2. 위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동
3. 일시:
4. 날씨:
5. 누구랑:
6. 산행시간 :
7. 들머리/ 날머리: 웅동로 57번길 가길6 웅동1동주민센터[원점회귀]
8. 산행코스: 웅동1동 주민센터→화등산→자마산→봉동산→시루봉→웅산→불모산→화산→굴암산→마봉산→웅동1동 주민센터
9. 특징:
불모산
정상에 난립한 방송·통신시설 탓인지 밖에서 보면 투박하고 밋밋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속살을 파고들수록 비범해지는 산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창칼을 세운 듯 주능선 위에 뾰족하게 줄지어 선 기암괴석들,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비탈을 폭포수처럼 검푸르게 뒤덮은 침엽수림 등등 눈맛 시원한 절경이 널려 있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낙남정맥이 진해만을 앞두고 이대로 바다에 침몰할 수는 없다며 결기를 부린 듯하다. 불모산은 가락국 수로왕비인 허왕후를 기려 붙인 이름이다. 허왕후의 일곱 왕자가 모두 부처가 된 까닭에 허왕후를 불모라고 한 것이다. 불모산 북서쪽 기슭에는 천년고찰 성주사가 있다. 835년(신라 흥덕왕 10) 무염화상(801~888)이 도력으로 왜구를 물리친 뒤 창건했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04년(선조 37) 중건할 당시 곰이 하룻밤 사이에 목재를 다 날라주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웅신사(熊神寺)' 또는 '곰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웅산(熊山)
[곰메의 전설], [곰실바우의 전설], [시루봉의 전설], 천자봉의 전설]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웅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웅산은 천자봉을 말한다. 웅산 즉, 곰메는 봉우리 바위의 형상이 마치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곰의 자태를 닮아 곰실바위라고도 불린다. 또 멀리서 보면 마치 두부의 긴 쪽을 세운 듯 사각형의 시루처럼 보이기 때문에 시루바위 혹은 시루봉이라고도 부른다. 웅산은 조선시대까지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던 신령한 산이며, 명성황후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웅산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화산, 서쪽으로는 장복산과 연결된다.1962년 국제신보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종하의 『창원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웅산의 전설」은 경상남도 창원시뿐 아니라 창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진해시에도 전승되고 있는데, 대개 중국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朱元璋)과 연관되어 있다. 옛날 천자봉 연못의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자 마을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염라대왕이 이무기에게 용 대신 천자가 되라고 권하여 이무기는 연못 아래 백일마을의 주씨 가문 아기로 태어났다. 이 아기가 뒷날 중국으로 건너가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 되었다는 비교적 짧은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승되고 있다. 옛날 웅천고을의 웅산 기슭에 주가라고 하는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때 한 도승이 근처를 지나다가 서기(瑞氣)가 오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곳으로 찾아갔더니 한 칸 움막집에 나이 칠십이 다 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도승은 늙은 내외에게 “이 집에서 불일간 귀공자가 나서 후일 세상에 나올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가 버렸다. 그 뒤 이상하게도 이 늙은 부인이 임신하여 사내아이를 낳아 이름을 주원장(朱元璋)이라고 불렀다. 친족이나 이웃 사람들은 늙은 부부를 가엾게 여겨 옷과 쌀을 주어 조석을 먹게 하였다. 주원장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전의 도승이 와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이렇게 가난한 집에 있을 인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주원장을 데리고 가 버렸다. 주원장은 총명하여 학문에 뛰어나서,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절을 나와 여러 곳을 두루 편답한 뒤 환속하여 군대의 장수가 되었다. 이 사람이 뒷날 명(明)나라의 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 함경도 사람 이씨가 하인 주씨를 데리고 명당을 찾으러 천자봉에 올랐는데, 바다에서 반인반어(半人半漁)의 괴물이 나타나 “바다 속에 굴이 둘 있는데 오른쪽 굴이 천자가 태어날 명당이다.”고 점지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하인 주씨는 욕심이 나서 자기 선친은 오른쪽에 묻고 주인 이씨의 유골은 왼쪽에 묻었다. 그래서 주씨 가문에서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태어났고, 이씨 가문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어났다고 한다. 옛날 천자봉 연못의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자 마을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염라대왕이 이무기에게 용 대신 천자가 되라고 권하여 이무기는 연못 아래 백일마을의 주씨 가문 아기로 태어났다. 이 아기가 뒷날 중국으로 건너가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 되었다는 비교적 짧은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승되고 있다. 옛날 웅천고을의 웅산 기슭에 주가라고 하는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때 한 도승이 근처를 지나다가 서기(瑞氣)가 오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곳으로 찾아갔더니 한 칸 움막집에 나이 칠십이 다 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도승은 늙은 내외에게 “이 집에서 불일간 귀공자가 나서 후일 세상에 나올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가 버렸다. 그 뒤 이상하게도 이 늙은 부인이 임신하여 사내아이를 낳아 이름을 주원장(朱元璋)이라고 불렀다. 친족이나 이웃 사람들은 늙은 부부를 가엾게 여겨 옷과 쌀을 주어 조석을 먹게 하였다. 주원장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전의 도승이 와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이렇게 가난한 집에 있을 인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주원장을 데리고 가 버렸다. 주원장은 총명하여 학문에 뛰어나서,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절을 나와 여러 곳을 두루 편답한 뒤 환속하여 군대의 장수가 되었다. 이 사람이 뒷날 명(明)나라의 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 함경도 사람 이씨가 하인 주씨를 데리고 명당을 찾으러 천자봉에 올랐는데, 바다에서 반인반어(半人半漁)의 괴물이 나타나 “바다 속에 굴이 둘 있는데 오른쪽 굴이 천자가 태어날 명당이다.”고 점지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하인 주씨는 욕심이 나서 자기 선친은 오른쪽에 묻고 주인 이씨의 유골은 왼쪽에 묻었다. 그래서 주씨 가문에서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태어났고, 이씨 가문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어났다고 한다.
시루봉
진해구 시가지에서 육안으로 바라보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봉우리가 바로 시루봉이다. 특히 시루봉이 위치한 정상 부근에는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흰색으로 색칠한 돌들을 쌓아 “해, 병, 혼”이라는 글자를 형상화해 두어서 더욱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시루봉은 해발 고도 653m로 창원시 진해구를 둘러싼 산지의 최고 봉우리에 해당한다. 시루봉은 조선 시대 웅천현이 있었던 현재의 진해구 성내동과 남문동 일원 지역의 진산에 해당하는 웅산에 솟아있는 기암괴석 봉우리이다. 바위의 높이는 10m, 둘레는 50m 정도에 이른다. 시루봉은 떡을 빚을 때 쓰는 시루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시루봉이라 불리지만 본래의 명칭은 ‘곰메 바위’이다. 이 바위는 곰메 바위·곰실 바위·곰 바위 등 여러 가지로 불리며 한자로는 웅산암(熊山巖)으로 차자 표기하고 줄여서 웅암(熊巖)으로도 표기한다. 시루봉은 전체 산지의 능선부에 우뚝 솟은 모양새도 특이하거니와 바위에서 확인되는 지질학적 특성 또한 주변의 다른 봉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주변의 다른 봉우리들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바위나 암체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확인되는 기둥 모양으로 쪼개진 형태, 즉 주상 절리(柱狀節理)를 이룬다. 그렇지만 시루봉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상 절리가 나타나지 않고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암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가로 방향으로 줄무늬를 새기듯 갈라진 틈, 즉 수평 절리와 유사한 형태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화산암 계통의 지질로 이루어진 바위에서는 특이한 구조에 해당한다. 시루봉은 화산암 계열의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량이 용암이 분출하여 흘러나오는 과정에서 냉각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거대한 바위로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땅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냉각되어 거대한 화강암 암체가 만들어진다면 지표면으로 분출한 용암도 급격히 냉각되면서 거대한 암체를 형성하는데 두 과정에서 모두 암체의 중심부로부터 바깥쪽으로 갈수록 암석 내부의 균열로 갈라진 틈, 즉 절리가 형성된다. 이러한 절리는 일단 암체가 형성된 후, 암석이 지표면에서 풍화 작용을 받을 경우 비교적 쉽게 제거되는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시루봉도 이와 같이 중심부의 암체는 남고 주변부의 절리가 다수 생성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루봉은 웅신현 시절인 신라 시대부터 명산(名山)으로 이름이 나서 나라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소사(小祀)를 지냈던 곳이다. 조선 시대 말에 명성황후는 순종을 낳은 뒤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기도를 이 곳 ‘웅암’에서도 행했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창원시 진해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진해만의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가을에는 잔잔한 억새와 창원시 진해구목인 상록수와 편백나무의 군락이 볼만하다.
천자봉
천자봉은 진해구의 북쪽에 위치한 불모산에서 시루봉[웅산]과 태산을 연결하는 산지가 남서쪽으로 휘어 천자봉을 지나 웅천만까지 이어지는 능선부의 대표적인 봉우리이다. 천자봉은 해발 고도 510m로 최근에 조성된 진해 드림 파크, 진해만 생태 숲, 천자봉 산림 욕장의 동쪽 배후에 위치한다. 천자봉의 서쪽은 진해만에 인접하여 바다와 천자봉 사이에 풍호동이 있고 남동쪽은 웅천동이 자리 잡고 있다. 천자봉은 시가지에서 바라볼 때에는 뾰족하게 돌출한 암체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보이지만, 가까이 접근하여 확인하면 암체에 특이한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화산 활동에 의한 주상 절리이다. 이 암체는 지표면에서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강하게 받아 기반암이 돌출 형태로 노출된 첨봉으로 치밀한 절리에 의해 흡사 성채와도 같은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산줄기이야기
낙남불모웅산단맥
낙남불모단맥이 불모산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또 한줄기가 남쪽으로 분기하여 창원시와 진해시의 경계를 따라 도면상 熊산(703, 1.4)에서 남쪽으로 天子봉(510)을 떨구고 서진한다. 475봉-476봉-안민고개(290, 4/5.4)-장복산굴-△330.5봉- 長福산(△582.2, 3.8/9.2)-마진터널-장복터널-매락고개(270, 2/11.2)에서 남쪽으로 平地봉(410, 여맥)을 떨구고 서진한다. 산성산(△400.4, 2.5/13.7)을 지나 진해시 바닷가(2.5/16.2)에서 모도를 바라보며 끝이 나는 약1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낙남불모단맥
낙남정맥 龍池봉(743)에서 창원시와 김해시의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분기하여 상점령(450, 1.8)-佛母산(△801.7, 2.5/4.3)에서 남쪽으로 熊산(703 단맥)을 떨구고 동진한다 花산(△798.4, 2.3/6.6)-屈岩산(△662,2.7/9.3)에서 잠시 진행하다 동쪽으로 玉女봉(336, 단맥)을 떨구고 남진한다 馬峰산(402)전위봉(△357.3, 2.3/11.6)-너더리고개(310)-두동고개(290)-보배산(△478.9, 2.8/14.4)에서 남쪽으로 夫人堂(△286.3 여맥)을 떨구고 동진한다 장고개(70, 2.5/16.9)-봉화고개(230)-峰火산(310, 2.6/19.5)-△122봉-부산시 강서구 성산동 장락나루(3.3/22.8)에서 조만강이 둔치도를 거쳐서 내려와 서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서 남해 바닷물이 되는 약2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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