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장군의묘
성삼문 선생유허지(成三問先生遺墟址) 인근에 있는 삼문(三問)의 아버지 성승장군 부부묘와 성삼문 선생 부인묘 입니다. 성승(?~1456) 장군은 세종조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와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도총관에 이르렀으며 아들 삼문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던중 김질의 밀고로 발각 되어 모의하던 이들과 함께 체포되어 능지처사 당했으며 이때 아들 삼문, 삼빙,삼고,삼성과 손자 셋이 모두 죽음을 당하여 그의 후사는 끈겼습니다. 정조때 판서 엄숙의 상소로 좌찬성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숙 입니다. 성삼문은 연안김씨 김잉의 딸과 결혼하였고, 아내 차산과 미혼의 딸 효옥은 박종우의 노비가 되었습니다. 석방 시점은 알 수 없으며 차산(연안김씨)은 성삼문의 위패를 만들어서 제사지냈다 하며, 김씨부인이 죽은 후 성삼문의 제사는 장녀의 둘째 아들 박호가 승계했으나 후손이 없고, 임란에 인왕산에 성삼문과 그 외손 내외의 신주를 묻었는데 1672년 사태난 골짜기에서 신주 3위가 발견되어 송시열 등이 다시 묻지않고 홍주로 이봉하였습니다. 성삼문 일가가 처형당할 무렵 박임경에게 시집간 그의 장녀는 연좌되지 않았으며, 둘째아들 맹년의 딸은 유성원의 일족인 서산공 유자미가 비밀리에 피신시켜 길러서 자신의 일곱째 며느리(柳輯 부인)로 삼았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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