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

화성 봉화산,구봉산, 청명산

꼴통 도요새 2018. 5. 23. 21:13

 

산,산, 청명산

 

 

1. 지:  산(168.6),산(158.6), 청명산(157.1)

2. 위치: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3. 일시: 2018년 5월 22일(화, 석가탄신일)

4. 날씨: 맑고 따스하고 옅은 박무

5. 누구랑: 칼있으마님과

6. 소요시간: 4시간 50분[이동거리: 10km]

7. 들머리/ 날머리: 상안1리 마을회관[원점회귀]

8. 산행장소: 상안1리 마을회관→은혜교회→헬기장→봉화산 왕복→신흥사 갈림길→구봉터널→157.2봉→구봉산(당성망해루)→당성북문지→굴고개(당성터널)→301지방도로→정자→청명산 정상 왕복→청명산 등산로 이정표→상안1리 마을회관

 9. 특징:

당성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있는 해발 165m의 구봉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위치하였고, 시대를 달리하는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되어 축성된 복합식산성이다. 당성은 역사적으로당항성(黨項城)’ 또는당항성(党項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성벽은 구봉산의 정상부와 계곡 쪽으로 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1,200m이고 면적은 157,689㎡이다. 현재 사적 제217호로 지정되었다. 당항성은 본래 백제 지역이었는데,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한성(漢城)을 점령하면서 당성군(唐城郡)이라고 하였다. 551년에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이곳을 차지한 이후 통일신라시대인 757년에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으며, 829년에는 군사적인 거점으로서 당성진(唐城鎭)이 설치되었다. 당성은 1993년에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1998년과 2000년에 2차에 걸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성의 성벽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본성(本城)과 제1외성(外城), 2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식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발굴조사 결과 당성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이 확인되면서 시대를 달리하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성벽은 다양한 방식으로 축조되었음이 확인되는데, 동쪽의 성벽은 거의 붕괴되어 외벽의 높이 및 축조방식을 파악하기 어렵다. 북쪽의 성벽은 토성구간으로 확인되었는데, 성벽의 기저부의 폭은 6.6m이며, 잔존하는 최고 높이는 3m이다. 성벽의 중앙은 판축구간이며 그 기저부에는 석재들이 높이차를 두며 깔려 있다. 망해루지(望海樓址)를 감싸고도는 곡성(曲城) 부분에서 당성의 성벽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확인되었다. 당성의 외성지는 제 12외성지 2개가 존재하며 본성에 포함된 자성(子城)으로 남양장성(南陽長城)의 일부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조사결과 15m 정도 성벽이 노출되었는데, 이 중에서 6m 정도는 기단석을 포함하여 7∼8단 정도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으며, 그 외의 구간은 기단석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북문지는 잔존 길이 8.40m, 2.6m이며, 문지 바닥 양 벽면에서 문지공석(門址孔石)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조사결과 외성지로 알려진 성을 중심으로 망해루지를 포함하여 둘레 400∼500m의 테뫼식 석축성벽이 먼저 축조되었으며, 이후 현재 본성으로 알려진 토석혼축의 성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확장 시기는 당성이 이 지역의 중심지역으로 기능이 강화될 때부터로 보이며, 출토되는 유물의 양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건물지는 성내의 가장 넓은 평탄대지에서 방형의 유구를 비롯한 온돌구조와 배수시설 등 8개소의 유구가 조사되었지만, 유구들이 훼손되어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당성 주변에는 많은 관방유적이 위치하고 있어 당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해 해상교통로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즉 마도면 백곡리에는 백곡리토성(白谷里土城)이 있고, 서신면 광평리 성밖마을의 북쪽 구릉에서부터 남양동까지에는 남양장성이 있다. 그리고 남양반도 내에는 청명산성(淸明山城용두리성(龍頭里城화양진성(華梁鎭城) 등이 위치하고 있다. 당성은 서해상의 여러 섬들을 관찰할 수 있고 남으로는 태안반도의 산맥이 조망되는 중요한 군사적인 요충지이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중국과의 교섭이 이루어지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551년에 신라는 이 지역을 확보하여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섭을 실시함으로써 이후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도 많은 사신과 승려들이 당성을 통하여 중국에 왕래하며 활발한 교류활동을 전개하였고,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유교 등의 발달한 문화가 신라에 전래되면서 사상적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당성은 인적·물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중국의 발달한 문화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첫 번째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산줄기이야기
[한남서봉삼봉태행]구봉단맥

한남정맥이 수원 광교산에서 안양 수리산으로 가던 중 오봉산을 지나 경부선 철로를 건너 안양골프장을 지나 군포시 항동마을 47번국도변에서 올라간 도면상 184봉에서 정맥은 서진을 하고 한남서봉지맥을 남쪽으로 분기하여 구봉산(150), 칠보산(△238.8), 고금산(△86.6)을 지나 장안대학 뒷산(150)에서 다시 서쪽으로 분기한 [한남서봉]삼봉분맥(2차지맥)을 분기하여 흐르며 三峰산(270)을 지나 태행산(295)어깨에서 다시 서쪽으로 분기한 [한남서봉삼봉]태행분맥(3차지맥)이 태행산을 넘어 비산비야를 달려 마도면 금당리 성목재 삼거리를 지나 화성시 송산면, 마도면, 서신면의 삼면지점(90)에서 태행분맥은 남쪽으로 흐르고 북서방향으로 한줄기를 분기하여 구봉산으로 가는 산줄기를 그 산줄기중 제일 높은 구봉산의 이름을 빌어 [한남서봉삼봉태행]구봉단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름이 이렇게 길어진 곳은 그만큼 산줄기가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즉 한남정맥에서 분기한 [한남]서봉지맥에서 다시 분기한 [한남서봉]삼봉분맥(2차지맥)에서 또 다시 분기한 [한남서봉삼봉]태행분맥(3차지맥)에서 다시 분기한 구봉산으로 가는 10km이상 30km미만 산줄기라 [한남서봉삼봉태행]구봉단맥이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라 △37.2봉(1/9.7)-살곶이소초(살고지) 바닷가(0, 0.8/10.5)에서 끝나는 약10.5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

산행후기

오늘은 오랜만에 칼있으마님과 화성부근 산행하기로 한 날이다. 화성에는 고도가 높은 산은 없지만, 낮으면서 아기자기한 산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미답지인 봉화산, 구봉산, 청명산 3산을 연결하여 탐방하기로 하고 봉화산 들머리인 상안리를 찾았다. 상안리에는 등산 안내도는 없지만, 들머리를 잡아 봉화산 정상을 올라봤더니, 여우재에서 올라오는 방향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보아, 그 곳을 이용하면 편히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상에는 정상석과 약간의 조망 그리고 벤취, 체육시설등이 있었다. 봉화산에서 구봉산으로 가는 길은 이정표와 등산로 모두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구봉산은 당성(당성망해루)으로 여러가지의 팻말이 있었으며, 정상석은 없었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멋진 조망터 였다. 구봉산에서 청명산으로 가는 길은 일반인들이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으며, 다시 도로를 이용하여 한참을 걸은 후 청명산 들머리로 진입하였는데, 청명산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와 정상에 있는 정자 그리고 약간의 조망 모두 잘되어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칼있으마님과 재미있는 이야기와 농담으로 멋진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참고사항: 이 코스는 봉화산과 구봉산 그리고 청명산 모두 개개별로는 등산로가 잘되어 있지만, 세 산을 연결하려면 당성에서 청명산 방향으로 가는 두 지점이 길이 흐려 주의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