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덕유산(전북 무주)

꼴통 도요새 2009. 9. 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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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봉 유래■

 

주목이 많다고 향적봉…
그러면 덕유산 이름 유래는?
남덕유를 지나면서부터 덕유산(德裕山․1,614m)은 덕유산 이름 그대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온화하면서 포근한 전형적인 육산(陸産)이 천천히 그대로 다가온다. ‘참 좋은 산이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덕유산이란 이름도 덕스런 이름 그대로다. 덕유산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 안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덕이 있는 넉넉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한국의 3대 고원 중의 하나인 덕유평전에서 너울 치는 듯한 덕유산의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덕유산이란 이름은 1530년에 완성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그 전에는 여산(廬山) 또는 광산(匡山),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불렸다. 명재 윤증(尹拯․1629~1637)이 1652년(효종3) 24세 때 덕유산을 유람한 후 남긴 장편 시문인 ‘유여산행(遊廬山行)’에서 ‘여산은 곧 금산군 안성현에 있는 덕유산의 별명이다. 토산이면서 매우 거대하며, 호남과 영남 지방 사이에 웅거하고 있다. 내가 3일 동안 이 산의 안팎을 두루 돌아보고 돌아와 이를 기록하고, 이 시편을 짓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시 남쪽 파양호 근처에 있는 천하 명산을 가리킨다. 일명 광산(匡山), 또는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이 그 명산과 견줄 만하다는 것이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으며, 최고봉은 향적봉이다

덕유산의 유래

옛날 옛날에 산속 깊이 혼자 사는 떡장수가 있었는데...
장이 서는 날이면 첩첩산중을 넘어,넘어,떡을 팔러 장에 가곤 했다.....

어느날 그 날도 장에 떡을 팔러 갔다.

근데 장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요즘 들어 사람을 잡아 먹는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난 다는 소문이었다.

떡장수는 생각했다..

오늘은 일찍 해가 저물기 전에 집으로 가야겠다고,,,

근데 이게 왠일인가

오늘 따라 떡이 불티나게 팔리는게 아닌가!

정신없이 떡을 팔다보니 날이 뉘웃 뉘웃 지고있었다..

집으로 돌아 갈려니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장사가 잘 되어서 또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랑이 생각은 그냥 무시 하기로 하고 ,,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번째 산,,두 번째 산,,, 세 번째 산 ,,,

아무 이상 없이 집이 점점 가까워져 갔다...

앞으로 세 개의 산만 넘으면 집이었다....

휴...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며...

떡장수가 막 발걸음을 뛰는 순간

아니.. 갑자기 호랑이가 턱 하니 떡장수를 가로막고 서는 것이 아닌가...

'이젠 죽었구나'하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

호 랑이 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하는게 아닌가?

떡장는 '이거 잘만 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얼른 떡 바구니를 보니 떡이 딱 두개 남아있었다..

호랑이에게 떡 하나를 주니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호랑이가 사라지는게 아닌가...

떡장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죽지 않은 것에 감사 하며

마지막 두 번째 산을 넘어 갔다...

(물론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며.........)

두번 째 산도 거의 다넘어 갈 찰나에

또 턱! 하니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첨보단 약간 덜 놀라긴 했으나

무섭긴 매 한가지였다..

오김이 저려오고

숨이 막혀왔다..

근데 이번에도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그러는 것이었다..

떡장수 또 위기 탈출!!!

그러나 그 떡이 바구니에 남아 있는

마지막 떡이라는 것을 떡장수는 알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저산만 넘으면 안전하고,

따뜻한 집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거의 산을 다 넘고,

바로 앞이 집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호랑이가 나타났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멘트도 안 바꾸고,

똑같은 소리를 호랑이가 하는 것이엇다.

물론 아까 처럼 떡을 주면

호랑이는 그냥 사라져 주겠지만 ,

이걸 어떡하랴..

남아있는 떡이 없는걸 ,,

떡장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호랑이님 제가 지금 떡이 다 떨어져서 그러는데

다음에 호랑이님을 만나면 떡을 원없이 주겠습니다.

그러니 이번만 저를 그냥 놓아주시면

평생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호랑이님"

그러나 호랑이는 그냥 넘어 가지 않았다.

. "그럼 어쩔수 없지 떡이 없으면

너라도 잡아 먹어야 겠다. 어~~흥~~~..

호랑이가 떡장수를 덮쳤다...

떡장수는 쓰러져서

호랑이가 자기의 허벅다리를 뜯는걸 보며

점점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갑자기 떡장수의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이 아닌가

저 쪽에 떡바구니가 떨어지면서

뚜껑에 떡이 하나 붙어있는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서서히 깊은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떡장수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한마디를 남겼다.

"떡 있는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디

그 산에서 억울하게 죽은 떡장수를

사람들이 기리는 뜻에서

'떡(있을)유산' 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은 '덕유산'이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덕유산의 유래최고봉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安城面)·설천면(雪川面)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남덕유산은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경계에 솟아 있다. 두 산봉 사이의 약 20㎞ 구간에는 해발고도 1,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 경계를 이룬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무풍면(茂豊面)의 삼봉산(三峰山:1,254m)에서 시작하여 대봉(1,300m)·덕유평전(1,480m)·중봉(1,594m)·무룡산(1,492m)·삿갓봉(1,410m)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 지어 솟아 있어 일명 덕유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식생은 250여 종의 식물과 116종의 조류, 446종의 곤충류, 19종의 어류, 95종의 거미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계곡은 총 8곳이 있는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드는 길이 30㎞의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무이구곡(武夷九谷)을 비롯한 구천동 33경과 칠련폭포(七連瀑布)·용추폭포(龍湫瀑布) 등이 장관이고, 안성계곡·송계사계곡·산수리계곡 등도 명소로 꼽힌다.6월 초순에는 20㎞의 능선과 등산로를 타고 펼쳐지는 철쭉 군락이 볼 만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구천동계곡이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또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겨울에는 눈에 덮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장관이다.구천동을 지나 향적봉을 약 3㎞ 남겨 둔 곳에는 천년 고찰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이곳에는 매월당부도(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75년 2월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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