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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역사

꼴통 도요새 2015. 4. 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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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의 역사

 

역사:

백제시대에는 욕내(欲乃) 혹은 욕천(浴川)군으로 불렸는데, 산맥과 하천의 흐름을 본따 신라 경덕왕 때는 곡성(曲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시골장을 떠돌아 다니는 장사꾼들이 교통이 불편하여 통행에 어려움을 느낀 나머지 지나갈 때마다 통곡을 한다 하여 곡성(哭聲)이라 불렀고, 그 후 곡성(穀城)으로 변경되었으나 국가에서 지명만을 생각하고 조세를 부과한다는 주민 여론에 따라 이를 개칭, 곡성(谷城)으로 불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려 초에 승평군(昇平郡)에 속하였다가 후에 나주에 속하고 1172년(명종 2년) 감무(監務)를 두고 조선시대에는 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후에 남원에 예속시켰다가 1608년(광해군 원년) 다시 현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년) 군으로 승격, 1914년 창평군의 옥산면 등 8면을 합쳐 지금의 곡성군이 되었다. 1979년 곡성면이 곡성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3년 석곡면 운룡리가 승주군 주암면에 옥과면 송전리가 입면에, 겸면 봉산리가 옥과면에 편입되었다. 1읍(곡성), 10면(오곡·삼기·석곡·목사동·죽곡·고달·옥과·입·겸·오산)을 관할한다.

 

 

연혁:

본래 백제의 욕내군(欲乃郡)이다.

757년 곡성군(谷城郡)으로 개칭하고 부유현(富有縣), 구례현(求禮縣), 동복현(同福縣)을 관할하였다.

940년 승평군(순천시)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부유현은 곡성과 함께 승평군, 구례현은 남원부, 동복현은 보성군의 속현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뒤에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1409년 전라도의 모든 향·소·부곡이 폐지되면서 곡성현의 율곡부곡(栗谷部曲)이 폐지되어 직촌이 되었다.

1597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폐해져 곡성현이 폐지되어 남원도호부에 편입되었다.

1608년 곡성현이 복설되었다.

1895년 남원부 곡성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곡성군이 되었다.

8면 : 도상면(道上面), 예산면(曳山面), 오지면(梧枝面), 우곡면(牛谷面), 삼기면(三岐面), 석곡면(石谷面), 목사동면(木寺洞面), 죽곡면(竹谷面)

.1914년 4월 1일 창평군에 편입된 옛 옥과군(옥산면, 입면, 겸면, 지면, 수면, 화면)과 구례군 고달면을 편입하였다. [1] 도상면·예산면을 곡성면으로, 오지면·우곡면을 오곡면으로, 옥산면·수면을 옥과면으로 통폐합하고, 지면을 겸면에 편입하여 11개면 126리로 개편되었다.

1979년 5월 1일 곡성면이 곡성邑으로 승격하면서 11개면에서 1읍 10면 126 리로 개편되었다. [2]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으로 석곡면 운룡리가 순천시 주암면에 편입됨에 따라 1읍 10면 125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 문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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