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관한 자료

우리 산이름 이렇게 본다

꼴통 도요새 2016. 11. 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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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수적 해석이나 실수가 더 많다

 

일제가 바꾼 백두산 최고봉 ‘대정봉’을 제외하면 대부분 우리가 잘못 인식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 지형지명서비스에서 찾아보면 남한의 산 이름은  9,000여 개가 있다. 이중에서 둘 이상의 행정구역에 속해 중복 표기된 것과 제주도의 오름을 제외하면 약 5,200여 개에 이른다. 모두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하는 국가기본도에 표기하기 위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건설교통부장관이 고시한 것이다. 지명은 1961년 4월22일에 일괄고시를 한 이후 수시로 변경이나 신설 고시하고 있으며 고시되지 않은 산이름도 많다. 산이름은 산세가 수려해 일찍부터 그에 걸맞는 이름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 기록을 남긴 것도 있고, 이름은 얻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사장되고  다른 이름으로 바뀐 경우도 있으며, 산자락에 붙어사는 사람들에 의해 구전으로만 전해오다가 뒤늦게 기록에 오른 것도 있다. 그리고 식자층이 사용하는 이름과 서민층이 사용하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고, 산 양쪽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산이름이 옛 문헌에 기록된 것과 다른 경우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우 옛 문헌의 이름을 되찾아주자고 주장한다. 특히 옛 문헌의 이름과 현재 이름이 다를 경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일제가 과연 산이름을 조작했는지를 살펴보고 산 이름과 관련한 개선점을 짚어본다. 

 

산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은 조선시대

일제는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1:50,000 지형도를 발행했다. 우리나라의 모습이 최초로 입체화된 현대지도로서 그 당시 까지 가장 많은 산이름들이 기재된 귀중한자료다.이 지도는 우리 백성을 지배하고 자원을 수탈할 목적 등으로 만든 정보자료이지 우리 백성의 편익을 위한다거나 백성을 상대로 홍보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있는 자연지명은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히 기재한 것이지, 자기네 입맛에 맞게 조작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은 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 조선시대의 산에 관한 기록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서민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산이름을 지도나 문서 등의 기록에 올리자면 그 이름을  한자로 바꿔야했다. 이 과정에서 음에 맞은 한자를 골라서 쓰기도 하고, 뜻에 맞은 한자를 쓰기도 했다. 산경표 38쪽 나팔령은 喇(나팔 나)와 叭(입벌릴 팔)과 같이 뜻과 음이 맞는 한자를 골라 喇叭嶺이라고 썼고,  똑같은 지명을 증보문헌비고 권19 여지고 5에서는 나팔령이 순화된 나발령의 음에 맞는 한자를 골라 손 手 변에 羅(찢을 나) 撥(다스릴 발)로 썼다.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비교해 봐도 음이 같으면서도 한자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백두대간의 대미산(黛眉山-大弥山), 건의령(建儀嶺-巾衣嶺) 등이다. 이것은 구전되어온 지명을 각 기록의 조사자가 음이 같은 한자를 임의로 골라 만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호남정맥을 종주하던 중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 마을로 내려가 정자에서 마을 노인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께서 서암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은 산 속에 샘이 있어 시암산이라 하고, 그 오른쪽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봉황산이라고 한다” 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날 서암산을 넘어 담양군 무정면 서흥리의 고개 근처를 지나면서 밭에서 일하는 분들께 “저 산이 시암산 맞나요?” 하고 물으니 “어디서 왔다요?” 한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하니 “서울 양반이 어떻게 시암산을 다 안다요?” 하며 반문한다. 그러니 서암산은 시암산으로 구전되어온 것이 틀림없고, 일제가 지형도를 만들 때 서암산이란 한자이름이 이미 있었거나 아니면 기록에 올리기 위해 조사하는 사람에게 마을 유지나 선비는 음이 비슷하면서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골라 ‘상서로운 바위가 있는 산’이라는 뜻을 갖는 瑞(상서 서) 巖(바위 암)이라고 써줬다고 짐작된다. 일제가 한자로 바꿨다면 이런 좋은 뜻을 가진 이름으로 바꿨겠는가. 일제는 지형도에 산이름을 한자로 크게 기재하고 일본문자를 작게 나란히 적고 있다.  일제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한자명을 찾아서 기록하고 찾지 못한 것은  일본문자로만 크게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백두대간의 고루포기산은 한자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일본문자로만 쓰여 있는데, 읽으면 '고루포기산'이 된다. 

지형도의 한자이름은 글로 표현하는 경우의 산이름이며, 일본문자로 기록된 것은 그 한자의 일본식 발음이 아니고 실제 우리말로 표현되는 산이름이다. 예를 들면 지리산의 고리봉은 한자로 '環峰(環=고리 환)'이라고 기재했지만, 같이 쓰여 있는 일본문자를 읽으면 '고리봉'이다. 이 지도를 가지고 현지에서 環峰을 찾으려면 일본문자로 쓴 대로 읽으면 현지사람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는 지형도에 일반 서민들이 두루 사용하는 지명을 표기했다. 예를 들면  '숭례문'은 나라에서 지은 이름을 이마에 붙이고 있지만, 일반 서민들은 성곽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구분하기 쉽게 '남대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숭례문’이라는 공식적인 이름보다는 대중 사이에 일반적으로 통하는 ‘남대문'을 지도에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관이나 지식인들이 만든 문헌이나 지도에 나타나지 않고 그 지역 주민들에 의해 구전되고 그 지방 관서나 선비들에 의해 한자화된 지명들이 이때 비로소 다른 유명 산과 대등하게 지도에 등재된 것이다. 지도는 정보이고, 정보는 사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제가 임의로 한자 이름을 만들어서 지도에 기재하였다면 그것이 무슨 정보가치가 있겠는가. 일제강점기의 지도를 이해하려면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해보고 그 지도의 용도와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속리산 천황봉은 일제가 바꾼 것이 아니다


 속리산 천황봉은 대동여지도에 天王峰(천왕봉)으로 표기되어 있고, 현 지형도에는 天皇峰(천황봉)으로 표기되어 있어 일부 사람들은 이를 일제가 자기네 왕의 호칭인 천황으로 바꿨다고 주장한다. 먼저 국토지리정보원의 자료에서 천황산과 천황봉을 찾아서 일제의 지형도와 비교해 보자.<표1 참조> 일제가 명칭을 바꾼 것이라면, 일제 지형도에 9개의 ‘천황’이 있는데, 모두 자기네 천황의 명칭을 갖다 붙인 것이라면, 속리산 천황봉이야 그럴싸하지만, 천황을 통영의 욕지도와 사천의 조그만 섬으로 귀양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속리산 천황봉만 기왕의 천왕봉을 바꾼 것이고 나머지는 본래부터 있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면, 천황이라는 명칭의 권위를 위해서 보잘 것 없는 산들에 붙어있는 천황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는가. 해방 후 반세기도 더 지난 1998년에 계룡산의 주봉을 천황봉으로 고시했는데, 여기에 관여한 모두를 친일파로 몰아세울 것인가. 천황의 명칭을 가진 산이나 봉은 모두 충청. 전라. 경상도 등 남부지방에만 있고 산의 높이가 다양하다. 이것은 그 산꼭대기에 천신이 하강했다는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명칭은 일반 서민들의 입을 통해 구전될 뿐이어서 옛 문헌이나 지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보자료로서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이름들을 모두 모은 일제 지형도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고전에는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일어나 뜨락을 거닐며 서로 함께 문장대와 천황봉의 운연어린 면모를 가리켜 보이곤 하였는데)’에 천황이란 글자가 보인다. 

 

  <표1> ‘천황산. 천황봉’ 표기의 국토지리정보원과 일제 지형도 비교  

표기지명

높이

소재지

고시일자

일제지형도

비고 

한글

한자

시군

천황산

天皇山

1,189.0

경남

밀양시

 1961.4.22

天皇山

 

(속리산)천황봉

天皇峰

1,058.4

충남

보은군

 1961.4.22

天皇峰

 

천황산

天皇山

909.6

전남

남원시

 1961.4.22

天皇峰

 

(계룡산)천황봉

없음 

845.0

충남

논산시

 1998.8.17

 없음 

 

(월출산)천황봉

天皇峰

812.7

전남

강진군

 1961.4.22

天皇峰

 

천황산

없음

658.0

경남

의령군

 2002.1.5

없음 

 

천황봉

天皇峰

652.2

전남

구례군

 1961.4.22

天皇峰

 

천황산

天皇山

471.0

경남

통영시

 1961.4.22

天皇山 

천황산

天皇山

395.2

경남

남해군

 1961.4.22

天皇山 

천황산

天皇山

392.4

경남

통영시

 1961.4.22

天皇山 

천황산

天皇山

364.0

경남

진주시

 2002.1.5

없음

 

천황봉

天皇峰

362.4

전남

곡성군

 1961.4.22

없음 

 

천황산

天皇山

342.5

경남

고성군

 1961.4.22

없음

 

천황산

天皇山

287.0

경남

남해군

 1961.4.22

없음

천황산

天皇山

213.3

경남

진주시

 1961.4.22

없음

 

천황산

天皇山

208.0

전남

순천시

 1961.4.22

없음

 

천황봉

天皇峰

75.9

경남

사천시

 1961.4.22

天皇峰

  

仁旺山’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났다


仁旺山(인왕산)은 王(임금 왕) 옆에 日(날 일) 자가 붙어 있어 일제가 王(왕)을 자기네 왕인 日王(일왕)이라고 조작한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1995년 광복 50년을 맞이해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 후 평창군의 發旺山(발왕산)과 加里旺山(가리왕산). 中旺山(중왕산)이 똑 같은 이유로 쫓겨났다. 과연 그럴까. 

 

日王(일왕)은 일본 국민이 아닌 딴 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자기네 왕을 왕이라 칭하지 않고 천황이라고 한다. 지배당한 우리 백성이 천황 숭배에 반발해 총독부 뒤에 있는 인왕산의 ‘王’ 자에 ‘日’을 붙여 '천황은 우리와 상관없는 너희네 왕이다' 하는 뜻으로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꿔 썼다고 한다면 몰라도 우리 백성을 천황의 신민이라고 하던 그들이 천황을 왕으로 낮추고 굳이 일본 왕이라고 하여 우리 백성을 일본과 구분하는 명칭으로 바꿨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표2>는 지명을 변경고시 하기 전에 산 이름의 가운데 旺(왕) 자가 들어있던 산들이다. 일제 지형도에 표기된 산은 8개이고, 이 중 서울의 인왕산과 영동의 대왕산은 "旺"이 아닌 "王"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현지 사람 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간오지의 산들은 旺 자로 고치면서 서울 한복판의 인왕산은 그대로 뒀다가 나중에 바꿨을까(지명변경 주장이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후에 바꿨다는 자료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2 훈련도감 척후복병편에 '호위할 때에는 척후와 복병은 도성의 분담구역에 따라서 지키는데, 북악ㆍ인왕산(仁旺山)ㆍ안현ㆍ돈의문 밖 삼거리'라는 기록에서도 仁旺山을 찾아볼 수 있다(위 일제 지형도 인왕산 부근과 만기요람의 원문 참조).

만기요람은 조선 23대 순조 8년(1808년)경에 시임(時任) 호조판서 서영보(徐榮輔)와 부제학 심상규(沈象奎)가 함께 비국유사당상(備局有司堂上)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찬진(撰進)한 것이다.   

 

<표2> 최초고시 당시 가운데에 旺자가 들어있는 산 

소재지

한글지명

높이

      한자이름

시군

읍면

1961년 최초 고시

1995년이후 변경 고시

일제 지형도

평창군

진부면

가리왕산

1,561

加里旺山

加里王山

加里旺山

양평군

양동면

금왕산

488

金旺山

 

金旺山

영동군

양산면

대왕산

304

大旺山

 

大王山

평창군

도암면

발왕산

1,458

發旺山

發王山

發旺山

화순군

도암면

선왕산

414

仙旺山

 

없음

밀양시

청도면

열왕산

663

烈旺山

 

烈旺山

서대문구

 

인왕산

338

仁旺山

仁王山

仁王山

괴산군

청천면

주왕산

408

周旺山

 

없음

평창군

진부면

중왕산

1,377

中旺山

住王山

中旺山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

757

火旺山

 

火旺山

  

일제 조작이라는 산이름이 고전에 있는 것들


이런 신문기사가 있다. 

‘서울 북한산의 이름이 삼각산으로, 이 산의 백운대는 백운봉으로 바뀐다. 인천 강화 마니산은 마리산으로, 지리산 천황봉은 천왕봉으로, 경기 양평 유명산은 마유산으로 각각 개명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시작된 ‘우리 산이름 바로찾기’ 캠페인을 통해 접수된 국민제안 중 향토 사학자와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47개의 제안을 최종 확정, 정부지명위원회에 이름을 바꾸도록 요청했다. 지명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면 이들 산이름은 바뀌게 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리산 천황봉의 경우 원래 이름은 천왕봉이었으나 일제가 천황을 빗대어 천황봉으로 바꾸었던 것을 이번에 원래 이름을 되찾도록 권고했다. 또 일제가 임의로 변경한 충북 영동 민주지산도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된 백운산으로 개명하도록 했다. 일제 때 신작로가 생기면서 이화령(경북 문경)으로 이름이 바뀐 이우릿재가 이번에 이름을 되찾도록 했고, 대전 계족산은 일제가 산의 격을 낮추기 위해 바꾼 것을 이번에 원래의 봉황산이란 이름을 되살리도록 했다. 서울 강북구와 경기 고양시 경계지역에 위치한 백운대 역시 원래 이름은 백운봉이었으나 일제가 자연적인 봉우리 의미를 축소하고 인공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멋대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춘천 우두산은 소슬뫼 ▲구미 금오산은 대본산 ▲춘천 가리왕산은 갈왕산 ▲충북 제천 작성산은 까치성산으로 각각 개명될 것으로 보인다.<출처www.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0091813491&code=940100> 하나씩 살펴보자. 삼각산은 유식한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이름 짓고 많은 글들을 남기고 산경표나 대동여지도 등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만, 몽매한 많은 일반 백성들은 북한산성이 있으니 알기 쉽게 북한산으로 부르면서 구전되어 오다가 일제는 지형도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북한산으로 기재했다. 남대문, 동대문 등과 같은 경우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3권 영처문고1(嬰處文稿一) 서(序)에 북한산(北漢山)으로 독서하러 가는 이중오(李仲五)를 보내는 서(序) 등에 북한산 명칭이 나온다. 백운대와 같이 대로 불리는 것은 북한산 백운대, 속리산 문장대, 지리산 만복대, 북한 자강도 동신군과 전천군 경계의 백산 청학대(1,875m) 등이 있고,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2권 시(詩)의 산 중에서 지은 절구[山中絶句] 등에도 백운대 명칭이 나온다. 강화 마니산은 신숙주(1417-1475)의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0권에 마니산(摩尼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전 계족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회덕현(懷德縣)편에 계족산(鷄足山)으로 되어 있고, 구미 금오산은 신숙주의 국조보감 권13에 선산의 금오산(金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경 이화령은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학주전집 제2권(鶴洲先生全集 卷之二)에 한자는 다르지만 문경 이화령(伊火嶺)이 보인다. 제천 까치성산은 鵲(까치 작)성산의 풀어쓰기이고, 춘천 소슬뫼는 山(뫼 산) 자를 쓰는 다른 산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데 굳이 거꾸로 갈 필요가 있겠는가 


일제가 조작한 산이름은 없었는가


 위에서 일제가 만든 지형도에 표기된 산들의 이름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 일제는 산이름을 조작하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제일 중요한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자기네 천황 '대정(大正)'을 붙였다.

 '백두산 대정봉', 이것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기를 누르려는 의도가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패망과 함께 그 이름은 사라지고 오로지 그들이 만든 지형도에만 그 오만했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산이름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한 것도 있고 현지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 전해지는 이름을 무시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멋대로 이름 지어 기록으로 남긴 것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기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와 과거의 기록이 다르다고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자고 우기는 것도 문제가 있고, 더 문제가 있는 것은 그것을 일제가 조작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일제가 지형도에 담은 산이나 강 이름은 우리네 서민들이 일상생활에 쓰던 것들을 모아서 그네들이 지은 창고에 쌓아놓았다가 버리고 도망간 물건과 같다. 때 묻은 것은 닦고 부서진 것은 고쳐서 써야 할 것이다.


우리 산이름에서 고칠 것은 없는가


그들이 기재한 남한의 산 2500여개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산이름을 보면 한자명이 같은 것 1850여개, 한자이름이 없거나,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것, 시루봉=甑峰과 같이 발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것 등 450여개, 모두 2300여개의 산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고 나머지 중에서도 절반은 뜻이나 한자 모양이 비슷한 것들이다. 낙동정맥에서 가지 친 산줄기가 보현산을 지나 노귀재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750.6봉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에워싸는 보현지맥과 팔공지맥이 나뉘는 분기점인데 이름이 없다. 일제 지형도에 석심산(石心山)으로 표기되어있으므로  그 이름이 일본과 관련한 문제점이 있어 제외했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누락된 것이라면 닦아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백두대간 조령3관문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는 1961.4.22 충청북도와 중앙 지명위원회를 거쳐 마역봉이라고 고시를 하였는데 2000.12.30 경상북도와 중앙 지명위원회를 거쳐 마폐봉이라고 새로운 고시를 하였다. 하나의 봉우리에 도를 달리하여 두 개의 지명이 고시가 된 것이다. 일제 지형도를 보면 馬(말 마)와 門(문 문)안에 力(힘 력)자가 들어간 글자인데 이 글자가 한자사전에 없으므로 모양이 가장 가까운 閉(닫을 폐)자의 오기라고 본다면 마폐봉이 되고 같이 기재된 일본 문자를 읽으면 마역봉이다. 이런 경우는 부서진 경우로 보고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써야 할 것이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경계의 봉우리도 충청남도와 중앙 지명위원회를 거쳐 1961.4.22에 고시된 함박봉이란 명칭이 있는데, 2000년에 전라북도와 중앙 지명위원회가 성태봉이란 이름을 심의 통과시켜 한 봉우리가 두 개의 공식지명을 갖게 되었다. 위의 마폐봉. 마역봉과 같은 경우다. 금남정맥의 성정산(城頂山)과 같은 경우, 고시지명은 성정산이고 표기지명은 城項山(성항산)이다. 즉 지도에 한자로는 성항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금남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항산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충북 진천군 만뢰산의 한자 표기지명 및 지형도 표기 한자는 '萬筋山'인데  '筋'자를 '뢰'로 읽을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충남 서산시 몰니산은 고시지명과 표기지명은 몰니산인데 지형도에 '沒混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몰곤산' 또는 '몰혼산'으로 읽게된다. 위와 같은 것은지명관리 상의 문제로 보인다. 지명관리나 지명고시가 잘못되어 지명위원회가 형식적인 위원회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낙동정맥에서 호미곶으로 가는 호미지맥을 보면 울주군과 경주시 경계에 치술령(766.9m)이란 봉우리가 있다. 이 치술령은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리고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진양호로 가는 진양기맥 중에도 함양군과 거창군의 경계에 관술령(606.1m)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이 또한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함양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목에 관술치가 보인다. 낙남정맥의 여항산 동쪽 봉우리도  미산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는 지형도 표기상의 문제로 보인다. 고개는 반드시 표고점과 이름을 같이 표기하여 그 위치를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설사 위 지명이 고개이름이 아니고 당초부터 산봉우리 이름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에 와서도 산이나 봉을 고개와 혼동이 되는 ‘령’으로 쓸 이유가 없다. 굳이 산 이름으로 써야한다면 ‘치술산’, ‘관술봉’, ‘미산봉’ 등으로 바꿔서 써야 할 것이다.   

 

지형도에 산과 봉 표기 구별 없어 혼란 가중


내장산 국립공원은 내장산, 입암산, 백암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지형도에 백암산은 없다. 물론 고시된 지명에도 없다. 단지 백암산의 주봉인 상왕봉만 존재한다. 충남의 가야산은 고시지명에서 찾아보면 나오지만 지형도에는 가야산은 없고 가야봉만 있다. 상주시와 영동군 경계에 있는 백화산은 없고 그 자리에 포성봉과 주행봉이, 그리고 철원군과 연천군의 경계에 있는 보개산은 없고 그 자리에 지장봉과 화인봉만이 보인다. 이런 경우는 지도에 산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의 문제로 보인다. 공식지명에서 사라진 산이름을 되찾아 산이름을 주봉의 이름 앞에 표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호남정맥이 남진하다가 동쪽으로 90도 꺾이는 일림산은 해마다 5월이면 보성군에서 철쭉축제를 여는 산이다. 그런데 이 산에서 군 경계를 같이하고 있는 장흥군에서는 홈페이지에 ‘삼비산’이라 소개하고 있다. 같은 산을 인접한 두 군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장흥군이 ‘삼비산’이라고 하려면 측량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명변경의 절차를 밟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가평의 연인산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서비스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공식지명으로 고시된 후 그 산이름을 홍보해야 할 것이다. 선운산 도립공원에는 선운산이 없다. 선운사를 중앙에 두고 경수산-개이빨산-청룡산-비학산-구황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을 총칭해서 선운산이라면 산들을 모두 봉으로 바꾸고, 주봉에 선운산이란 명칭을 붙여주든지, 아니면 선운사 도립공원으로 해야 할 것이다. 남해군의 호구산 군립공원, 산청군의 웅석산 군립공원, 순창의 강천산 군립공원도 해당 산이름을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서울의 아차산에는 용마봉이 있다. 그런데 용마봉은 어느 틈에 독립하여 용마산이 되고, 지하철에 용마산역이란 이름까지 등장했다. 한 개의 산에 있는 봉들을 점으로 본다면 그 산은 면이다. 지도는 이 점을 고려해서 봉은 해당 봉우리에 그리고, 산은 그 산의 중간쯤에 그 이름을 표기했다. 그러다 보니 아차산이 표기된 곳은 용마봉보다 높이가 낮다.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봉과 산을 각각 보았다. 그러다 보니 아차산보다 높은 용마봉을 용마산이라고 해야 맞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용마산이라고 부르니 국토지리정보원은 고시지명은 용마봉인데 지명변경 절차 없이 지도에 용마산으로 표시하게 된다. 즉 표기지명만 바꾼 것이다.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해야

이름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경우 산과 봉을 가려 쓰는 기준도 마련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연 지명을 신설 또는 변경 사용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칠 것을 강제하는 규정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산이름의 관리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자. 강은 건설교통부 와 수자원공사가 하천법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고시한 3800여개의 강들을  길이와 유역면적들을 모두 재서  권역별로 강의 시작과 끝 그리고 길이와 유역면적 등을 담은 일람표를 2002년에 작성 발표하고 매년 변경되는 내용을 수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물론 하천관리를 위하여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강의 시작과 끝이 고시된 내용을 따르고 그래서 강의 이름과 길이 등에 일부 문제점은 있으나 남한 전체의 강을 아우르는 일람표라는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산을 관장하는 산림청에는 산에 관한 자료가 없다. 산이름이나 높이 등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중복해서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지도에 표기하는 지명은 흩어진 구슬이고 이 구슬을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것은 산림청의 몫이 아니겠는가. 산림청은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시한 산이름과 지형도에 의하여 산의 범위를 정하여 주된 봉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한 다음에  산과 그에 속하는 봉 그리고 독립된 산 과 봉 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 일람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람표를 만드는 과정에서 산이름의 표기위치가 잘못되거나 산이름이 없어졌거나 봉이 산으로 잘못 표기된 것 등이 도출될 것이고 그 것들을 종합해서 산하기관별로 시.군.구 지명위원회를 통하여 시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우리 산이름 바로 찾기’ 정도는 산림청이라는 국가기관이 맡을 만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산이름의 제정이나 변경은 반드시 그 산이 소재하는 시.군.구의 지명위원회를 거쳐야하고 시·군·구지명위원회의 위원장은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산림청이나 국토지리정보원이 아닌 해당 시. 군. 구청에 해당 산의 위치를 정확히 표시한 지형도와 산이름을 제정 또는 변경해야 할 이유, 그 근거서류 등을 첨부하여 민원서류로 제출하면 측량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처리가 될 것이다.<관련 법령 참조>

 

지명 제정과 변경에 관련한 법령 


 

측량법 第57條(地名) 地方自治法 기타 다른 法令에 정한 이외의 地名은 第58條의 規定에 의하여 決定하고 建設交通部長官이 告示한다 


 

측량법 第58條(地名委員會) ①地名의 制定·變更 기타 地名에 관한 중요사항을 審議·決定하기 위하여 建設交通部에 中央地名委員會를, 特別市·廣域市 또는 道에 市〕地名委員會를, 市·郡 또는 區(自治區를 말한다. 이하 같다)에 市·郡·區地名委員會를 둔다
   ②市〕地名委員會는 市·郡·區地名委員會의 보고를 받아 地名을 審議·決定하여 中央地名委員會에 보고하며, 中央地名委員會는 市〕地名委員會의 보고를 받아 이를 審議·決定한다.
   ③建設交通部長官은 中央地名委員會에서 審議·決定된 地名을 大統領令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告示하여야 한다
 

측량법시행령 제33조(지명의 고시) 법 제58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지명의 고시에는 다음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제정 또는 변경된 지명
   2. 삭제
 

   3. 소재지(행정구역으로 표시한다)
   4. 위치(경도 및 위도로 표시한다)
 


 

측량법시행령 제35조 (지방지명위원회의 구성) ①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한 시·도지명위원회는 위원장 및 부위원장 각 1인을 포함한 10인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고, 시·군·구지명위원회는 위원장 및 부위원장 각 1인을 포함한 7인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②시·도지명위원회의 위원장은 행정부지사(특별시 및 광역시의 경우에는 행정부시장을 말한다)가 되고, 위원은 관계공무원 및 지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중에서 시·도지사가 임명 또는 위촉하는 자가 된다.
 

   ③시·군·구지명위원회의 위원장은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이 되고, 위원은 관계공무원 및 지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중에서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이 임명 또는 위촉하는 자가 된다
   ④공무원이 아닌 위원의 수는 시·도지명위원회에 있어서는 5인이상으로 하고, 시·군·구지명위원회에 있어서는 3인이상으로 한다.
 

 

*고전 관련 기록은 ‘민족문화추진회’의 자료에서 발췌한 것(출처: 산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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