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 대령산, 소령산, 남수산

꼴통 도요새 2017. 12. 27. 10:20

울진 대령산, 소령산, 남수산

 

1. 산행지: 대령산(大嶺山, 652.5m), 소령산(590m), 남수산 가진봉(嵐峀山, 437.7m)

2. 위치: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3. 일시: 2017년 12월 25일(월)

4. 날씨: 맑고 춥고 강한 바람

5. 누구랑: 강일님과

6. 산행시간: 5시간30분[산행거리: 10.2km]

7. 들머리/ 날머리: 구)무릉관광농원 앞/임도입구(69번지방도.매화저수지 상류)/ 울진농업기술센터

8. 산행코스: 구)무릉관광농원 앞/임도입구(69번지방도.매화저수지 상류)~헬기장~대령산~왕피리 갈림길~소령산삼거리 이정표~소령산 갈림길~(소령산 왕복, 약 50m)~움막~삼거리이정표(기양1리)~사거리(굴구지.연시골)~삼각점(437봉)~남수산 가진봉(437.7m, (嵐峀山 유래비)~쉼터~군사시설갈림길(남수산 갈림길)~임도~쉼터~울진농업기술센터

9. 특징

몽천고적과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

울진군 매화면 금매2리 몽천동마을, 목련봉밑에 있는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은 효종때 삼남 지방의 8년 한해로 굶어 죽는 백성이 부지기수로 효종께서는 이것을 자신이 부덕하고 정치를 잘못한 탓으로 하늘이 벌주는 재해라 하여 하늘에 사과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다가 전국에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구하니 우암(憂庵) 윤시형(尹時衡) 선생이 붓을 들어 임금의 부덕함과 정치 잘못됨을 누누이 기재한 상소문을 보내니 임금께서 비답(批答)하시기를 초야에 묻힌 한 천한 선비로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오직 한조각 붉은 충성에서 비롯함을 내가 앎에 심히 기뻐해마지 않노라. 두 번, 세 번, 또다시 읽어도 차마 놓지 못하겠노라. 정치의 폐단을 마땅히 묘당에 명령하여 의논해 처리하리니 그리 알라하셨다. 그 뒤 숙종대왕때 우암의 맏아들인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 선생께서 정치의 부패와 민생의 고통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 광정책(匡正策)을 적어 상소해 올리니 숙종께서 그 상소문의 글이 잘 되었고 시의에 맞는 적절한 건의라 하여 기쁘고 고맙다는 내용의 비답(批答)을 보내주셨고 또 정조대왕때 우암의 증손되는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선생께서 상소한 정관치설(井觀癡設)에 대하여 임금께서 보내주신 비답(批答)을 모아 소장한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이 비록 300년 모진 풍우속에 단청은 퇴색되고 건물이 퇴락되었으나 그대로 남아 있다. 어비각 남쪽 돌틈속 세 곳에서 샘물이 솟아 큰 못을 이루었으니 우암께서 주역몽괘(周易蒙卦)에 산하출천(山下出泉)의 뜻으로 몽천(蒙泉)이라 이름하였다. 일찍이 줄거나 불어나는 일이 없이 여름에는 물이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예로부터 명승지로 손꼽혔다. 옛적에는 상소(上炤), 하소(下炤) 두개가 있어 각각 백여평이 되어 많은 놀이꾼들이 달밤에 뱃놀이 하는 유흥처가 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논이 되어 있다상소(上炤) 위에 한그루의 괴목이 있었는데 그 나이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봄이 되면 새싹은 돋아나니 몽천고적과 더불어 길이 보존 될 것이다. 현종때 지방선이 주개신(朱介臣)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이우당(二友堂)이 있었고 정조때 윤사진 선생께서 지은 영귀정(永歸亭)이 있었고 광해 13년에 남격암의 위패를 모시던 몽천사(蒙泉祠)가 있었는데 숙종 19년에 울진선비들이 격암선생같이 전국적으로 이름난 어른을 몽천사에 모실 것이 아니라 울진 향교옆에 향현사를 지어 전군민이 함께 제사 지냄이 마땅하다 하여 황림(篁林) 선생께서 그 자리에 몽천서당(蒙泉書堂)을 지어 지방의 청년선비들을 모아 가르쳤다. 이 어른이 돌아가신 뒤에 그 제자들과 문중에서 손을 모아 서당 앞에 과행제(果行齊)와 육덕제(育德齊)를 세워 영조 14년 이름하여 몽천서원이라 하고 우암, 삼족당, 황림의 세 어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며 그 유덕을 추모하는 유덕회(遺德會)가 매년 한번씩 개최되었는데 철종 7년에는 국가에서 그 제사 비용을 부담하게 되어 군내의 많은 선비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으나 고종 5(1868)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고 말았다.[대령산에 대한 유래는 찾을 수가 없었고, 산행 시 이 비각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이 산행기를 보시는 후답자 분들을 위하여 몽천고적과 삼조어비각에 대한 유래로 대령산 유래를 대신하였다]

산행후기

어제 동해 달반니산 코스를 시원하게 마무리 하고 다시 울진읍으로 돌아와 숙소를 마련하고 신경수선배님께서 사 주신 맛있는 동태탕으로 배불리 먹고  2차는 마트에서 맥주 몇병을 구입한 뒤 밤 늦게까지 신경수선배님 그리고 강일님과 모텔에서 밤 늦게까지 산 이야기를 하며 하룻밤을 보낸 뒤, 오늘은 신경수선배님을 통도산 휴양림 낙동천축단맥 들머리 모셔다 드리고 다시 울진으로 돌아와 강일님과 함께 대령산 입구로 가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들머리 임도로 진입 하자마자 등산로 입구가 잘되어 있어 능선으로 진입하였는데, 대부분의 등산로가 뚜렷이 되어 있어 편히 대령산까지 오르게 되었고, 대령산에서 소령산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로 한참 동안 안부로 내려 섰다가 다시 소령산으로 오르는 급경사이었다. 소령산은 오룩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정상 표시기도 없지만 소령산 삼거리란 이정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에서 소령산으로 부르는 것 같아 소령산으로 표기 하기로 하였다. 소령산에서 남수산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편안히 둘레길 처럼 되어 있어 편히 갈 수 있었고, 중간에 움막과 사거리로 표시된 곳에 이정표 방향이 틀려 잠시 머뭇거리기도 하였지만 남수산 아래 임도에 세워진 이정표가 정확하게 방향 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남수산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남수산 가진봉이라 표시되어 있는 것과 오룩스지도에 군부대가 있는 곳이 남수산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군부대가 있는 곳에 남수산의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을 남긴 채 오늘 산행을 모두 마무리 하였다.

 우리산줄기이야기

낙동금장지맥:

낙동정맥이 태백 매봉산어깨에서 분기하여 남하하면서 영양 수비면의 유명한 검마산자연휴양림이 있는 검마산에서 온천으로 유명한 백암산으로 가면서 주봉(1017.2)지나 원을 그리며 남진하는 지점인 도면상 918m라고 표기가 된 바로 북측 능선에서 정맥은 남진하고 북동쪽으로 한줄기를 분기하여 영양군 수비면과 울진군 온정면의 경계를 따라 790.5-임도(610)- 88번국도 구주령(550, 3.3)에 이른다. 854-金藏山(848.7, 2.8/6.1)에서 내려간 등고선상 750m 지점에서 大嶺山(652.1, 단맥)을 떨구고 동진하여 69번국지도 선미고개(370, 3.2/9.3) 내려서기 직전 등고선상 430m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日出峰(131.1, 단맥)을 떨구고 북동진한다. 453.2-외길마임도(290, 2.6/11.9)-493.9(5.2/17.1)-외잠산도로(현종산 분기점, 310, 4.6/21.7)-이울마을도로(210, 1.6/23.3)-17번군도 익산치 대잠동마을(110)-7번국도 매화리고개-7번국도(130,3.9/27.2)-172.5-143(2.5/29.7)-146-월증동도로(50, 4.3/34)-관동팔경의 첫 번째인 망양정 지나 울진군 남면 산포리 망양동마을에서 아직까지도 청정구역으로 남아있는 왕피천이 바다가 되는 그 이름도 쟁쟁한 망양해수욕장(0, 3/37)에서 끝이나는 약37km의 산줄기에 이름이 없어 그 산줄기 중 제일 높은 금장산의 이름을 빌려 낙동정맥에서 분기하였으니 낙동금장지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낙동금장대령단맥:

낙동금장지맥이 금장산 지나 영양군 수비면, 울진군 온정면, 원남면의 삼면 경계지점인 등고선상 약750m 지점에서 동쪽으로 지맥은 흘러가고 한줄기를 북쪽으로 분기하여 수비면과 원남면의 경계를 따라 704-765.3봉어깨(730, 5) 지나 서면과 원남면의 경계를 따라 630-661-696.9(5/10) 지나 임도따라 고초동마을(550, 3/13)에 이른다. 대령산(652.2, 2.8/15.8)-457.1(2.7/18.5)-435-남수산(437.7,3.1/21.6)-구산교옆(70, 2.8/24.4)-269-171-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두전동 두전교 다리 앞 왕피천변(30, 3/27.4)에서 끝이 나는 약27.4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