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갈비봉, 치술령, 묵장산
1. 산행지: 갈비봉, 치술령(鵄述嶺, 765.4m), 묵장산
2. 위치: 경남 울산시 울주군
6. 소요시간: 5시간[약 15.3km]
7. 들머리/ 날머리: 녹동버스종점[원점회귀]
8. 산행코스: 녹동버스종점~두산지~갈비봉~치술령~묵장산~석계자연농원~석계못~치술령가든입구~두산지~녹동버스종점
9. 특징:
치술령의 유래 1
울산광역시 울주면 두동면과 경북 경주시 외동읍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그 동안 지역 산꾼들만 간간이 찾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이는 산행코스와 대중교통편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울산과 경주 지역에는 이름난 산이 많다는 점도 한 몫을 했으리라 싶다. 동해안을 따라 남진하던 낙동정맥은 경주에서 울주로 접어들며 백운산(892m)을 만난다. 이 산 아래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뻗어나가는 호미기맥(천마산~토함산~함월산~조항산을 거쳐 동해의 호미곶에서 끝남)의 분기점이 있다. 치술령은 이 호미기맥이 지나면서 솟구친 한 봉우리로 치(鵄)는 솔개를 뜻하며, 술(述)은 수리로 소(蘇), 근(近), 술(戌), 취(鷲)와 마찬가지로 높은 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치술령은 치를 새로 보아 새수리재가 되며, 이는 솔개가 사는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치술령이 산(山)이나 봉(峯)이 아닌 영(嶺)인 까닭은 울산 두동쪽 사람들이 경주로 갈 때 이 산을 넘었기 때문이란다. 치술령 산자락에는 신라 충신 박재상과 그의 가족들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많다. 박재상은 신라 19대 눌지왕 때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왕제(王弟) 미해[美海, 『삼국사기』에는 미사흔(未斯欣)으로 기록]를 구하고 탈출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정작 본인은 붙잡혀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발가죽을 벗기고 화형 당한다.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로는 왜국에서 사망한 박재상을 기다리다가 죽은 부인과 두 딸은 치술령의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동해를 굽어보고, 그 넋은 새가 되어 치술령 남쪽 국수봉 중턱의 바위굴에 숨었다고 한다.
치술령의 유래 2
예로부터 산이란 영험하고 신비스러움이 숨어 있고 신(神)적인 마음이 깃든 곳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산을 찾아 떠나고 산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있기에 산에 의지하고 소원을 바라며 산신령에게 제사와 굿을 하는데 특히 한해의 마지막 날이나 첫 해 첫 날에 정상에서 등산 제(登山祭)를 지내고 자식 잘되라고 가족 건강 하라고 과거보러 떠난 낭군 장원급제하라고 우리는 산에서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산에서 제사와 기도(祈禱)를 하게 된 유래는 박제상의 치술령의 전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경주 남서쪽 울산과 경계지역인 해발830M에 위치한 치술령에 구름이 덮여야 비가 내리고 이때 비를 내리면 치술령이 운다고 한다 즉 치술령이 울기에 그 눈물이 비(雨)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치술령에 구름이 없으면 가뭄이 든다하여 신 굿을 하는데. 그 사연은 신라17대 나밀왕(那密王)때 이웃나라 백제가 신라의 변방을 수없이 침범하여 애물단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신라에게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어 백제침입을 막자고 제의를 하여 동맹에 대한 정표로 나밀 왕 셋째 아들인 미사흠을 일본으로 보냈다. 미사흠이 일본으로 떠난 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에서는 미사흠을 돌려보내지 않는다 미사흠의 형인 눌지가 임금이 되어 그동안 일본에 데려간 동생을 찾고자 여러 차례 일본 측에 송환을 요구할 때마다 거절당해 어떠한 묘책이 없을까 대신들과 의논을 하는데 이 일을 맡아보겠노라고 선뜻 나선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삼라군 태수 박제상이다. 박제상은 왕명을 받들고 혹시나 집에 들러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가족들의 만류에 시간이 지체 될 것 같아 세 명의 딸과 부인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체 즉시 떠난다 박제상이 떠난 뒤 소식을 접한 부인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소식에 남편이 떠났다는 율포(지금의 경주군 하서리(下西里)로 말을 달려 찾아가니 남편의 뱃머리는 벌써 저만큼 떠나가고 있다 부인은 부두가 에서 떠나가는 뱃머리를 바라보며 아득해 질 때까지 목이 쇠도록 남편을 부르며 백사장에 엎드려 통곡하였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한편 박제상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 왕한테 신라왕이 죄 없는 우리 부모를 잡아 죽였기에 일본으로 도망 왔노라 거짓말을 하여 의심을 받지 않게 한 다음 미사흠과 자연스럽게 접촉하여 여차여차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난 뒤 기회를 엿보다 어느 날 마침 강구려(康求麗)라는 사람이 고국에 돌아가는 기회가 있어 이때 미사흠을 빼돌려 보냈으나 결국 들통이나 박제상은 갖은 형벌로 고행을 당하다 목도(木島)라는 외딴섬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다. 남편이 머나먼 일본 땅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박제상의 아내는 원한과 슬픔에 복받쳐 매일같이 일본 쪽 동해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치술령이라는 곳에 올라가 남편의 원혼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매일 통곡을 하는데. 신라에서는 미사흠이 돌아오게 되니 나라에 경사라 하여 잔치를 베풀고 박제상의 아내를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추서 하고 그의 큰딸을 미사흠의 아내로 맞아들여 공부인(公夫人)으로 추서 하여 주었으나 부인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박제상의 부인은 치술령에서 울다가 지친 나머지 혼백은 승천하고 육체는 망부석이 되어 굳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왕실에서 박제상의 처를 치술신모(치술라 신위(神位))에 올리고 신모사당(神母祠堂)을 지어 제사를 지내주고 또한 치술령에서도 제사와 굿을 하도록 하고 굿을 할 때는 남편의 영혼을 유혹하거나 또한 세 명의 딸들의 영혼을 치술령에 불러들이는 굿을 하는데 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진한 화장을 하고 울긋불긋한 색동저고리에 탐스런 젖가슴을 보일 듯 말듯 가슴을 내놓고 살짝살짝 치마를 걷어 올려 미끈하고 하얀 허벅지를 내보이기도 하는 등 이상스럽고 야한 행동의 굿을 하는데 그 이유는 무당이 신모(神母=박제상의부인)를 대신하여 남편인 남신(男神=박제상)을 유혹하여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육체로 유혹하면 남신(男神=박제상)이 치술령에 나타나 오락가락하면 부인이 남편 생각을 하여 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비(雨)라 하며 또는 시집 안 간 처녀3명을 치술령에 올려 보내 곡을 하고 때로는 꼭두각시3개를 올려 굿을 하면 신모(神母박제)가 굿을 보면서 자기 딸들이 생각나 울게 된다는 것인데 그 눈물이 바로 비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내려온 뒤부터 모든 이들은 산에 대하여 경건하게 예를 올리고 제를 지내며 산의 영험을 믿고 의지하며 가뭄의 제를 올리게 된 것이 치술령의 유래다.
묵장산(먹장산)
치술령을 외동읍 괘릉리 쪽에서는 먹정산이라고도 불렀다. 멀리 보이는 치술령이 언제나 거무스레하게 보여 검은색, 즉 먹과 같이 검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정산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즉 지금의 먹장산을 말하는데, 이 산은 치술령 북편에 있는 높이 722m의 산을 말한다. 그러나 그 동안 먹장산은 치술령 그늘에 가리어 오히려 치술령으로 인식해 왔다. 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산천, 조에 따르면 먹장산은 부의 남쪽 30리에 있고, 치술령은 부남 36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의 이름이 먹장은 석탄과 관계를 가진 이름이다. 장은 흔히 구둘장, 누룩장이라 할 때의 "장"에 대한 음차로써 석탄이 나기 때문에 먹장이라 한 것이다. 먹장이라는 동리 이름도 있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의 월평과 봉계의 일부를 먹장이라 한다. 이를 아화하여 먹정이라 하기도 한다. 이 지역이 남면 일대에는 상먹장과 하먹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먹정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하여 마을 이름을 먹장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도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에는 먹장골이 있으며, 일제 때 한동안 이곳에서 갈탄 채굴을 하였으나, 경제성이 희박하여 중단하였다.
우리산줄기이야기
형남기맥 = 동끝기맥 = 호미기맥 = 호미지맥
낙동정맥 상 영남알프스의 첫봉인 고헌산으로 들어가기전 백운산이 우뚝서있다 바로 이 백운산으로 오르기 전 북쪽으로 두 번째 둔덕봉에서 동쪽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는 산줄기를 따라 경남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내를 남북으로 양분하며 내와고개 천마산 뒤뜰고개 404.2봉 복안고개 경부고속도로(35번국도)에서 올라선 225.2봉에서 두동면내를 남북으로 양분하며 중리고개 못안고개 643봉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충신 박재상과 망부석에 얽힌 이야기로 유명한 치술령에서 두동면과 경주시 외동읍의 경계를 따라 급하게 북진을 하여 721봉 751봉 지난 무명봉인 도면상 690봉에서 정동쪽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 고천고개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420.5봉에서 북진을 하며 사일고개 329.5봉 제내리 토성소류지에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그런 논밭 지대를 방황하며 순지마을 193.6봉을 거치지 않고 그 북쪽 첫 번째 무명봉으로 올라 7번국도인 원고개에서 동진을 하며 괘능리 사리밭등 감산사 가나안목장에서 북진을 하며 도로따라 찬란한 문화유산인 석굴암으로 올라 토함산을 지나 동진을 하다 590봉에서 북진을 하여 4번국도 추령으로 가라앉았다가 494.2봉 591.4봉 성황재 14번국도 만리성재 뒤뜸재 삼봉산 솔밭재 세계원재 퉁점 228.9봉 조항산 흰날재 금오산 윷판재 공개산 180.6봉 153.4봉 고금산 호미곶(약 98.8km)에서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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