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말주[申末舟]
조선 전기 순창에 귀래정을 짓고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 고령 신씨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에 예조 판서·공조 판서를 역임한 신덕린(申德隣)이다. 신덕린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 신포시(申包翅)와 함께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였다가, 다시 전라도 광주의 서석산으로 옮겨 갔다. 신말주의 할아버지 신포시는 신장(申檣)·신평(申枰)·신제(申梯)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신말주의 아버지는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오랫동안 대제학으로 있다가 나주로 낙향한 신장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주에 거주하였을 때 결혼한 정유(鄭有)의 딸이다. 신말주의 형제는 신맹주(申孟舟)·신중주(申仲舟)·신숙주(申叔舟)·신송주(申松舟)·신말주(申末舟) 등 5형제이다. 이들 가운데 신숙주·신송주·신말주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특히 신숙주는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매우 컸다. 신말주의 처는 순창 설씨 설백민(薛伯民)의 딸이고, 손자는 이조 판서를 지낸 신공제(申公濟)이다.
[활동 사항]
신말주(申末舟)[1429~1503]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정언·예조정랑 대사간·형조 참의 등을 거쳤다. 단종이 폐위된 뒤 처의 고향인 순창에 내려와 거주하였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귀래정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였다. 1476년(성종 7) 다시 벼슬에 나가 전주 부윤으로 재직하면서도 순창의 귀래정을 오갔다고 한다. 1483년 창원 도호부사, 1487년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와 대사간, 1488년 첨지중추부사·전라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1503년(연산군 9) 12월 순창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작품으로 『십로 계첩』이 있다. 신말주는 말년에 70세가 넘은 노인인 이윤철(李允哲)·안정(安正)·김박(金博)·한승유(韓承愈)·설산옥(薛山玉)·설존의(薛存義)·오유경(吳惟敬)·조윤옥(趙潤屋)·장조평(張肇平)의 9인과 더불어 십로계(十老契)라는 계회를 가졌다. 『십로 계첩』은 1499년 신말주가 이 계회를 그린 것으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광암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던 화산 서원에 제향 되었다. 1994년 신말주의 후손들이 『귀래정 실기(歸來亭實記)』를 간행하였다. 『귀래정 실기』는 신말주의 생애와 사적을 중심으로 유시와 유문, 그리고 논설과 해제, 직계의 명현 열사록 등을 정리한 책이다.[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산경표
순창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편찬한 조선의 산맥 체계를 정리한 지리지.
내용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庵)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의 남산대(南山臺)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신래(申淶)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장령·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769년에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하였다. 영조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감수하였고, 1770년에는 『문헌비고(文獻備考)』 중 『여지고(輿地考)』의 집필을 담당하였다.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특히 『운해 훈민정음』, 『언서 음해(諺書音解)』, 『강계지(疆界志)』, 『산수고(山水考)』, 『도로고(道路考)』 등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다.
『산경표(山經表)』는 1913년에 최남선(崔南善) 편으로 조선 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간행, 널리 유포되었다.
[형태/서지]
필사본 1책 48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주 단변(四周單邊)에 행자수(行字數)는 일정하지 않으며, 어미(魚尾)는 없다. 규격은 반곽(半郭) 23.2×15.0㎝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과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맥[山徑]의 갈래, 분포, 위치 등을 기록한 지리지이다. 산의 내력의 높낮이, 산이 치닫다가 생긴 고개, 산이 읍치(邑治)를 어떻게 둘러 있는지 등을 상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표로 기록하였다. 『산경표』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 개의 대간(大幹)과 한 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 등 총 15개의 산맥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하였다. 15개의 산맥은 백두 대간(白頭大幹), 장백 정간(長白正幹), 낙남 정맥(洛南正脈), 청북 정맥(淸北正脈), 청남 정맥(淸南正脈), 해서 정맥(海西正脈), 임진북 예성남 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북 정맥(漢北正脈), 낙동 정맥, 한남 금북 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 정맥, 금북 정맥, 금남 호남 정맥(錦南湖南正脈), 호남 정맥이다.
[의의와 평가]
『산경표』의 산맥 체계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대간과 정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천의 수계(水界)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나누었다. 둘째, 대간·정간·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位階性)을 부여하였다. 셋째, 『산경표』에 나타난 간과 맥들은 혈맥이 서로 통하듯이 연결되어
단절이 없다. 넷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산경표』는 조선의 산맥 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 이전의 조선의 전통적인 산지 분류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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