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산청 남명등산로

꼴통 도요새 2019. 8. 4. 09:12

산청 남명등산로

 

1. 산행지: 깃대봉(690m), 이방산(二方山, 715.7m), 감투봉(768m), 마근담봉(926m), 용무림산(780m), 벌목봉(감수봉, 743m), 수양산(502.3m), 시무산(402.7m)

2. 위치: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조식유적지)

3. 일시: 2019년 8월 2일(금)

4. 날씨: 맑고 덥고 바람한점 없는 옅은 박무

5. 누구랑: 나 홀로

6. 소요시간: 9시간[너무나 더워 쉬엄쉬엄/ 이동거리 약 19km] 

7. 들머리/ 날머리: 조식선생유적지 주차장[원점회귀]

8. 산행코스: 조식 유적지⟶조식선생묘⟶천왕봉전망대⟶깃대봉→이방산⟶임도→감투봉⟶마근담봉⟶용무림산→용무림재→벌목봉→수양산시무산⟶사리버스정류장→조식 유적지

덕산교[원점회귀]

9. 특징:

산청군

산청군은 옛날 삼한시대에 변한 땅이었고 가야국으로 고대시대를 겪어면서 신라에 통합됐다. 신라시대는 지품천현(知品川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산음(山陰)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현감을 두었고 그 뒤 큰 행적적인 변화는 없었으나 1767년(영조43년)에 이 고을에서 일곱 살 된 아이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여 음(陰)자를 청(淸)자로 고쳐 '산청현(山淸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산청의 옛 지명 산음은 지리산 북쪽고을 이라는 뜻으로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산청은 지리산과 밀접한 관계다. 지리산의 그늘에  있다.보니 산청의 산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타 청정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  산청군은 조선시대의 산청현과 단성현 지역이 합하여 이루어진 군이다. 옛 산청현은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으로서 757년(경덕왕 16)에 산음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합주(陜州, 합천)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초인 1413년에 산음현이 되었다. 1767년(영조 43)에 고을 이름을 산청으로 고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별호는 산양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경상남도 산청군이 되었다.  군의 서쪽에 솟은 천왕봉(1,915m)을 기점으로 하는 지리산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북쪽에는 백운산의 지봉인 황매산(1,108m)·송의산(539m)이 있다. 군의 중앙에는 웅석봉(1,099m)과 둔철산(812m)이 솟아 있다. 이들 산 사이를 남강의 지류가 흐르면서 계곡 양안에 좁은 평야를 이룬다. 경호강이 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류하며,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덕천강과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양천강·사정천이 합류하여 남강으로 흘러든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단성면과 신등면의 선돌과 금서면 화계리지석묘, 단성면에 강루리지석묘 및 사월리 배양부락의 지석묘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는 통일신라시대의 단속사지동3층석탑(보물 제72호), 단속사지서3층석탑(보물 제73호),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신등면의 율곡사대웅전(보물 제374호), 고려초의 작품인 시천면의 법계사3층석탑(보물 제473호), 고려시대에 수해방지를 위해 세웠다는 신등면 단계리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는 고려시대의 단성향교와 덕천서원·산청향교 등이 있다. 산성으로 어외산성·동산성·고산성 등이 있으며, 태조대왕 교서, 단성현 호적대장 같은 전적류도 있다. 질 좋은 고령토가 많아 단성면 방목리의 수산도요지나 오부면의 내곡리도요지 같은 유적이 많다. 또한 문익점의 목화시배지(사적 제108호)가 단성면에 있으며, 이를 기념한 문익점 사적비가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찾고 있다. 시천면 중산리를 경유하는 지리산 등반 코스는 하동군 하동읍·화계면과 함양군 마천면을 각각 경유하는 코스와 함께 지리산 정상 등반의 3대 코스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중산리계곡에는 법천폭포·망바위·문창대·법계사 등 많은 명소가 있다. 적벽산, 대운산 계곡, 경호강 등은 인근 주민들의 피서지로 유명하다.[출처/ 인터넷]

이방산

경상남도 산청군의 삼정면 덕교리와 시천면 사리에 걸쳐있는 산이다(고도 : 716m). 웅석봉에서 남쪽으로 지맥(支脈)이 뻗어 마근담봉과 감투봉을 이루고, 감투봉의 맥이 이방산을 이루었다. 이방산의 서사면 기슭으로는 덕천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단하며 흐르다가 시천면 소재지에서 시천천을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이방산을 끼고 덕천강이 내원천과 만나는 서쪽 기슭 일대는 삼장면 소재지가 형성되었고, 시천천과 만나는 남쪽 기슭의 평탄면 일대는 넓은 농경지가 발달하여 시천면 소재지가 입지하였다. 조선시대 산청의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이방산에 관한 기록이 없다. 이방산 북서사면 기슭에 입지하고 있는 덕교마을 앞에는 파구정이란 곳이 있다. 원래 이름은 패구정으로 두 가지 유래의 전설이 있다. 하나는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 군사에게 좇기면서 이곳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에 손씨 3형제가 이끄는 의병들이 잠복하였다가 왜적을 맞아서 싸워 이긴 곳으로, 왜구를 파멸시켰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남명 조식선생 유적[曺植遺蹟]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원리와 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조식의 유적지. 유적은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리에는 산천재와 별묘, 신도비, 묘비 따위가 있고, 원리에는 덕천 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산청 조식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1561)에 세웠고, 순조 18(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1576)에 세웠고, 앞면 5,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1582)에 처음 세웠다.

우리산줄기이야기

백두웅석지맥에서 갈라진 10km 미만의 여맥, 백두웅석이방여맥, 백두웅석수양여맥, 백두웅석화장여맥

산행후기

어제 건너편 오대주산, 두방산에 이어 오늘은 남명조식선생 유적지도 탐방하고, 또 그 주변 산줄기를 원점회귀로 그리기로 하며, 이방산 진입로를 들어 섰다.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탓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등산로가 선명하였으며, 중간중간 이정표가 있어 편히 탐방할 수가 있었다. 산행하면서 남명조식선생유적지도 탐방하고 주변 산군들을 탐방하다보니, 이 또한 멋진 산행이 아니겠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산행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현지 탐방 결과 내가 가진 지도에는 없는 봉우리 마근담봉, 용무림산, 벌목봉...등이 정상에 표시되어 있었는데, 진짜 이름이 있는 봉우리 이름인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어 산행후 에도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으며, 너무나 더워 땀으로 카메라가 모두 젖어 사진들이 엉망이 된 부분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