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에는 기존에 알려진 산성이 이전에 발간된 옥천군지에 실려있는 관산성 등 15개성과 기타자료에 실려있는 국원리산성 등 2개성을 합하여 17곳의 山城과 3곳의 堡가 알려져 있었으나 향토사를 연구하는 지역의 회원들이 2000년 9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3단계에 걸쳐 현지 조사를 하던 중 2002년 8월말 현재 기존에 알려진 山城외에 추가로 산성지 20곳과 1곳의 堡 및 망루지 5곳을 발견함에 따라 옥천군 관내에는 총 37개의 山城과 4곳의 堡 및 5개의 望樓가 분포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새롭게 발견된 산성중 막지리산성지와 인포리산성지 및 지탄리산성지 등은 옥천군 관내에서 라제동맹(羅濟同盟) 이전의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며 또한 독수리봉산성지와 식장산망루지 등은 대전시관내의 쇠정골산성지와 함께 탄현으로 추정되는 자무실고개(장고개)를 지키는 주요한 산성지로 밝혀졌으며 자무실고개는 신라의 백제병합 직후에 상주에서 공주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인 ‘웅진도(熊進道)’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총 46곳의 산성과 보 및 망루지 중 절반 이상이 금강의 서쪽지역이며 옥천군의 서북쪽 방향에 해당되는 옥천읍과 군서면, 군북면 및 안내면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으로서 백제측에서는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북면 국원리의 늘치산성지에서 지오리산성지를 거쳐 서산성과 관산성으로 통하는 마성산 줄기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환산과 백골산줄기 및 식장산줄기에 2차 방어선을 구축하는 등 강력한 방어체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옥천군의 북쪽방향인 안내면과 안남면에서 기존에 알져진 화학산성과 조천성외에 추가로 막지리산성지, 인포리산성지, 탑산이마을산성지, 답양리산성지, 둔주봉산성지 및 덕대산산성지가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옥천에서 신라의 지역 거점성인 보은의 삼년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되는 곳에 신라측에서 집중적인 방어선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옥천군의 동남쪽방향에 해당되는 청산면, 청성면과 동이면 및 이원면에서는 산성이 드물게 분포되어있다. 특히 옥천군과 충청남도 금산군과의 경계선인 옥천읍의 사목재에서부터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에 이르는 대성산 산줄기에는 산성지나 망루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여 궁금증을 낳게 하는데 그 원인에 대하여도 추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산성의 분포현황으로 볼 때 옥천군지역에서의 라제동맹 이전의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은 이원면지역을 제외하면 금강을 경계선으로 하였음이 분명하며 이원면 지역의 라제간 국경선의 확인은 불분명하다.(이원면의 서쪽인 대성산줄기에도 산성지가 전혀 없으나 금강의 서쪽인 영동군 심천면 국사봉에서 신라측에 유리한 지형인 석축산성이 금번 조사팀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또한 월이봉 정상에서도 신라측에 유리한 토성지로 추정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 발견됨에 따라 마니산성, 현리산성 및 지탄리산성지 등과 함께 이 지역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있어야 라제간의 국경선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삼국사기 卷四 신라본기 第四 진흥왕 십오년 秋 七月條에 의하면 신라와 백제간에 라제동맹이 깨진 이후인 554년 관산성전투가 벌어지는데 백제의 성왕이 가야와 더불어 관산성을 치다가 패배하여 왕과 좌평4인 및 사졸 이만구천육백인이 몰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관산성은 지금의 옥천읍의 양수리와 군서면 월전리 사이의 삼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관산성은 물론 인근에 있는 서산성, 지오리산성지, 늘치산성지 등은 백제계 산성으로 분류하고 있는 바 금강 서쪽지역인 관산성을 포함한 이 지역은 본래 백제의 지배지역 이었는데 언제 신라가 차지하여 백제의 성왕이 침공하게 되었는지 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동기가 전쟁의 산물인지 아니면 양국간의 협상의 대가는 아닌지 등이 의문점으로 남는다. 금번 조사기간중의 수확으로는 여러 곳의 미확인 산성의 발견 외에도 관산성의 재발견으로 이전의 각종자료에는 ‘석축산성이나 모두 허물어져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관산성의 북쪽성벽이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3중으로 축성되어 있음이 발견되었고 특히 바깥쪽의 3번째 성벽은 토석혼축으로 축성되어 있음은 주목할 만 하며 모두 허물어져 원형의 모습을 알 수 없는 관산성은 지형적 특성과 흘러내린 성벽의 돌과 그 수량을 볼 때 대전지역 계족산줄기에 소재한 ‘능성’과 매우 흡사한 바 후일 관산성을 복원한다면 ‘능성’을 참고함이 마땅할 것이다. 망외의 수확으로는 옥천군 지역은 아니나 옥천군 경계선에서 불과 100M 정도 벗어난 곳에서 발견된 대전시의 쇠정골산성지와 보은군 회남면 어부동의 국사봉산성지 및 약 100년 전까지 만해도 옥천군에 속하였던 영동군 양산지역에서 ‘조천성(助川城)’으로 추정되는 지내리산성지를 발견함은 조사팀의 일원으로서 뿌듯함을 느끼며 쇠정골산성지와 회남의 국사봉산성지 및 지내리산성지는 이전의 자료에는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은 미확인 산성지이다. 옥천군에 소재한 산성은 이웃 보은군의 호점산성이나 삼년산성과 같이 크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지만 백제계 산성과 신라계 산성이 혼재하며 양국간에 치열한 영토전쟁으로 서로 성을 뺏고 빼앗기는 격전장이었으며 특히 백제의 성왕이 이곳(관산성)을 탈환하려다 전사한 역사의 현장이다.[출처/ 옥천신문]
도농리(道農里)
도농리는 원래 농막리(農幕里)라 하다가 도성(道城)과 합하여 도농리가 되었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농막리라 하여 29호가 살았으나 1891년 신묘장적에는 52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정비 때 도성(道城)과 농막(農幕)을 합하여 도농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도농1리에 54호 122명, 도농2리에 50호 109명이 살고 있다.
농막은 약300여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어 용계(龍溪)라 부르다가 농사를 많이 짓는 마을이라 하여 농막(農幕)이라 부르게 되었다. 농막에는 하동정씨(河東鄭氏), 배천조씨(白川趙氏)가 오래 전부터 살아 왔으며 마을 앞에는 사인정공시혜공덕비(士人鄭公施惠功德碑)와 하동정공병복효행비(河東鄭公秉福孝行碑)가 있다. 주변에는 청농, 시고개, 덕다리골, 안딕이재, 밤골재, 원남으로 가는 큰길 이었던 싸리재, 봉화를 올렸던 봉화둑이 있다. 도성은 마을 뒤에 삼국시대의 성터가 있어 성재라 부르다가 되재라고 불러왔는데 한자화 하면서 “되재”를 도성(道城)으로 쓰게 되었다. 되재 주변에는 성재, 밤골재, 삿갓봉, 매봉재,비루방이 있고 되재 앞 하마산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묘소와 표충사, 중봉선생 신도비가 있고 싸리재 입구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농막과 소야 사이에 있는 황촌(黃村)은 장수황씨가 살기에 황촌이라 불리우고 주변에 참나무골, 불탄 터, 응국이, 마름터, 말랑고개, 구렁터, 행낭, 행계, 낙끝자리 등이 있고 마을 어귀에 1998년에 세운 청송심씨 효열비(靑松沈氏 孝烈碑)가 있고, 전주이씨 효열비가 도성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소야는 마을뒷산 고개가 소의 형상과 같아 재의 이름도 질마재라 하고 소가 누워있는 들이라 하여 우야(牛野)라고 하다가 140여 년 전부터 소야(蘇野)라 부르게 되었다. 소야 주변에는 질마재, 세발, 안산, 말묵재, 번돈, 큰골, 꾀꼬쟁이. 끙개날, 송장나무골, 왕재, 만딩이멧날, 골냄이재, 배나무송골, 백정멧날, 깨진박골, 홍두깨날,, 호랭이굴, 광대밭골, 주골, 응고개, 중뫼산, 병풍쟁이들, 숯꽂이들, 덕공제들, 참나무쟁이들이 있으며 소야저수지는 1967년 축조되었다.[출처/ 옥천문화원]
우리산줄기이야기
金積支脈[금적지맥]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구룡산 직전의 분기점(450m봉 부근으로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과 수한면의 경계에 있음)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5.5km의 산줄기로, 450m봉 부근에서 시작하여 함금리에서 그 맥을 금강에 넘기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구룡산, 노성산, 국사봉, 거멍산, 덕대산, 금적산, 국사봉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아울러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불로천과 항건천, 거현천, 오덕천, 보청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고 있고, 이 산줄기의 서남쪽에는 대청호가 있다.
한남금북금적여수울단맥
한남금북금적지맥이 금적산을 지나 듬치재(정방재)에서 올라간 큰달음산(425)어깨(410)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옥천군 안내면과 안남면의 경계를 따라 하마산(350) 갈림봉(370, 0.3)-여수울산(△361.7, 0.8/1.1)-학촌도로(170, 1.7/2.8)- 311봉(2.2/5)-임도고개(250, 0.5/5.5)-378봉(0.7/6.2)-장계교 갈림봉(330, 0.5/6.7)-인포리산성(△365.9, 0.4/7.1)-110m 십자안부(0.6/7.7)-281봉(1/8.7)-△225.3봉(2.4/11.1)을 지나 옥천군 안남면 오대리 오류마을 금강변(90, 1.2/12.3)에서 끝나는 약12.3km의산줄기를 말한다.[출처/ 다음카페 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