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및 전설

충무공 이순신 장군묘

꼴통 도요새 2024. 1. 16.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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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묘(忠武公 李舜臣 將軍墓)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의 명장이자 민족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안장된 묘소.

사적 제112호 아산 이충무공 묘(牙山 李忠武公墓)로 지정되어 있다.

충무공은 무과에 합격하여 여러 직책을 거쳤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전라좌수사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충무공은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노량·당포·한산도 등 여러 곳에서 적을 무찌르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다가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을 맞고 숨졌으나, 사실을 숨기고 조카인 완이 대신 지휘하여 왜적은 큰 피해를 입고 도망을 갔다. 아산군 금성산에 무덤을 만들었다가 16년 후인 광해 6(161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무덤 주위에는 제사지낼 때 음식을 차려놓는 상석과 혼이 놀다간다는 혼유석·향로석이 있으며, 동자상 1·망주석 1·석상 1·문인석 1·광명등·묘비석이 있다. 무덤 앞에는 정조 18(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와 비각이 있다.

선조 31(1598)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전투 도중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하자, 시신을 처음에는 노량해전의 전장이던 남해의 관음포에 임시로 모셨다가 이순신 재직 시 마지막 통제영이 있던 고금도로 옮겼다. 그해 말(대략 음력으로 12월 즈음)에 시신을 육로로 이용해 고향인 아산으로 운구하여 이듬해 선조 32(1599) 2월 인근 금성산(음봉면 산정리)에 모셨다가, 이순신이 선무공신 칭호를 받고 좌의정으로 추증되자 광해군 6(1614)에 현재의 삼거리 어라산 자락으로 이장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후 정조 18(1794) 영의정으로 추증되면서 정조가 어제신도비를 하사하였는데, 임금이 신하에게 신도비를 직접 내린 경우는 이순신이 유일하다. 해방 이후인 1973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에 맞춰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조성하였다.

(이충무공묘아산 이충무공묘)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묘소는 둥근 봉분으로 이순신 장군과 부인 상주 방씨 방수진의 합장묘이다.

묘비와 상석, 망주석 등이 있는데, 숙종 때 정승을 지낸 이이명이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상에게 부탁을 받고 묘비문을 지었다. 봉분 우측 앞 비각 안에 정조 어제신도비, 묘소 입구 쪽에는 순국 400주년인 1998년 충무공파 후손들이 새로 세운 석비가 있다. 1998년에 후손들이 세운 묘비의 글씨는 강영훈 국무총리가 썼다.

 

후기

2024114

아산의 금산, 국사봉, 어라산, 둔덕산을 탐방하면서

어라산에 위치한 이순신장군묘를 참배하며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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