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탐방코스: 양양종합여객터미널→송암리 표지석→청곡어린이집→뱀째산 정상(경주김씨묘)→굴다리→이남원(풍차모형)→무명봉 왕복→소류지→김해김씨묘→모노골(산림욕장)→임천교차로(하이팰리스APT)→내곡리경로당 왕복(등산로 입구 폐쇄)→금수봉→양양향교→모노골샘터 갈림길 이정목→동두산 왕복→관동대학교(폐쇄)→거마교→자하도 통과→석성산 왕복→북평교→용천리→한남초교→양양군공설묘원→구탄봉→백두대간생태교육장→송이밸리자연휴양림→양양소방서→남단교차로→군청사거리→양양 신한은행앞에서 버스타고 거진으로 이동
9. 특징:
양양(襄陽)
이 군에는 명승지가 많고 또 거기에 얽힌 전설도 많이 전한다. 현북면 하광정리 해변에 있는 하조대에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왕조의 건립에 공을 세운 하륜(河崙)과 조준(趙浚)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명명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 때 하씨 문중의 서라벌에 가서 화랑이 된 하랑(河朗)과 조씨 문중의 낭자 조당(趙棠) 사이의 이룰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두 사람은 결국 하조대 절벽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는데, 그들의 넋이 해당화에 깃들여서인지 하조대 근처의 해당화는 동해안 다른 곳의 해당화보다 더욱 붉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는 비석에 관한 「구교리 선정비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 양양에 와서 부사로 있던 이상일은 어려운 백성을 잘 보살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고을 백성이 없었다. 임기가 끝나면서 돌아간 뒤 고을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그 뒤 백성들이 억울한 누명이나 관원들에게 억압을 당하면 이 선정비에 와서 눈물을 흘렸는데, 비석도 그 억울함을 동정해 함께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양양 제일의 역사(力士) 탁장사(卓壯士)에 대한 전설도 있다. 양양부사가 임금의 관(棺)을 만들 재목을 서면과 현북면에 하나씩 해 올리도록 명하였다. 이때 면 경계에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놓고 두 고을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결국, 두 고을에서 각기 힘센 사람을 골라 혼자 힘으로 지고 가는 고을에서 가지기로 하였다. 이 때 서면에 탁이라는 장사가 있어서 현북면에서는 엄두도 못 낸 재목을 거뜬히 지고 서면으로 걸어갔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일설에는 강릉시의 권장사와 힘을 겨루었다고도 한다.
그 밖에 원효대사가 강원도 땅에 와서 포교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터를 골라 절을 지을 때 먹을 물이 없어 샘물을 점지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영혈사전설(靈穴寺傳說)」, 산에 올라가 발을 구르면 마치 북 치듯이 쿵쿵 소리가 난다는 손양면의 「쿵쿵산전설」, 한 달에 두 번씩 끓어오르는 물이 있어 그것을 먹으면 힘이 세지고 장군이 된다는 「장군수전설(將軍水傳說)」 등이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어업노동요와 비기능요인 타령류가 많다. 어업노동요로는 그물을 풀고 당길 때 부르는 노래가 중심이 되는데, 「그물 푸는 노래」는 “(앞) 에라소 가레이야 이번 가래는 누구인가/(뒤) 에라소 가레이야/(앞) 명사십리 해당화야 에라소 가레이야 ……”라고 하여 고기를 퍼담을 때 부르는 「가래소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물을 당길 때는 “에이야 어거디야/에이야 에이야/어거갈싸 에이야/충신되어 에이야……/댕겼네 에이야”라고 한 장단씩 주고받으면서 박자를 맞추어 부른다. 만선으로 귀항할 때도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물 당기는 노래」와 사설이나 뒷소리가 비슷하다.「고기 푸는 노래」로는 「가래소리」가 불리는데 “에라소 가래소”라는 뒷소리 이외에도 “어야차 어야차”나 “자─자─자─자─”와 같이 작업 중에 저절로 나오는 소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농업노동요로는 「모찌기노래」 · 「모내기노래」가 일부 지역에서 불린다. 「모찌기노래」는 “얼른 하더니 또 한줌이다.”라고 돌아가면서 외치기도 하고, “가더니 또 한줌이 나간다 쪄라 부지런히 쪄라.”라고 가락을 넣어 부르기도 한다.「모내기노래」로는 “심어주게 심어주게/원앙에 줄모를 심어주게……”등의 사설에다가 「아리랑」의 후렴을 사용하기도 하고, “오독떼기 추야월에/달도밝고 명랑하다……”라고 인근지방에서 「논매기노래」로 불리는 「오독떼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여성들의 노동요로는 구체적인 작업과 관련된 노래보다는 “여보시오 부인네님/세간살이 들어보소/나는데는 한군데요/쓰는데는 무궁하니/식구보고 양식보아/식량절약 위대하소……”와 같이 부녀자들의 태도와 사치경계 · 효행 등을 주제로 하여 훈계하는 음영민요가 많이 불린다. 그리고 “둥기 둥기 둥기요/둥기 둥기 둥기요/먹으나 굶으나 둥기요/입으나 벗으나 둥기요/둥기 둥기 둥기요/둥기하다 팔아프면……”과 같이 아이를 얼르는 「둥기요」, 사설은 비슷하나 “풀풀 풀미야”를 사용하는 「풀미요」가 많이 불린다. 비기능요로는 「정선아라리」와 「강원도아리랑」의 보편적인 사설들을 긴아라리나 자진아라리조로 모두 부르며, “우리댁 낭군은/날마다 엽전칠푼 걸머지고/함주원산 보령청진/길주명천 회령홍성 돈벌러 갔는데……”와 같이 민족항일기에 함경도로 돈벌러 떠나는 시대상을 담은 「엮음아리랑」도 불린다. “슬슬 동풍이/궂은비 줄줄이 오는데……”와 같이 뒤에 「아리랑」이나 「사랑가」를 이어 붙여 길게 부르는 「동풍가」도 있다. 그 밖에도 「각설이타령」 · 「창부타령」 · 「산타령」 · 「미나리타령」 등 타령류의 노래와 「꼬리따기노래」 등의 동요가 불린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구탄봉(대구산)
명칭은 고려시대의 지술가인 도선이 오대장맥을 타고 내려오다 설악산 주변의 산세를 바라보니 반드시 명당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 명당을 찾고자 아홉번 산에 올라 아홉번 탄식을 했다는 뜻에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양양읍 월리에 있는 구탄봉은 비록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은 나즈막한 산이지만 봉우리 정상에서는 양양읍내 시가지 전경은 물론 멀리 설악산 대청봉과 동해바다의 푸르름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행후기
이번 주 아들래미 회사가 조금 한가하다. 아들아! 특별히 바쁜 것 없을 때 아빠는 산이나 갈란다.라며 경부고속터미널에서 양양행 버스를타고 양양읍 주변산군들을 탐방하러 간다.
양양종합여객터미널에 내려서 내가 가지고 다니는 구)오룩스 지도와 네이버 지도에 명시되어 있는 산과 봉우리들을 탐방하기로 하며 출발하였다.
1] 범째산: 구)오룩스지도에 표시된 약 40m도 안 되는 낮은 산, 정상은 가시잡목
2] 범재산: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약 50m도 안 되는 낮은 산, GPS이상으로 정확한 봉우리 못 찾음
3] 모노골: 모노골 산림욕장으로 주변 많은 양양읍민들이 운동 삼아 자주 오르내리는 산이며 등산로......등등 모두 잘 정비되어 있었다.
4] 금수봉: 구)오룩스지도에 표시된 약 50m도 안 되는 낮은 산, 정상은 가시잡목
5] 동두산: 모노골 산림욕장으로 주변 많은 양양읍민들이 운동 삼아 자주 오르내리는 산이며 등산로......등등 모두 잘 정비되어 있었다.
6] 석성산: 구)오룩스 지도에 표시된 약100m 안 되는 낮은 산, 정상에는 양양군상하수도사업소(정수장)과 멀리 설악산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7] 구탄봉(대구산): 구)오룩스 지도에는 대구산, 현지에는 구탄봉으로 되어 있었으며, 등산로, 등산안내도, 전망대, 산불감시탑, 자연휴양림......등등 모두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많은 양양읍민들이 운동 삼아 자주 오르내리는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