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금성산 530m

꼴통 도요새 2012. 6. 13. 08:17

금성산 530m

경북 의성군 금성면

해발 531m의 금성산은 산의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해서 가마산이 라고도 부른다. 금성산이 자리 잡은 금성면은 고대 조문국의 도읍지여서 석탑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산행 종점 인근에는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인 수정사가 있고 탑리오층석탑, 관덕리 삼층석탑, 빙산사지 오층석탑 등 우리나라 석탑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석탑과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지, 문익점 면작기념비, 조문국 경덕왕릉 등의 유적지가 금성산 일원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있는 빙계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서 빙혈과 풍혈로 유명하다.

산행코스: 금성면 수정리 공원주차장-> 관망대->병마훈련장-> 금성산->봉수대->이끼군락->비봉산->여인의 턱->전망능선->산불감시초소->공원주차장

산행시간: 약 5시간30분

조문산성, 금성산성: 조문산성 또는 금학산성, 금산석성으로 부른다.

길이 약2,730m, 높이 4m, 너비2~4m로 산정석과 포곡식을 복합한 석축산성으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문무왕 13년(673) 9월에 성을 보수하여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당군을 물리치는데, 한 몫을 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촌로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이전에 축성된 조문성이라 전하며, 의성 현지에 금성산 고성 안에 대궐유지와 우물4개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촌로들의 구전이 신빙성을 더하고 있으며, 지금도 곳곳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관망대: 관망대는 조문국 군 지휘부의 초소 역할로 적의 침입을 살피고 감시하던 곳이라 전한다. 조문국이 최후의 결전을 치룰 때 심지어 부녀자들까지 동원되어 관민이 일치단결하여 싸웠다 하며, 이때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서 던지고, 구르며 끝까지 항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전일 뿐 그 진위는 역사만이 알 뿐이다.

병마 훈련장: 조문국이 최후를 맞아 성안에 갇혀 있는 동안 병마를 훈련시키던 곳이라 전하며 지금도 그때의 취사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나, 패망한 나라의 역사가 있을 수 없으니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기록에는“이 지역에 진한시대에 작은 나라로 등장한 조문국에 난리가 나 크게 군사를 모으니 30명 이었다” 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나 당시 30명이 현재의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봉수대: 해발445m에 위치한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영니산 봉수대”로 기록되어 있다. 면내에는 3개의 봉수대 유지가 있으며, 영니산 봉수대는 청로의“승원산봉수대“에 전달했다고 전한다. 봉수의 기원은 삼국유사 가락국기 시조 수로왕 7년(AD48년),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0년 봉현, 봉산, 봉산성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산 전체가 소나무와 이끼(바위손?)로 덮여 있는 것이 특징.

누군가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