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산경표를 위하여

꼴통 도요새 2016. 3. 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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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를 위하여

목차

첫째마당 
1.  시작하며                                
2.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3.  무엇이 다른가                          

 

둘째마당 
1.  산의 원리, 물의 원리                    
2.  강은 흐른다                             
3.  산도 흐른다                             
4.  이 땅의 산줄기 그려보면                 
5.  1대간 1정간 13정맥                    

 

셋째마당 
1.  산과 강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       
2.  산맥이란                               
3.  무엇이 문제인가                        
4.  지리는 배워서 어디에 쓰나                         
5.  산경표를 알고나면                     

 

넷째마당 
1.  산경표는 말한다                        
2.  무엇이 잘못되어 있나                   
3.  위민의 지리학,산경표를 위하여     

  

일러두기
1. 이 책 제1부 ‘산경표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산경표?라는 지리서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한 ‘광고’의 목적으로  쓰였을 뿐, 학문적 접근에 의한 연구결과는 아니다.
2.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 서술상의 비약이 있기도 하다. 그 말은 그러나 필요에 의해 뺄 것은 빼고 썼다는 의미이지, 논리 자체에 비약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3. 본문에 서술문의 형태로 기록된 사실 중 몇몇은 다른 사람 - 주로 이우형씨나 박용수씨 - 의 글을 보고 그 내용을 취한 것들이 있다. 이 때 인용의 형태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그분들 또한 같은 목적으로 그 글들을 썼기 때문이다
4. 설명에 사용된 예는 대부분 호남지방의 산에서 뽑혀나왔다. 필자가 가장 쉽게 설명드릴 수 있는 지역이 그 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정맥’에서 통용되는 사실은 또한 우리나라의 모든 땅에서 진실일 수 있다는 보편성을 「산경표」는 갖추고 있다
5. 이 책에서 ‘산줄기’라는 단어는 ‘정맥’이나 ‘산맥’을 이야기할 때 모두 쓰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산맥’은 산줄기라 할 수 없지만 흔히 그렇게들 알고 있고, 또한 마땅히 대체할만한 말이 없어 우선은 그렇게 썼다


       

 

첫째마당

1. 시작하며
 지상의 특정 공간이나 지형물은 고유명사, 즉 지명(地名)을 부여받는 순간 정보전달이 가능한 객체의 자격을 얻는다. "내가 사는 마을" 이라는 표현이 갖는 모호함을, "서울" 이라는 고유명사 한마디가 극복시켜주는 것이다.
  지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명이 바뀐다해서 덩달아 지형까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한양"을 "서울"로 부른다해서 갑자기 남산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새 이름에 적응하기까지 적지않은 혼란과 인내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더 큰 혼란은 이름과 함께 체계(system)까지 바뀌었을 때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묶어 '전경도'로 통합하겠다" 하는 변화 따위가 그렇다. 그것이 합리적, 전향적 취지에 따른 개선(改善)이라면 물론 수반되는 상당한 불편이라도 감수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와 강원도를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한다는 식의 억지, 혹은 다른 불순한 의도에 의한 -대개는 정치적인- 개악(改惡)이라면 그것은 바로 잡혀 마땅한 것이 된다.

  지금부터 하고자하는 얘기는 그러한 개악의 경우로 볼 수 있는 현행 '산맥분류개념'에 관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태백, 소백 하는 식의 현행 산맥명칭은 우리 고유의 산줄기 인식에 따라 백두대간, 호남정맥 하는 명칭으로 되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할 이유와 근거, 그리고 향후의 대안에 대해 역사적 고찰로부터 시작하여 풀어보기로 하자. 

 

2.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는 고유의 지리학이 계승 발전되어 오고 있었다. 그것이 [산경표]에 나타나 있는 대간과 정맥이다. 한 민족이, 생존의 근간인 땅에 대해 아무런 인식 없이 살아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대간과 정맥
   선조들은 산과 강을 하나의 유기적인 자연구조로 보고, 그 사이에 얽힌 원리를 찾는데 지리학의 근간을 두었다. 1769년 여암 신경준이 펴낸 것으로 되어있는1), [산경표(山經表)]라는 지리서에 나타난 1대간 13정맥은 그러한 노력의 한 결실이다. 물론 산경표 이전에도(16세기 朝鮮方域地圖), 이후에도(19세기 大東輿地圖) 같은 원리를 이용한 지도들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말은 대간이나 정맥이 어느 개인의 돌출된 아이디어가 아니라, 축적된 지리 인식의 한 표현이었다는 것이다.2)

 

    산  맥
   산맥이라는 용어는 일제가 조선 강점을 기정사실화 해가던 무렵인 1903년, 일본인 지리학자 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지질을 연구하여 [한반도의 지질구조도]라는 것을 발표하였고, 거기에 기초하여  태백산맥, 소백산맥 따위의 산맥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족보로 따지자면 그러므로 대간과 정맥은 우리나라 지리학의 적자(嫡子)인 셈이고, 산맥은 외국 입양아 쯤 된다(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산경표의 복권을 위하여!' 라는 구호의 뿌리를 우리는 이와같은 적서(嫡庶)논쟁에서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적자라 하더라도 그가 '무능력자' 라면 모든 권리를 입양아가 계승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 예를들어 모종의 음모에 의해 호적이 바뀌었고, 게다가 입양된 아이가 집안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 - 라면 사건의 전말을 가려볼 필요가 있다.
 요는 '어느것이 우리것이냐' 보다는 '어느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냐' 하는 점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분명히 하기위해 우선 입양 과정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지질구조도
   고또가 우리나라 땅을 조사한 것은 1900년 및 1902년 두차례에 걸친 14개월 동안이었다. 한 나라의 지질구조를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그만한 기간에 완전하게 조사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년에 발표된 한 개인의 이 지질학적 연구 성과는, 향후 우리나라 지리학의 기초로 자리잡아 산경표를 대신하여 지리교과서에 들어앉게 되었다.
  고또의 연구는 분명 지질학적인 것이었다(근대적 의미의 지리 조사가 시작된 것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의 일이다). 또한 남의 나라 땅을 새로운 방법으로 조사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기간에 이루어진 개인적 성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지질학이 민족의 지리학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질학적 연구가 선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추세에 의한 학문적 욕구로 볼 수도 있으나, 식민지 지하자원의 수탈을 염두에 둔 우선 사업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현실의 지리와 어울리지 않는 지질구조의 성급한 도입에 다른 의도는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실수였건 의도적이었건, 지질학이 지리학의 뼈대로 자리잡는 순간부터 우리나라 국토인식의 왜곡, 문화전통의 왜곡, 역사의 왜곡하여 총체적 민족자존심의 왜곡 내지는 상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 무엇이 다른가
  호남정맥과 노령산맥의 차이는 그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말해 "호남정맥이 노령산맥으로 바뀌었다"는 말은 "산줄기는 같은 산줄기인데 이름만 '호남'에서 '노령'으로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정맥]으로 표현되는 지리체계 자체가 사라지고, [산맥]으로 표현되는 체계가 도입되었다"는 뜻이다. '호남' '노령' 하는 것은 고유명사이고, [정맥] [산맥] 하는 것은 보통명사인데 그 보통명사들이 정의하는 산줄기가 별개의 것이라는 말이다.
  반복하자면 정맥과 산맥은 지리인식의 출발이 다르고, 분류방법이 다르며, 당연히 산줄기에 포함되는 산들도 다르다. 결과적으로 산줄기 이름이 같지 않은 것은 따라서 부수적인 문제가 될 뿐이다.
  그림1은 산경표에 의거해 산줄기를 나타낸 것이고, 그림2는 고또분지로의 이론에 따라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에 실은 산맥지형도인데, 이 두가지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산경도
  1) 땅 위에 실존하는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그렸다
  2) 따라서 산줄기는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고
  3) 실제 지형과 일치하며
  4) 지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선이다


  산맥지형도
  1) 땅 속의 지질구조선에 근거하여 땅 위의 산들을 분류하였다.
  2) 따라서 산맥선은 도중에 강에 의해 여러차례 끊기고
  3)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으며
  4) 인위적으로 가공된, 지질학적인 선이다.

 

 

그림1,2>

 

 

둘째마당

1. 산의 원리, 물의 원리
  일단 산에 올라보자. 좌, 우 양쪽이 다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능선이다. 능선은 산의 양쪽 사면이 만나는 지형인데, 지붕으로 치면 용마루에 해당하는 곳이다. 능선 중에서 가장 높은 곳(솟아 오른 꼭지점)을 산봉우리, 가장 낮은 곳(내려 앉은 꼭지점)을 재(峙)라 한다. [봉우리-능선-재-능선-봉우리-능선...] 하여 길게 뻗어나간 지형을 우리는 그냥 '능선'이라 부르기도하고, 그 규모가 아주 클 때는 산줄기라 하기도 한다. 능선의 형태는 다양하다. 작은 계곡의 합수점을 향해 곧장 떨어지며 짧게 끝나버리는 지능이 있는가하면(보통 '산날'이라 부른다), 땅끝에서 백두산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큰 규모의 것도 있다.


  이번에는 내려가보자. 하산길은 보통 재에서 시작된다. 한 10분 쯤 내려오면 이끼 낀 바위 틈새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다(그 물길의 발원이다). 계곡은 알기 쉽다. 물 흐르는 곳이 계곡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옆의 계곡을 합쳐 세력을 더한 물길은 소리가 커지고 너비도 굵어진다. 이윽고 산을 벗어나(실은 더 큰 산줄기 안에 있는 것이지만), 내(川)가 되고 마침내 강을 이룬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계곡이 끝나고 내(川)가 시작되는 지점 쯤까지는 대개 다리품을 팔아야 차를 얻어 탈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살고 길도 제법 뚫려있는 '세상'은 산이 아니라 물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안에 드러누워 이번 산행에서 보았던 사실들을 정리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몇가지 규칙이 떠오를 것이다. 일단 그러한 공통적 '사실'들을 나열해 보고, 거기에 얽힌 '원리'를 추론해 가기로 하자.

 

  지리적 사실
  1) 능선에는 물이 없다
  2) 계곡은 물길 머리에 있는 능선(峙)보다 반드시 더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3) 두 능선 사이에는 반드시 계곡이 하나 있다. 또한 두 계곡 사이에는 언제나 능선이 하나 있다
  4) 물길은 끊기는 법 없이 이어져 흐른다

 

  인문적 사실
  1) 능선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2) 사람은 물가에 산다. 게다가 물길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림3>

 

  사람 사는 이치를 따질 '인문적 사실' 자료는 나중에 써먹기로 하고, 우선 그림3을 보며 '지리적 사실' 부터 조리해 가기로 한다. 그림은 우리나라 진안군 팔공산 부근의 실제 지형을 마루금(능선)과 물길로만 표시한 것이다. 필요한 부분은 자세히 그렸고 그렇지 않은 곳은 생략하기도 했다.


  1) 2)에서,"물길은 능선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는 말은 "능선에는 물이 없다"는 말과 결국 같다. 덧붙이자면, 물의 원천은 산이라는 사실, 즉 산은 물길의 젖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계곡에서, 강에서 하루 종일 흘러다니는 물방울 하나 하나는 모두 산에서 스며 나온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3)이다. ―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능선과 계곡이 1:1 대응하여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A지역만 떼어 마루금 따로, 물길 따로 그려 보았다. [그림3-가]에서, 빈 자리에 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성공이다. 그렇다면, [그림3-나]의 빈 자리에는, 산들이 솟아 뻗어가는 모양이 어렵지 않게 읽혀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두 그림을 번갈아 보는 동안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 그렇다. 능선과 계곡은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처럼 뗄 수 없는, 역상(逆像)구조의 관계이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관계이다. 지리 인식의 모든 원리는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음과 양의 차이는 있을망정 맞물린 산과 강의 '나무모양 구조' 만큼은 똑같은 것이다. 필름을 보면 인화될 사진을 짐작할 수 있듯, 강줄기를 보면 산줄기의 흐름을 짐작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강이 흐르듯 산도 흐른다" 는 정의(定義)이다.


  4)에서 강은 끊기지 않고 이어져 흐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강(江)이라는 필름을 인화한 사진 격인 산에도 대응하는 흐름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일정하게 내려 흐르는 江과는 달리, 오르락 내리락 하기 때문에(그래도 크게 보면 일관되게 오르고 있다) 얼핏 그 맥을 알아채기 어려울 뿐일 것이다.


  '지리적 사실' 1) 4)는 산을 이해하려면 강을 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강줄기를 분류하고 나면 산줄기는 저절로 나뉜다는 사실도 가르쳐준다. 지리 공부에 있어 강이 제공하는 두가지 이점은 '흐르는 방향이 눈에 보인다'는 것과 '그 줄기 또한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상추막이골에서 종이배를 띄워 보라. 임하 쯤 흘러 내려가던 종이배가 고중대 계곡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를 볼 수 있겠는가?  결코 없다. 강은 그처럼 흐름과 줄기가 눈에 보인다. 따라서 물길을 파악하는 일, 결과적으로 산줄기를 아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2. 강은 흐른다
    하나의 강을 이루는 물줄기는 수백, 수천이다. 이 물줄기들은 제각기 독립된 시작점을 갖고 있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강의 수원이 된다. 넓은 의미로 보자면 이들 모두를 발원지라 해야겠으나, 통일된 기준을 위하여 지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발원 : 수백,수천 되는 강의 시작점 중에서, 하구로부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잰 거리(직선거리가 아니다)가 가장 긴 시작점을 특별히 그 강의 발원(發源)이라 한다. 발원은 신비감을 조장하는 상징성 역할 뿐 아니라, 지리학에서 강을 얘기할 때 '하구'와 함께 기준점 노릇을 한다.

 

  본류와 지류 : 발원지에서 하구에 이르는, 가장 긴 하나의 물줄기를 그 강의 '본류'로 삼고 강 이름을 그 줄기에 부여한다3).  그 외의 곁가지는 '지류'라 하여 별도의 이름이 붙는데, 그림3의 '오수천' '요천' 따위가 그것으로 모두 섬진강의 지류이다.

 

  강의 길이 : 흔히 '강의 길이' 라고 하는 것은 본류의 길이를 말한다. 섬진강의 예로 보면, 발원지인 상추막이골에서 띄운 종이배가 하구인 광양군 망덕리까지 흘러내려간 거리 212Km가 강의 길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강의 길이'에는 지류의 길이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지류의 길이'에 또한 더 작은 곁가지들의 길이가 포함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유역면적 : 강의 세력을 비교할 때 '길이'로 따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높이는 같더라도 대나무와 느티나무가 차지하는 공간을 상상해보라). 이 때 필요한 것이 유역면적이다. 유역면적이란 지류를 포함한 그 강의 모든 물줄기를 에워싼 지역의 넓이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분수계(分水界)에 의해 둘러싸인 면적]이다. 분수계/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나온다.

 

하구(河口) : 강이 끝나면서 바다와 만나는지점. 크게보면 이것이 강본류의 합수점에 해당한다.

합 수 점  : 강의 지류가 본류와 만나는 지점. 합수점은 따라서 육지에 있다.

 


결과적으로 강의 성격규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잣대는 '하구'이다.

 

   하구에 관해서는 두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첫째, 하나의 강은 하나의 하구를 갖는다(하구가 다른 강은 별도의 독립된 물줄기이다) : 결국 섬진강과 금강 물길들은 섞이는 법이 없다.


   둘째,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는 잣대 또한 그 길이나 세력이 아니라, 하구의 유무에 있다 : 본류는 하구를 갖고 있는 반면, 지류는 합수점을 갖고 있다. 길이 126km의 보성강이 섬진강의 지류임에 반해, 길이 45km의 동진강은 당당한 본류인 것이다4) .

 

3. 산도 흐른다

 

마루금 : 지도상에, 능선을 따라 그은 선. 즉 능선의 지도상 표시.그림에서 굵은 선으로 그려진 것들이마루금이다. 일본의 독도법 책을 베낀 어떤 이는'지성선(凸線)'이라 했는데, 말맛이 마땅치 않아 저자가 제안하고 산악인들과의 합의를 거쳐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림3을 다시 보자. 어떤 능선(마루금)은 길게 뻗어 가는 반면, 어떤 것은 짧게 끝난다. 공통점은 그 끝이 두 계곡의 합수 지점에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능선은 양쪽에 거느린 두 계곡의 합수 지점에서 끝난다" 이다.

  위에서 알기 쉽게 '끝난다'고 표현했지만 산도 흐른다는 사실, 그리고 산과 강은 역상구조라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능선은 두 계곡의 합수 지점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큰 줄기의 능선으로 '흘러 올라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쨌거나 능선의 이런 성질을 산줄기 분류에 응용하자면 다음 두가지 사실이 정리 된다. 
  첫째, 양쪽에 큰 계곡을 거느린 능선일수록 길게 뻗어간다(그림3의 ㉮와 ㉯ 비교)


  둘째, 하구가 서로 다른, 독립된 강을 가르는 산줄기는 끊기지 않고 바다까지 계속된다.

 

  그림3에서 굵게 그려진, 호남정맥이라 표시된 산줄기는 왼쪽에 섬진강 오른쪽에 금강을 두고 있다. 산줄기가 양쪽 물길의 여러 시작점들을 가르고 있음을(동시에 물을 공급하는 젖줄 노릇도 하고 있음을) 확연히 볼 수 있다. 하구가 다른 두 강의 물줄기는 결코 섞이는 법이 없다 했으니, 섞이지 않도록 가르고 있는 선이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가리켜 선조들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山自分水嶺)
  '山自分水嶺!'― 이것이야말로 산경표 원리의 시작이요 끝이다. 대간 정맥분류의 발상이자 완결이다. 위의 표현은 의역을 시도해 본 것이지만, 말 그대로 옮겨보자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이다. 산이 물을 가르고 있으니 물이 산을 넘어가지 못함은 당연한 일, 양쪽 물줄기의 젖줄이면서 울타리이기도한 그 선이야말로 두 물줄기의 분수령(分水嶺)인 것이다.

 

  호남 지방의 큰 물길과 산줄기들을 그림4에 그려 보았다.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섬진강들의 독립된 하구가 보인다(그림에 하구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금강, 낙동강도 독립된 물줄기이다). 여러 산줄기 중에서 이 강들의 경계가 되는 것들은 바다에 이르도록 끊기지 않고 뻗어가고 있다. 합수지점에서 끝나버리는 지맥과는 크기 면에서도 확실히 다르다. 이름하여 대간(大幹) 정맥(正脈)이라 하는 것이다.

                           

                           그림4>

                                       

 

 

  그러고 나니 ㉮㉯㉰ 지역이 시끄럽다. 바다로 곧장 흘러드는 여러 작은 개울들이 저마다 "우리도 독립된 하구를 갖고 있으므로 그 격으로 보자면 섬진강, 낙동강과 같다" 하며 떠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얘기거리가 안될만큼 규모가 작다. 따라서 이들을 에워싸는 산줄기는 무시하기로 산경표는 마음 먹었다.

 

  독립된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더라도 그 강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림4를 보더라도 강을 나누는 여러 산줄기 중에서 이름이 붙은 것은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호남정맥 뿐이다. 영산강 동진강조차 산줄기 분류 대상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리하여 산경표가 정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대간 1개, 정간 1개, 정맥 13개하여 총 15개이다. 그 분류체계를 정의 하는 강들은 모두 10개인데, 길이 내지 유역면적상의 우리나라 10대강이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지리 인식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으로, 그 강 이름 10개를 유역면적 순으로 써보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강의 길이이다).

 

  1.압록강(790km), 2.한강(514km), 3.낙동강(525km), 4.대동강(439km), 5.두만강(521km),
  6.금강(401km), 7.임진강(254km), 8.청천강(199km), 9.섬진강(212km), 10.예성강(174km)


 

  '산, 능선, 산줄기, 분수령' 모두 결과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다. 다만 분수계(分水界)의 뜻은 조금 한정되어 있다. 분수계는 하나의 강을 완전하게 에두른, 울타리 전체를 뜻한다. 그림에서 '.....'표시된 경계선이 섬진강의 울타리 즉 분수계인데, 여기에는 백두대간의 일부, 호남정맥, 그리고 ⓐ ⓑ 지맥이 포함되어 있다. 분수계란 결국 분수령의 집합에 다름 아닌 셈이다.

 

  분수계로 둘러싸인 내부를 그 강의 수계(水界, 혹은 水域)로 삼고, 그 면적을 강의 '유역면적'이라 한다. 유역면적은 강의 세력을 반영한다. 그러나 분수계가 갖는 더 큰 의미는 그것이 사람 사는 일에 울타리 노릇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수역 안에서라면 어떻게 하든지 산을 넘지 않고 서로 왕래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단 분수계 밖으로 나가자면, 그러니까 다른 수역으로 일 보러 가자면 산을 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운송 수단을 전적으로 다리품에 의존하던 시절에 이 분수계라는 울타리가 의미하는 '벽'이 얼마나 높았을까 하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면적 계산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간, 정맥이 결국 분수계의 의미이므로 앞으로는 구별하지 않고 쓰겠다.
 
4. 이땅의 산줄기를 그려보면
  지리 공부는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산경표의 원리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여타 개념과의 차별성을 검증하기 위해 '山自分水嶺'에서 파생되는 이치 한가지만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산에서 물을 건너지 않고 다른 산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있고, 그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능선길을 밟아 나간다는 뜻이다. 내장산 일대(그림4의 A지역)를 자세히 그린 그림5를 보며 위 사실을 검토해 보자. 편의상 반증법(反證法)으로 풀어 가겠다.

 

                  그림5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라는 논리 : 내장산에서 백암산 가는 길은 그림의 점선이 유일한 것이다. 또 다른 길이 있는 경우란 내장산 남쪽 지능 중 하나와 백암산 북쪽 지능 중 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일을 말한다(ⓐ 혹은ⓑ 혹은ⓒ). 그렇게 된다면 능선에 에워싸여 갇힌 추령천 물들은 다 어디로 가나? 거대한 자연호수를 이뤄 지하로 흘러드나? 우리나라에 이런 지형은 없다5). 따라서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길은 반드시 있고" 라는 논리 : 위와는 반대의 경우이다. 사자봉에서 내장산 가는 길이 '없으려면' 남창골 과 약수동계곡이 만나야 한다. 즉 운문암재가 물길로 되어야 한다. 사자봉, 가인봉 일대가 거대한 섬이 되는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두 물길에 갇힌, 그러한 섬 지형은 있을 수 없다6). 따라서 길은 반드시 있다.

 

  이로써 계룡산에서 금정산 가는 길은 오직 하나, 설악에서 땅끝 가는 길 또한 오직 하나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게다가 나라 안의 어떤 산에서 출발하더라도 백두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 점을 잇는 선은 하나 뿐"이라는 이 원칙은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산줄기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또한 누가 그리더라도 그 결과는 같다.
  그것은 산줄기 그림이 '실제 눈에 보이는' 산과 강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또한 거기에 일관된 원칙을 적용시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에 반해 지질구조선은 전문가가 그려주면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게다가 의견이 다른 전문가가 각각의 그림을 내놓더라도 어찌 해볼 방법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7). 그러한 어려움은 지질구조라는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의 일에 대한 이론이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도 5만분의1 지도를 사자. 그리고 마루금을 긋자. 어디서 자주 보던 그림 아닌가? 흔히 등산잡지에서 보아왔던 개념도(그림3, 그림5 따위)와 같은 모양 아닌가? 산경도라는게 기껏 [등산 개념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렇다. 전국 모든 지역의 개념도를 하나로 잇댄 산줄기 그림과 산경도는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여러 산줄기 중 어느 것이 크고 중요한 줄기인가를 가려 강조해서 그렸고, 거기에 이름을 덧붙였을 뿐이다.

 

             

 


  위의 그림6이 바로 그 산경도이다(그 옆의 작은 그림은 옛날식 표현법이다). 그것은 또한 수계도(水界圖)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실제 지형의 '축소 복사' 그림이기도 한 것이다(그에 비하면 산맥지형도는 '임의 작도'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반복하건대 산경도는 우리나라 '실제' 지형의 축소 복사이고, 따라서 그림 자체는 누가 그리더라도 같아야하는 것이다. 다만 어느 줄기를 큰 줄기로 볼 것이냐, 혹은 그것들에 어떤 이름을 줄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 견해 차이에 관한 언급은 조금 후로 미루고, 우선은 [산경표]가 제시하고 있는 산줄기 분류법부터 파악해 나가기로하자.

 

 5. 1대간 1정간 13정맥
  그림을 보면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굵게 표시된 산줄기가 우선 눈에 띈다. '백두'라는 이름에 '대간(大幹)'이라는 격(格)을 주어 여느 정맥들과는 조금 다르게 쳤다. 그러니까 이 산줄기를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기둥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백두대간'에는 나라 안에서 높고 험한 산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산세로만 보아도 기둥의 자격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8).  백두대간은 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며, 동쪽 물길과 서쪽 물길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지리적 사실을 아울러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조금 가늘게 표시된 줄기들을 보자. 대간에서 갈래쳐 나온 산줄기는 모두 14개인데(1정간 13정맥), 이것들은 우리나라 열개의 큰 강을 각각 구획하는 울타리들이다. 그런 연유로 해서 정맥의 '이름' 또한 에워싸고 있는 물길에서 따온 것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정맥은 강의 울타리, 즉 분수령이라 했다. 어느 정맥에 서거나 내려다 보이는 좌,우 물길은 별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맥에서 오물을 버리려면 어느 강을 더럽힐까를 먼저 결정한 후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할 일이겠다.
  하나의 강을 온전히 에두른 분수계를 그리자면 대개 하나 혹은 두개의 정맥에다 백두대간의 일부를 필요로 한다.  예를들어 '낙동강 수계'라 하면 {낙동정맥 ― 태백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일부 ― 낙남정맥} 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말한다. '수계(水域, 流域)'라는 말에는 그 안의 물이란 물은 모조리 모여 한군데 하구로 흘러든다는 의미와,  수역 내에서는 어떻게 하던지 산을 넘지않고도 이동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15개 산줄기와, 그 분류의 기본이 되는 10개 큰 강의 분수계를 적어 복습해보자면 다음과 같다9).

15개 산줄기

10개 江 및 그 분수계

백두대간
장백정간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두만강 : 장백정간, 백두대간

압록강 : 청북정맥, 백두대간
청천강 : 청북정맥, 청남정맥
대동강 : 청남정맥, 백두대간, 해서정맥
예성강 :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임진강 : 임진북예성남정맥, 백두대간, 한북정맥
한  강 : 한북정맥, 백두대간, (한남금북), 한남정맥
금  강 : 금북정맥, (한남금북), 백두대간, (금남호남), 금남정맥
섬진강 : 호남정맥, (금남호남), 백두대간
낙동강 : 낙동정맥, 백두대간, 낙남정맥


 

  이제 더 언급할 것이 없을만큼 산경표의 원리는 단순 명쾌하다. 몇가지 이견(異見), 특히 갈래 정하기나 이름붙이기 과정에서의 다른 생각들에 대해 부연하는 것을 끝으로 산경표 공부를 마치기로 한다.

 

  몇가지 문제점들
  겹칩부분 : '금남호남정맥'은 금남정맥 및 호남정맥을 백두대간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을 독립된 산줄기로 보아 13정맥으로 셈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산경표 해석상의 통례이다. 그러나 해서정맥 및 임진북예성남정맥 지역에서는 두 정맥의 겹침 부분(두류산→화개산)에 별도의 정맥 이름이 없다. 이에 근거하여 '금남호남정맥' 또한 독립된 산줄기로 볼 것이 아니라 금남정맥이기도하고 호남정맥이기도 하는, 다시말해 단순한 '겹침부분'으로 해석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사람과산] 90년 11월호 41쪽). 위 두 의견을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립된 산줄기로 보는경우                     단순한 겹침부분으로 보는경우 
금남호남정맥 : 영취산→ 주화산              없음
금남정맥     : 주화산→ 계룡산→            영취산→ 주화산→ 계룡산
호남정맥     : 주화산→ 무등산→            영취산→ 주화산→ 무등산 

  산경표의 취지에 비추어 이것은 고려해 볼만한 견해이다. 예를들어, 20쪽의 표에서 괄호 부분을 빼더라도 의미 전달에는 전혀 하자가 없을 뿐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하여 같은 경우인 '한남금북정맥'까지 뺀다면 정맥은 11개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겹침부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면 '임진북예성남정맥'의 시작은 현재지명 두류산으로 보는 것이 또한 타당할 것이다(산경표는 현재지명 화개산을 시작으로 삼고 있다)

 

  정맥과 정간 : 조선광문회 본 산경표에 표시된 '정간(正幹)'은 장백정간 1개 뿐이다. 그러나 원전 격인 [여지편람(輿地便覽)]의 산경표를 보면 '낙남정맥' 또한 '낙남정간'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분류법이나 체계(system)는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때, 아직까지는 '정간'이 따로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드릴 수가 없다. 크게보아 '정맥=정간'으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으므로 일단은 그렇게 쓰기로 하겠다.

 

  빠진 부분 : 세력은 작지 않으나 지류를 구획하는 산줄기라는 이유 때문에 '정맥' 감투가 없는 산줄기들, 예를들어 낭림산에서 북으로 뻗는 줄기, 오대산에서 시작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줄기 따위를 어떻게 대접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또한 본류를 구획하는 산줄기이기는 하되 그 구획하는 강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 때문에 빠진 경우, 즉 영산강의 북쪽 및 남쪽 울타리들 역시 산줄기로써의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으므로 적당한 대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도 기맥(岐脈) 혹은 지맥(支脈) 따위 적당한 격(格)과 함께, '영산북''영산남' 등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자세한 지리연구 및 전달에 도움이 될 듯하다.
  전달상의 문제를 조금 더 고려한다면, 백두대간 만큼은 의미 있는 구역별로 세분하여 각각의 별칭을 함께 사용하면 편리할 듯하다. 예를 들어 '태백산→속리산' 부분은 '백두대간 중원구간' 하고 부른다는 따위이다.

 

  줄기의 방향 : 어떤 정맥을 보면 그 끝이 강의 하구가 아니라, 본류와 작은 지류 사이의 합수지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예를들어 금남정맥이 그러한데, 아마도 서해안 평야지대 때문에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산세를 감안하여 크게 왜곡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세가 큰 줄기를 따라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우 원칙에 벗어나더라도 산경표대로 따를 것이냐, 아니면 산줄기 방향만은 엄격하게 바로잡고(금남정맥의 경우라면, 운장산 부근에서 계룡산을 향하지 않고 서해로 빠진다) 남는 산줄기는 별도의 기맥으로 처리할 것이냐는 여러 연구가의 의견 집약이 필요한 대목이다.

 

  부분적 오류 : 산경표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부분적 오류가 가끔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호남정맥 부분에서는 '금남호남정맥'에서의 분기점 문제, 정맥에 포함될 수 없는 산들이 정맥으로 표기된 경우 따위의 잘못이 보인다. 그 외에 이수(里數)나 방향 표기까지 따진다면 헷갈리는 대목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 중에는 진짜 오류도 있겠지만, 단순히 옛 지명과 현 지명의 해석 차이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부분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산줄기의 대세 만큼은 정확하게 제 갈 길 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해석되고 있는 산경표에는 이와같이 해결되어야할 몇가지 논란거리가 남아있다. 논란거리는 그 성격상 두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당시의 측량 기술 수준의 한계에 따른 '잘못'으로 마땅히 고쳐져야 할 것들이고, 또 하나는 해석상의 차이 또는 견해 차이에 기인한 '혼란'으로 적당한 논의 후에 통일되어야 할 것들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것들은 부수적 문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낮춰 잡더라도 이러한 논란거리들이 산경표가 이 땅을 보는 눈, 즉 산줄기 분류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백 두 산
  백두산은 우리 민족에 있어 좀 특별한 산이었다. 단군(檀君) 탄강(誕降)의 설화로부터 시작해, 언제나 크고 높으며 성스러운 산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를 '나라의 빛나는 양산(陽傘)'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어느 옛 지도를 보더라도 백두산만큼은 그 모양이 좀 특별하게 그려져 있다. 백두산이 누리는 이런 '특별한' 대접이 단순히 상징적인 신성(神聖)에서 유래한, 감정적 경외가 그 전부였을까?

  약간 건조한 얘기 같지만 지리학적으로 보더라도 그만한 대접에는 근거가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백두산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섬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백두산 이야말로 한반도를 대륙과  연결하고 있는 유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글쓴이에게는 압록강, 두만강을 천지에서 발원하는 강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져 우리나라는 섬이 아니겠느냐고 우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천지는 순수한 호수일 뿐이다. 두 강의 발원지는 모두 천지 한참 아래에 따로 존재한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림6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과 산줄기 들이 백두산에 매달려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산자 김정호가 썼던, '백두산은 조선 산줄기의 근원' 이라는 표현은 따라서 지리학적 접근에 의한 사실적 서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백두산 중심의 시각으로 보자면, 또한 강과 산의 역상관계까지 (강과 산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고려해 말하자면,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 쳐 내려간다"는 표현보다는 "하구에서 몸을 일으킨 정맥이 대간으로 합맥하며, 마침내 백두산으로 흘러 올라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셋째마당
 

  1. 산과강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
  사람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않될 것이 물과 공기 그리고 땅이다. 그 셋 중 공기는 히말라야 꼭대기 아닌 한 어디에서나 공평하다. 다시말해 공기는 상수(常數)의 조건이므로, 인간 삶의 형태를 규정하는 외부 환경 변수(變數)는 물과 땅, 두 가지로 압축된다. 지형, 즉 산과 강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위해 10쪽에서 관찰해 두었던 '인문적 사실'을 꺼내 보았다.

 

  인문적 사실
  1) 능선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2) 사람은 물가에서 산다. 게다가 물길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여산다.

 

  능선에는 왜 사람이 살지 않을까?  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가에 살더라도 왜 하류 쪽에 더 많이 모여 살까?  지어 먹을 땅이 넓고 평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동이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강은 '정착'과 '이동'이라는, 인간 속성의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 준다. 정착에 필요한 물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동에 필요한 교통 수단을 제공한다. 우선은 강 자체가 수로(水路) 즉 '길'이었고, 육지의 길이라 하더라도 거의가 강줄기를 따라 날 수 밖에 없었다. 토목 기술이 보잘것 없었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러한 길이 '산을 피하고 강을 따르는' 경향은 더욱 뚜렷했을 터이다. 그것은 별도의 반증을 필요로 하지않는, 당연한 사실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큰 강 주위에서 태동했다. 그것은 세계사 첫장에서 배웠던 상식이다. 강이야말로 인간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산은 장애물이었다. 정착이 불가능한 곳일 뿐 아니라, 이동에도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역설적으로 산 또한 인간의 문화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말이 된다. 강 하고는 정 반대 의미의 '거울'인 것이다.


  그림을 보자. 금강, 낙동강, 섬진강하여 세 강이 나뉘는 지역이다. 해발 600 미터 고지대인 지지리(知止里)는 섬진강 지류인 요천의 발원지인데, 직선거리로 따져 장수읍이 8km, 함양읍 15km이고, 남원은 25km 쯤 떨어져 있다.
   

               그림7>

                           

 


  문제 하나 풀자. "지지리 사람들은 나들이 갈 때 주로 어디로 갈까?"
  눈치채셨겠지만 답은 "남원"이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래서 "남원 100리길" 해가면서도 주민들은 남원의 생활권으로 산다10). 까닭이야 물론 남원 가는 길에는 재(峙)가, 다시말해 넘어야할 산이 없기 때문이다. 물길 흐르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함양 쪽을 보면 높이 750미터의 중고개재가, 장수 방향에는 어치재, 밀목재 하여 그만한 높이의 장벽이 두개나 버티고 있다. 결국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장수읍이 산과 강의 이치에 따라 가장 '먼' 동네로 간주되는 것이다.

 

  강은 사람을 흐르게 하고, 산은 가둔다. 강이 동질성을 품는 동안, 산은 이질성을 키운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할때, 산과 강을 보는 눈부터 가다듬어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동질성'의 확보에 직접교류라는 전제 조건이 꼭 필요한건 아니다. 같은 물길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면 충분하다. 예를들어 지지리와 사암리 주민들은 서로 내왕하는 일이 잦지 않더라도 같은 말과 음식 맛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이들은 요천이라는 이름의 같은 물을 먹고 살며, 멀리는 남원 가까이는 번암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은 요천 물가에 사는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고, 그것이 하나 되어 퍼져나가는 중심지인 셈인데, 따지고 보면 그러한 수렴작용은 남원의 힘이 아니라 요천이라는 물길의 힘으로 봐야 한다.


  요천 동네이지만 덕산리는 장수읍에 기대어 산다는 따위, 부분적인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사암리까지의 물길이 어찌나 구절양장이던지 밀목재 하나 넘어 장수 가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가구 되는 아파트 단지에서 몇몇 가구가 뒷 담장 쪽문을 통해 골목 가게와 거래한다고해서 아파트 상권이 그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11).

  시야를 조금 넓혀 보자. 요천 사람들은 오수천 사람들과 동질성을 띄리라는 사실, 그에 비해 거리는 가깝지만, 함양이나 장수 사람들과의 간극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짐작 가능하다. 섬진강과 낙동강, 섬진강과 금강의 물길이 만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데 그것이 "요천 사람들은 낙동강 금강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정맥 대간을 넘나들며 교류를 하기는 한다. 다만 그 교류의 결과로 생긴 부분적 문화를 담아내고, 그것을 다시 공통의 문화로 연마하여 나눠줄 구심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반복하자면, 공통의 문화가 배양될 통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야기는 산줄기로 돌아와도 마찬가지이다. 강이 동질성을 품는 동안, 산은 이질성을 키운다 했다. 이 경우 이질성의 크기는 산줄기의 크고 높음에 비례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특정 산줄기가 물길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끊기지 않고 바다까지 뻗어있는 산줄기라야 '이질성'을 논할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문화의 동질성이란 - 몇번 강조했지만 - 직접교류 여부 보다는, 그 교류의 결과를 재분배해줄 공통의 물길을 갖고 있느냐하는 사실에 더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프면 그림을 보자. 요천 주민들이 오수천 사람들과 실제로 내왕하는 통로는 물길이 아니라 ㉮능선의 여러 재들이다. 아무리 물길이 편하다기로서니, 대성리 사람치고 남원지나 곡성 순창까지 내려갔다가 임실 오수로 거슬러 올라오는 이 많지 않을 터이므로 그렇다 (요천과 오수천의 합수 지역은 그림7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 대목에서, ㉮능선이 엄청나게 높고 험하여 도저히 사람이 넘나들 수 없는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말하자면 대성리와 오수는 직접 교류가 불가능한 여건에 놓여있다는 가정이다. 그렇게되면 두 지역은  동질성을 상실하게 될까?  약간의 영향은 있겠지만 동질성의 대부분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직접 교류가 불가능하더라도 남원, 곡성, 순창, 임실 해서 서로의 문화를 전해줄 매개 즉 물길만은 여전히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산경표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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