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山自分水嶺

꼴통 도요새 2016. 4. 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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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自分水嶺

산도 흐른다

그림3

그림4


16쪽 그림3을 다시 보자. 어떤 능선(마루금)은 길게 뻗어 가는 반면, 어떤 것은 짧게 끝난다.

공통점은 그 끝이 두 계곡의 합수 지점에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능선은 양쪽에 거느린 두 계곡의 합수 지점에서 끝난다" 이다.

위에서 알기 쉽게 '끝난다'고 표현했지만 산도 흐른다는 사실,

그리고 산과 강은 역상구조라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능선은 두 계곡의 합수 지점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큰 줄기의 능선으로 '흘러 올라간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어쨌거나 능선의 이런 성질을 산줄기 분류에 응용하자면 다음 두가지 사실이 정리 된다. 

첫째, 양쪽에 큰 계곡을 거느린 능선일수록 길게 뻗어간다(그림3의 ㉮와 ㉯ 비교)

둘째, 하구가 서로 다른, 독립된 강을 가르는 산줄기는 끊기지 않고 바다까지 계속된다.

그림3에서 굵게 그려진, 호남정맥이라 표시된 산줄기는 왼쪽에 섬진강 오른쪽에 금강을 두고 있다.

산줄기가 양쪽 물길의 여러 시작점들을 가르고 있음을(동시에 물을 공급하는 젖줄 노릇도 하고 있음을) 확연히 볼 수 있다.

하구가 다른 두 강의 물줄기는 결코 섞이는 법이 없다 했으니, 섞이지 않도록 가르고 있는 선이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가리켜 선조들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山自分水嶺 =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山自分水嶺!'

이것이야말로 산경표 원리의 시작이요 끝이다. 대간 정맥분류의 발상이자 완결이다. 위의 표현은 의역을 시도해 본 것이지만,

말 그대로 옮겨보자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이다. 산이 물을 가르고 있으니 물이 산을 넘어가지 못함은 당연한 일,

양쪽 물줄기의 젖줄이면서 울타리이기도한 그 선이야말로 두 물줄기의 분수령(分水嶺)인 것이다.

호남 지방의 큰 물길과 산줄기들을 그림4에 그려 보았다.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섬진강들의 독립된 하구가 보인다

(그림에 하구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금강, 낙동강도 독립된 물줄기이다).

여러 산줄기 중에서 이 강들의 경계가 되는 것들은 바다에 이르도록 끊기지 않고 뻗어가고 있다.

합수지점에서 끝나버리는 지맥과는 크기 면에서도 확실히 다르다.

이름하여 대간(大幹) 정맥(正脈)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 지역이 시끄럽다. 바다로 곧장 흘러드는 여러 작은 개울들이 저마다

"우리도 독립된 하구를 갖고 있으므로 그 격으로 보자면 섬진강, 낙동강과 같다" 하며 떠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얘기거리가 안될만큼 규모가 작다. 따라서 이들을 에워싸는 산줄기는 무시하기로 산경표는 마음 먹었다.

독립된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더라도 그 강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림4를 보더라도 강을 나누는 여러 산줄기 중에서 이름이 붙은 것은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호남정맥 뿐이다.

영산강 동진강조차 산줄기 분류 대상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리하여 산경표가 정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대간 1개, 정간 1개, 정맥 13개하여 총 15개이다.

그 분류체계를 정의 하는 강들은 모두 10개인데,

길이 내지 유역면적상의 우리나라 10대강이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지리 인식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으로, 그 강 이름 10개를 유역면적 순으로 써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강의 길이이다). 1.압록강(790km), 2.한강(514km), 3.낙동강(525km), 4.대동강(439km), 5.두만강(521km), 6.금강(401km), 7.임진강(254km), 8.청천강(199km), 9.섬진강(212km), 10.예성강(174km) '산, 능선, 산줄기, 분수령' 모두 결과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다.

다만 분수계(分水界)의 뜻은 조금 한정되어 있다.

분수계는 하나의 강을 완전하게 에두른, 울타리 전체를 뜻한다.

그림에서 '.....'표시된 경계선이 섬진강의 울타리 즉 분수계인데,

여기에는 백두대간의 일부, 호남정맥, 그리고 ⓐ ⓑ 지맥이 포함되어 있다. 분수계란 결국 분수령의 집합에 다름 아닌 셈이다.

분수계로 둘러싸인 내부를 그 강의 수계(水界, 혹은 水域)로 삼고, 그 면적을 강의 '유역면적'이라 한다.

유역면적은 강의 세력을 반영한다. 그러나 분수계가 갖는 더 큰 의미는 그것이 사람 사는 일에 울타리 노릇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수역 안에서라면 어떻게 하든지 산을 넘지 않고 서로 왕래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단 분수계 밖으로 나가자면, 그러니까 다른 수역으로 일 보러 가자면 산을 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운송 수단을 전적으로 다리품에 의존하던 시절에 이 분수계라는 울타리가 의미하는 '벽'이 얼마나 높았을까 하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면적 계산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간, 정맥이 결국 분수계의 의미이므로 앞으로는 구별하지 않고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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