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봉선화

꼴통 도요새 2017. 7. 10. 10:43

봉선화

동의어: 봉숭아

다른 표기 언어: Impatiens balsamina , 鳳仙花

 

분류: 속씨식물 > 쌍떡잎식물강 > 무환자나무목 > 봉선화과 > 봉선화속

원산지: 아시아

서식지: 습하고 양지 바른 곳

크기: 60cm

학명: Impatiens balsamina L.

꽃말; 경멸, 신경질,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꽃의 생김새가 마치 봉황을 닮아 봉선화라고 부른다. 언제부터 부녀자들이 손톱을 물들이는 데 봉선화를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충선왕 이전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꽃잎에 괭이밥의 잎을 섞고, 백반 또는 소금을 약간 넣고 빻아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

내용

인도·말레이시아·중국이 원산이며 지금은 전 세계에 널리 재배되는 원예식물이다. 봉숭아라고도 한다. 봉선화라는 이름은 꽃의 형상이 봉()의 모양과 흡사하다는 데서 온 것이다. 학명은 Impatiens balsamina L.이다. 봉선화는 줄기가 다육질(多肉質)이고 높이가 60에 달하고 털이 없으며 곧추 자라고 밑부분의 마디가 특히 두드러진다. 잎은 어긋나며 자루가 있고 피침형으로 양끝이 점차 좁아진다. 꽃은 78월에 홍색·백색·자색 등 여러 가지로 피며 2·3개씩 잎짬葉腋에 달리고 화축(花軸꽃대)이 있어 밑으로 처지며 좌우로 넓은 꽃잎이 퍼지고 뒤에서 통모양으로 된 거()가 밑으로 굽는다. 과실은 삭과(窠果열매의 속이 여러 간으로 나뉘고 그 안에 많은 씨가 들어 있음)로 타원형이며 익으면 탄력 있게 터지면서 황갈색 종자가 튀어나오는 자동산포(自動散布)를 한다. 봉선화가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다정한 꽃이며, 일제시대에는 우리 조상들이 망국의 한을 노래하던 꽃이기도 하다. 여름철에 봉선화가 피면 소녀들은 봉선화 꽃잎에 괭이밥의 잎을 섞고 백반 또는 소금을 약간 넣어 빻아서 손톱에 얹고 헝겊으로 싸매어 손톱을 곱게 물들였다. 그 원리는 괭이밥에 포함된 수산이 손톱의 형질을 물렁하게 하고 소금이 매염제가 되어 봉선화의 물감이 잘 물들게 하는 것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우리나라에는 이 봉선화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고려 충선왕은 몽고에서 보내온 공주보다 조비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시 고려를 지배하던 몽고의 미움을 받아 왕위를 내놓고 몽고 수도로 불려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왕은 어느날 한 소녀가 자기를 위해 가야금을 타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소녀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하도 기이하여 궁궐 안에 있는 궁녀들을 모조리 조사하여보니 한 소녀가 손가락을 흰 헝겊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왕이 그 소녀의 신분을 알아보니 고려에서 온 소녀인데 봉선화 물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왕은 남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자기 나라 풍습을 지키는 것을 갸륵히 여겨 소상히 알아보니 소녀는 아버지가 충선왕파라 하여 면직당하고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 계시는 충선왕에게 준비한 가야금 가락을 들려주겠다고 하였다. 그 가락은 왕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노래였다. 왕은 크게 감명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뜻을 품고 원나라 무종이 왕위에 오를 때 크게 도와 준 공으로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왕이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오른 뒤에 그 갸륵한 소녀를 불러오려 하였으나 이미 죽은 후였다. 왕은 소녀의 정을 기리는 뜻에서 궁궐 뜰에 많은 봉선화를 심게 하였다 한다. 또 민간에서는 봉선화가 활혈·진통·소종(消腫)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습관성 관절통, 월경통, 임파선염, 사교상(蛇咬傷) 등에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출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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