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 월성산, 철마산, 주미산, 지마곡산

꼴통 도요새 2017. 7. 1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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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월성산, 철마산, 주미산, 지마곡산

 

1. 산행지: 월성산(月城山, 봉수대, 313m), 철마산(345m), 주미산(舟尾山, 381m), 지막곡산(297m)

2. 위치: 충남 공주시 금학동, 옥룡동

3. 일시: 2017년 7월 9일(일)

4. 날씨: 흐리고 후덥지근한 날씨

5. 누구랑: 나 홀로

6. 소요시간: 5시간(더워서 여러 번 쉬었다 감)

7. 난이도: 중급

8. 들머리/ 날머리: 공주여자고등학교앞 주차장(원점회귀)

9. 산행코스: 공주여자고등학교앞 주차장~생태공원삼거리~산불감시초소~월성산(봉수대)~산불감시초소~생태공원삼거리~전망대~철마산~주미산 삼거리(주미산)~지막곡산~뱁세울삼거리~뱁세울마을~공주여자고등학교앞 주차장

10. 특징

주미산

충남 공주시 금학동 에 있는 산으로 일부 산의 이름들은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산체의 형태나 형세를 따져 이름이 지어지는데, 주미산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공주의 지형이 배와 같고, 주미산은 그 배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어 주미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주미산은 높이가 381m이며, 공주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주미산의 동쪽에는 우금치가 있으며, 남쪽에는 철마산이 있다. 주미산의 정상과 북쪽 일부는 운모편암으로 되어 있으나 철마산을 비롯한 남쪽과 동서쪽의 대부분은 반상쇄층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미산의 남쪽 능선을 따라 안골산, 성정산까지 이르며, 북쪽으로는 봉화대를 비롯하여 금강 어귀까지 이른다. 주미산의 정상에는 돌탑이 서 있고, 산 중턱에는 공주 주미사지(舟尾寺址)[충청남도 기념물 제38]가 있다. 능치고개(능고개) 아래로 삼문사라는 암자가 있고, 산 밑에는 사공이 배를 부리는 형상의 사공바위가 있다. 주미산에서 견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학 농민 운동의 주요 전적지였으며, 우금치고개 일원은 우금치 전적지[사적 제387]로 지정되었다.

월성산

충남 공주시 옥룡동 에 있는 산

공주시의 진산(鎭山)으로, 조선시대에 서울과 남부 지역 연락에 중추적 역할을 한 봉수대가 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는 전라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남쪽 노성(魯城) 성산(城山) 봉수를 받아 북쪽의 정안면 고등산 봉수대로 연결되었으며, 삼남 지방에서 서울로 통신하던 중요한 곳이었다. 현재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하여 공주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월성산의 명칭에 대한 특별한 유래는 찾을 수 없으나 현대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2007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된 1:50,000 지형도에서는 봉화대로 표기되어 있다. 월성산은 높이는 312.6m이며, 공주시가지를 중심으로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서 방향으로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운모편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동쪽 사면은 반상쇄층편마상화강암과 혼성편마암이 혼재되어 있으며 사면 말단부는 혼성편마암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천에 의해 오랜 침식을 받은 구릉성 산지이기에 수원골, 사당골, 참새골 등 작은 골짜기들이 많이 있다. 두리봉(망월산), 주미산(舟尾山)[381m]과 함께 공주시를 커다란 배의 형상으로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2002년도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여 도시 숲으로 조성하였고, 공주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서북쪽 산기슭에 백제 때의 절 터인 공주 수원사지(水源寺址)[충청남도 기념물 제36]가 있고, 산의 동쪽과 남쪽에는 여러 고분군이 분포해 있다. 2003년에는 보루나 망루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형태의 백제토성이 발견되었다. 정상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봉화대의 석축과 몇 가지 관련 시설이 남아 있다. 남북 직경 33m, 동서 지름 13m로 남북이 긴 타원형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80m 정도에 이른다. 석축 안은 거의 평탄하나 북측이 약간 높은 편이며, 이곳에 봉화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월성산 동쪽으로 국도 23호선이 지나며, 서쪽으로는 공주대교를 지나 옥룡동을 지나는 도로가 있다.[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우금치 전적지

사적 제387. 면적 51,896. 18941023일부터 25, 118일부터 11일까지 동학농민군과 관군의 격전이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곳. 18941016일경 전봉준과 손병희가 각각 이끌던 남접과 북접의 동학농민군은 논산에서 합류하였다. 같은 달 212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서울 진격로에 있는 충청감영 소재지 공주로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세 길로 나누어 공주를 압박한 동학농민군은 이인역, 봉황산, 효포 등지를 차례로 점령하였으나, 25일에 감행한 웅치 공격은 관군과 일본군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관군측의 병력도 증강되어 경리청 소속 부대 외에 일본군 1개 대대까지 가세하여 2천여 명에 달하였다. 경천점으로 후퇴하였던 동학농민군은 1182대로 나누어 공격을 개시하여 판치와 이인을 점령하였다. 전력을 재정비한 양측은 다음날 효포로부터 웅치와 우금치에 이르는 30리 전선에서 대격돌하였다. 우금치는 전봉준 휘하의 동학농민군 주력 1만여 명이 4050차례에 걸쳐 돌격전을 감행한 고개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저항과 반격으로 이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이후 전라도 쪽으로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우금치 혈전은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대회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에는 1973년에 건립된 동학혁명 위령탑(東學革命 慰靈塔)이 서 있다.

산줄기이야기

금남공주주미단맥

금남정맥이 계룡산 지나 23번국도 널티를 건너서 공주시 봉명리 상봉마을 상봉고개에서 올라간 등고선상350봉인 안골산에서 금남정맥은 동남진하고 서북방향으로 한줄기를 분기한 금남공주단맥이 흐르다 등고선상350m 둔덕인 도면상 철마산(0.8/6.2)에서 서북방향으로 분기하여 舟尾산(390, 0.5)-지막곡산(290)-△194.3m지점-구40번국도 우금고개 터널(110, 2.5/3)-열미산(190)-내병산(150)-40번국도 돌고개(90, 2.3/5.3)-방아달산(△159.6, 1.2/6.5)-논산~천안간고속도로(70, 1.2/7.7)-검상동 용소마을(1.5/9.2)을 지나 검상천이 금강을 만나는 곳(1/10.2)에서 끝나는 약10.2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

 

날씨가 너무 습하여 카메라 작동 불가

아래 생태공원 삼거리까지의 사진은 핸드폰으로

 

트랭글앱에서는

이 곳이 월성상 정상이라고 아려 주는데

능치봉으로 표시기가 부착되어 있다

 

공주 시내와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도록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여기도 지마곡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덥고 가지고 온 물이 부족하여

두리봉 산행은 포기하고 뱁세울 마을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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