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지도

진안 천반산

꼴통 도요새 2017. 8. 30. 15:37

진안 천반산

 

1. 산행지: 천반산(天盤山·646.7m)

2. 위치: 전북 진안군 진안읍, 상전면과 장수군


9. 산행코스:

A. 코스: 천반산자연휴양림-1,2쉼터-능선-천반산(깃대봉)-말바위-전반산성터-죽도방향-송판서굴-뜀바위-뜀바위전망바위-너덜지대-죽도-천을따라 장전마을-천반산휴양림(4시간 20) 

B. 코스: 가막교 - 등산로안내판 - 능선 - 할미굴 - 한림대터 - 575.8봉 성터 - 첨반산정상 - 안부 - 589- 516- 큰느티나무 - 가막교(4시간30분 소요)

10. 특징: 

천반산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과, 땅에는 천반(天盤), 지반(地盤), 인반(人盤)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에 천반에 해당되는 명당이 있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또 산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천반락도 天盤落桃)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일명 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선조 22(1589) 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己丑獄死)의 주인공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하던 한림대(翰林臺), 그가 뛰어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 있고, 군사를 조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들이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종 때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판서(宋判書)가 수도하였다는 송판서굴, 그리고 송판서의 부인이 살았다는 할미굴, 정여립이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조선조 유학자인 유겸안이 겸암록을 통해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반산 서쪽 금강과 구량천이 파() 자처럼 돌아나가는 육지 속의 섬 죽도는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으로 이뤄진 한 폭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천혜의 비경지대인 죽도는 세월 따라 용담댐이 만수위가 되면 절반가량이 수몰된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산줄기이야기

 

백두대간 장수덕유산(서봉)에서 그 줄기가 시작되어 서북쪽으로 흐르는 산줄기로 그 흐름을 따라 가보면 삿갓봉 장수군 계북면 어전리에서 양악리로 넘어가는 19번국도 솔고개재에서 634봉 임평리 내림마을 고개 영구산 670봉 진안군 동향면 쇠룡골마을에서 누룩골마을을 이어주는 719번 지방도로 고갯마루를 넘어 장수군 천천면과 진안군 동향면 면계를 따라 천반산을 올랐다가 대량천과 금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죽도유원지 앞에서 끝나는 약21km 정도의 산줄기를 천반단맥이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