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지도

공주 정안면 국사봉 갈미봉

꼴통 도요새 2017. 11. 2. 19:55
반응형

공주 정안면 국사봉 갈미봉

 

1. 산행지: 국사봉, 갈미봉

2. 위치: 충남 공주시 정안면

 

9. 특징:

국사봉[國師峰]유래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시대 궁안에서 왕자를 정성껏 가르치던 국사 (國師)가 있었다. 국사는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나라의 장래와 궁안의 평온을 위하여 왕자에게 학문과 국정을 다스리는 경험을 가르쳤다. 세살난 어린 왕자를 훈도하기 시작하여 15세 되던 7월 무덥던 어느날, 왕자는 갑자기 열이 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증세가 위급하였다. 궁안이 발칵 뒤집혔다. 전의를 부르고 대왕이 친히 나와 왕자를 간호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마침내 왕자는 긴 여름 해가 넘어가는 시각에 별세하고 말았다. 궁에서 왕자만 의지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던 국사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왕은 국사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국사에게 10년이 넘도록 애써 가르친 왕자가 죽어 궁을 떠나려는 것은 알만하나 그대로 남아서 다음 왕자를 부탁한다고 하였으나 국사는 듣지 않았다. 국사가 왕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왕은 국사의 오른손에 금 한닢을 쥐어 주었다. 궁을 나온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떠돌아 다니다가 지금의 국사봉에 와 앉아서 먼 하늘의 구름을 해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다가 앞의 땅바닥을 백일 동안 파고서는 금 한 닢을 넣고 묻었다. 국사는 아무말 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더니 그 곳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어느 날 아랫마을 나뭇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왔다가 국사를 만났다. 국사는 나뭇꾼에게 여기에 와서 혼자서 산짐승과 친구하며 산지가 30년이 넘었으며 왕에게서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어 놓았는데 지금도 크고 있다는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후부터 그 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 파헤쳤으나 찾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금광을 개설하여 많은 금을 캤다. (출처 : 공주시 홈페이지)

산줄기이야기

 

무성지맥(武盛枝脈)

북정맥이 차령고개를 넘어 곡두고개와 갈개고개사이의 646m봉에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570m봉에서 서남방향으로 법화산,철승산줄기를 떨구고 629번도로인 문안달고개를 지나 국사봉(590.6m)어깨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604번도로인 기름재를 지나 갈미봉(515.2m)에서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홍길동성이 있는 무성산(613.6m)으로 이어간다. 무성산에서 영천고개를 지나 또다른 갈미봉(309.2m)에 이르기 바로전에 서남으로 약산(277.9m)줄기를 떨구고 갈미봉(309.2m)에서 계속 남동진하여 대전 -당진 고속도로와 공주-서천 고속도로를 지나채죽산(170m),부엉산을 일구고 금강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3km되는 산줄기를 무성지맥이라 부른다.무성지맥은 신산경표엔 그 이름이 없으나 이 산줄기 동쪽에 있는 전월지맥이 30.2km에 최고봉이 전월산으로 260m일 정도로 낮은 산들이고, 서쪽에 있는 칠갑지맥도 길이 30.5km에 최고봉이 칠갑산으로 560m에 4~500m산들로 이루어졌는데, 무성지맥은 길이도 30.3m에 높이도 분기점( 646.2m)과 무성산( 613.6m)등 600m가 넘는봉이 4개에다 . 국사봉(590.6m),갈미봉(515.2m),580m봉,570m봉,등 500m가 넘는 산이 셀 수 없이 많고 산세도 칠갑지맥이나 전월지맥에 비할바가 아닌데, 그 흔한 지맥이름을 얻질 못했다.분기봉을 제하곤 높이도 제일높고 대표적인 산인 무성산에서 이름을 빌려와 무성지맥이라 칭한다.

[출처: 산경표를 따라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