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 천마산, 두리봉, 천호산, 함박봉, 깃대봉, 국사봉

꼴통 도요새 2018. 11. 25. 16:25

논산 천마산, 두리봉, 천호산, 함박봉, 깃대봉, 국사봉

 

1. 산행지: 천마산(287.2m), 두리봉(278m), 천호산(天護山 371.6m), 함박봉(404.4m) , 깃대봉(394.1m), 국사봉(332.6m)

2. 위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3. 일시: 2018년 11월 23일(금)

4. 날씨: 맑고 시원하고 옅은 박무

5. 누구랑: 나 홀로

6. 소요시간: 7시간 39분[이동거리: 19.79km]

7. 들머리/ 날머리: 양정고개(계룡지구대)/ 연산면 버스터미널 

8. 산행코스: 양정고개(계룡지구대)→248봉→천마정→천마산→두리봉→개태사갈림길→천호산대목재→팔각정(322)→황령재→함박봉→깃대봉(삼거리, 금남정맥 이탈)→국사봉→삼거리(한민대 갈림길)→신양리→연산면 버스터미널

9. 특징: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천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연산)에 이르러 후백제 군사와 전투를 벌였다. 양쪽 군사들은 대낮이면 격전을 벌이고 밤엔 피로에 지쳐 전투를 멈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이 꿈을 꾸었다. 자신이 큰 밥솥을 머리에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음 날 왕건은 꿈 해몽을 잘하는 이를 수소문했다. 그랬더니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인리 제밭[祭田]에 꿈 해몽을 잘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였다. 왕건은 그 여인을 불러 꿈을 말하고 해몽하도록 하였다. 여인은 귀인이 머리에 솥을 썼으니 왕관을 쓴 것이나 다름없고, 물속으로 들어간 것은 용궁으로 들어간 것이니 백성을 다스리는 상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건은 이에 힘을 얻어 도선국사로 하여금 부처에게 적군을 물리쳐 줄 것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병사들이 나타나 후백제군을 물리쳤다. 이로 인해 왕건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왕건은 전쟁의 승리가 하늘의 보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병사가 나타났던 산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 지었다. 또한 승리의 공훈을 부처의 가호로 돌리고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세워 손수 기원하는 글을 지어 부처에게 바쳤다. 아울러 태조의 진영을 모신 전각을 짓고 국립 대사찰로 부르게 하였다. 개태사의 전성기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화엄 법회를 가지는 등 승려 양성 도장의 역할을 하였는데, 대각국사의 장경불사(藏經佛事)도 이곳을 근거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때 아닌 홍수로 개태사는 크게 훼손되어 옛날의 웅장했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천호산의 주요 모티프는 천신의 조력후삼국의 통일이다. 천신의 도움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후삼국을 통일했다는 후삼국통일담이며, 하늘이 지원한 병사가 나타난 산을 천호산이라 이름 지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개태사의 건립 배경이 드러난 사찰연기담이기도 하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유래

※황룡재(벌곡)

충청남도 논산시의 연산면 연산리 및 신암리로부터 벌곡면 한삼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남쪽으로 함박봉이 있고 북쪽으로 대목재가 위치한다. 현재 20번 국도가 통과하고 정상부 부근에는 삼천리 교육원이 위치한다. 황룡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광산김씨 한 사람이 연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승 한 분이 찾아와서 '당신의 어머니는 모월 모시에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하고는 어디로인가 가 버렸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모월 모시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날따라 그 스님이 나타나서 대문 밖에서 염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묘 자리를 잡아줄 것을 청하자 스님은 '범바위골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 내가 황룡재를 넘어 가거든 땅을 파시오'하고는 바삐 떠나갔다. 그러나 인부들은 장례를 서둘러야 한다고 땅을 파기 시작하니 왕벌이 나와 스님이 간곳으로 날아가 그를 쏘았고, 스님은 황룡재를 넘기 전에 죽고 말았다. 그 후 문중에서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미륵불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 송불암 미륵불이다."라고 전한다. 

※대목재(大木嶺/280m)

충청남도 논산시의 연산면 연산리로부터 벌곡면 한삼천리 대목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남쪽으로 황룡재와 함박봉이 있고 북쪽으로 천호봉이 위치한다. 대목 마을의 이름으로부터 지명이 유래한다. 대목령(大木嶺)이라고도 부른다. 대목 마을은 한삼천리의 서북쪽 산 속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큰 나무가 많이 있어서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큰 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목골 또는 대목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천호산(天護山/311m)

충청남도 논산시의 연산면 동쪽에 위치하는 산이다. 서쪽산록에 개태사가 소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연산)"황산(黃山)은 일명 천호산(天護山)이라고도 하는데 현 동쪽 5리 거리에 있다. 신라의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니 백제의 장군 계백이 황산 벌판에서 신라의 군사를 방어할 적에, 3개의 병영을 설치하고 네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끝내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지(연산)"원래 황산이라 불렀던 것을 고려 태조가 천호산으로 개칭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여지도서(연산)'천호산'이라는 지명으로 나타나며, "산 안에 개태사(開泰寺)가 있다.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건물이 있었다. 절은 지금 허물어져 없어지고 다만 옛터만 남아 있다. 고려 태조가 백제에 승리하고 친히 원문(願文)을 짓고 썼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지켜주심에 보답하고 산신령님께서 도와주심을 갚으려고 특별히 담당 관리에 명령하여 불당을 창건하고는, 이에 산의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의 이름을 개태(開泰)라 합니다.'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같은 자료에 "천호산에 고운사(孤雲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되어 있고, 또한, "천호산 안에 있던 고운사가 대둔산으로 옮겨 신고운사(新孤雲寺)가 되었다. 그 웅장하고 화려하며 넉넉하고 성대한 모습은 충청도에서 으뜸이었다."라고 되어 있다 

※천마산(계룡/287m)

충남 계룡시 금암동에 있다. 동쪽으로는 계룡시 금암동 신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또한 서편 기슭으로는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개태사가 자리하고 있다. 천마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보수 공사 중에 내부목재의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것이 발견되어 철거하고 신축하려고 하고 있으나 정자의 자리가 사유지로 밝혀지고 지주가 허락을 하지 않아 재건축이 중지 된 상태이다.

※양정고개(羊丁峙/1번국도/100m)

대동여지도의 羊丁峙. 정씨(丁氏) ()이 왕관을 놓고 싸울 고개라 해서 양정고개(羊丁)가 되었단다. 1번국도와 호남선 철길이 지나는 교통상 길목이다.

 

우리산줄기이야기

금남정맥(錦南正脈)

금강의 남쪽 울타리. 금남호남정맥의 끝인 주화산(珠華山 560m)에서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올라가며 계룡산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틀어 부여의 부소산 아래 백마강 조룡대에서 마감한다. 금강의 남쪽과 서쪽으로 만항강, 동진강의 분수령이 되어 자연히 군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지방과 내륙지방을 양분하고 있다.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 산은 주화산을 시작으로 연석산(925m), 운장산(1,125.9m),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 등 도상거리 128km의 산줄기이다

 

산행후기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어서 베낭을 챙겨 논산으로 떠난다. 이 코스는 원점회귀가 안되어 오래동안 고민하여 왔는데, 어느 분의 산행기를 보니까, 연산면에서 양정까지 오는 고속버스가 자주 있을 뿐만아니라, 요금도 \1,300원이라는 내용을 보고 천호산으로 달려 갔다. 아침 일찍 계룡지구대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순경아저씨한데 차 좀 잘봐달라고 부탁드리고 천마산으로 진입하였는데, 이 코스는 등산로, 이정표, 등산 안내도...등등 모든 것이 너무나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천마산 정상 전 천마정에서는 멀리 계룡산과 향적산...등등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었다. 두리봉은 내가 가진 지도에는 없지만, 정상에 두리봉이라는 작은 철판의 정상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지도에는 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후 천호산, 함박봉, 깃대봉, 국사봉...등 전 구간이 등산로와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마지막 국사봉 정상에서 신양리로 가는 갈림길만이 등산로가 흐리고 가시잡목으로 인하여 더 이상 능선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계기가 되었다. 산행 후 잠깐이나마 지나오는 길에 역사가 깃던 개태사까지 탐방하고 오려고 하였으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지나쳐 온 것이 조금 아쉬웠다.

 

아래 영상은 천마정에서 찍은 동영상

 

아래 영상은 함박봉에서 찍은 황산벌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