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지도

영덕 대소산, 상대산

꼴통 도요새 2020. 6. 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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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대소산, 상대산

1. 산행지: 대소산(봉화산 烽火山, 286m), 작은봉화산(277m), 망월봉(226m), 황성개비산(162m), 상대산(上臺山. 觀魚臺, 183.7m)

2. 위치; 경북 영덕군 영해면 사진리 산1번지(대소산해파랑길입구)

 

6. 이동거리 및 소요시간: 15.6km/ 5시간 10분

 

8. 산행코스; 대소산해파랑길입구→대소산이정표→육시설→이정표갈림길→대소산)→불루로드쉼터(팔각정)→작은봉화산→체육시설사거리→망월봉→사거리→182봉→고개안부(임도)→황성개비산→관어대삼거리(목은기념관.괴시리고댁 다며옴)→묘지전망대→망일봉→정자→목은기념관→괴시리고택(해파랑길 이탈)→호지마을→산길진입→남씨 묘→104봉(묘)→묘지전망대→다시 관어대삼거리→전망대삼거리→데크전망대 빽→다시 전망대삼거리→148.6봉→도로합류→대진교회 앞 갈림길→이정표사거리→전망대→상대산→갈림길(이정표)→임도합류→대진해수욕장입구

9. 특징: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에는 에메랄드 빛 청정 해안을 품은 대소산(286m)이 있다. 영덕군 축산면과 영해면을 잇는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동해를 따라 능선이 이어진 아름다운 산이다. 정상에 봉수대(경북 기념물 제37호)가 있어 봉화산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영덕 축산포 방면의 상황을 서울 남산까지 전했다고 한다. 봉수대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축산항의 어촌마을과 방파제가 내려다보인다. 축산항으로 부는 서풍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단다. 이 산을 따라가면 영해면의 상대산(183.7m)으로 이어진다. 상대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이 속한 동해가 펼쳐진다. 고려 말의 학자인 목은 이색이 '바다의 고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상대산 서쪽 절벽을 관어대라 불렀다고 한다. 이색을 비롯해 조선 초 성리학자 김종직과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인 원천석이 '관어대'라는 제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목은이색 선생

고려 말 성리학자로 충절이 높았던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과 함께 고려 삼은이라 불린 인물이다. 20세에 아버지를 따라 원나라에서 유학했으며 삼은이 모여 원나라에서 들여온 성리학을 연구해 기초를 확립했다. 고려가 망하자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후진을 육성했다. 목은이색기념관에는 목은 선생의 자료가 소장돼 있으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기념관 옆에 생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았고 생가와 기념관 사이에 서당으로 사용됐던 옆집이 남아 있다. 목은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향을 떠났으나 평생 고향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목은 이색 산책로가 시작된다.

괴시리전통마을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무려 400년 가까이 남씨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마을은 그 이전부터 형성돼 있었다. 고려 말 함창 김씨가 처음 입주하였고 그 후 수안 김씨, 영해 신씨 등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1630년 영양 남씨가 입주하면서 타 성들은 다른 곳으로 점차 이주하여 남씨의 집성촌으로 탈바꿈하였다. 이 마을은 고려 말 충신인 목은 이색의 고향으로 ‘괴시’라는 마을 이름은 그가 중국에 갔을 때 보았던 ‘괴시’라는 마을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이 마을에서는 목은을 기리기 위해 격년마다 10월 말에 추모제를 연다. 마을 뒤편 산길로 200m쯤 올라가면 목은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괴시마을에는 300년 넘은 괴시파종택을 비롯해 해촌고택, 물소와 고택 등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택만 5채가 있다. 그 외에도 200여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집들이 15채 이상 된다. 마을이 하나의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주민이 살고 있는 집들이어서 양해를 구한다면 기꺼이 둘러보는 것을 허락해준다.

영덕대소산봉수대(盈德大所山烽燧臺)

경상북도 기념물 제37호. 대소산은 해발 282m의 영덕 동남쪽 해안의 주봉인데, 산의 정상부에 지형을 이용하여 직경 약 20m 되는 넓이의 둘레에 대석을 쌓아 올렸으며, 그 안에 원추 모양의 직경 11m, 높이 2.5m의 봉돈(烽墩)을 쌓았다. 봉수대 중앙부는 역시 석축으로 된 연통(굴뚝)이 구축되어 있다. 연통의 외형은 단경 10m, 장경 12m에 높이가 약 3m되는 원통형이며, 구조는 대소형의 할석을 이용하여 두께 1.5m 되는 석축벽으로 둘러 있다. 현재 영해읍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3㎞, 축산항(丑山港)에서 서북쪽으로 약 1㎞, 해안으로부터도 약 1㎞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대소산 봉수대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남쪽으로는 별반봉수대(別畔 烽燧臺), 북으로는 평해(平海)의 후리산봉수대(厚里山烽燧臺), 서로는 광산 봉수대(廣山烽燧臺)를 거쳐 진보(眞寶)의 남각산 봉수대(南角山烽燧臺)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이들 여러 봉수대 가운데 대소산 봉수대가 가장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이 지역의 조선시대 통신수단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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