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및 전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世宗大王子胎室)

꼴통 도요새 2023. 2. 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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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세종대왕자태실 (世宗大王子胎室)

1.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39-18.

[문화재 지정 사적 제444호(2003.03.06 지정)]

2. 일시: 2023년 2월 12일(일)

3. 날씨: 맑고 따스하고

4. 누구랑: 천안 친구랑

5.특징:

세종대왕자태실

조선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전열은 11기, 후열은 8기로 되어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비석이 닳아 판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으며,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평원대군, 영응대군, 의창군 등의 태실비이다. 그러나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 정비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 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가까이엔 이곳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가 있다. * 태실과 지석의 구조에 대하여 *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을 말한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민간에서는 땅에 묻는 경우도 있었으나 많은 경우 출산 후 마당을 깨끗이 한 뒤 왕겨에 태를 묻어 몽긋몽긋하에 태운 뒤에 재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이때 이를 주관하는 관상감에서 길지로 선정된 명산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밟아 묻었는데, 이 의식과 절차를 거쳐 완성한 시설을 태실이라 불렀다. 또한 태봉은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할 경우에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가봉 비를 세운 것으로 임금의 태실을 말한다. 19기의 태실은 화강암으로 깎은 조선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는 형태이다. 태호 속에는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두었다.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 태실 수호사찰 선석사 *-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조선초기 세종대왕 수호사찰-소장 문화재: 성주선석사영산회괘불탱(보물) / 선석사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태장전: 현대인의 아기 태를 봉안하는 시설이 있으며, 태 봉안인의 무병/장수를 기도하는 도량 [문화재 정보] * 조성연대: 1438년(세종 20)~1442(세종 24) * 재질: 화강암 * 크기: 면적 5,950㎡ * 태실수: 19기-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장자 문종을 제외한 17왕자 태실 18기-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이 태어났을 떄 조성한 태실 1기 ※ 단종의 태실은 세자로 책봉된 후 성주 법림산에 새롭게 이전 조성함 * 문화재적 가치-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의 태실 문화유산-조선초기 태실문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문화유산-태실 조성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 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이다.[출처/ 다음백과]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인하는 곳을 말한다. 태는 예전부터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되었기 때문에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곳 성주에는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되어 있다. 이 장소는 원래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묘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전해진다. 총 19기가 있으며 그중에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5기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이다. 세종대왕의 왕자 태실의 배치도는 입구 줄에서 (수양)진양대군-(안평대군)-임영대군-관평대군-(금성대군)-평원대군-영흥대군-세손(단종)-홍유정(화의군)-계양군-의장군-(한남군)-밀성군-수준군-익현군-(양풍군)---( )로 표기한 곳이 단종을 밀어내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자들 가운데서 반대한 사람이다. 가서보게 되면 없는 곳이 5군데 정도 된다. 안평대군,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양풍군 이렇게 다섯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태를 봉안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의 김유신 장태(藏胎)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 태봉안양식(胎奉安樣式)이 성립된 후 조선시대까지 그 맥락이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태봉에 태를 봉안하기 위한 석물의 구성은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졌던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태실은 왕과 태자에 대한 태실만을 조성하던 고려시대의 태 봉안 양식이 변화되어 왕과 왕비, 그리고 그 자녀의 태실을 조성하기 시작한 조선시대 최초의 왕자 태실로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群集)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출처/ 네이버]

우리산줄기이야기

영암지맥

금오지맥의 능밭재 북쪽 400m 지점인 550봉에서 분기하여 영암산, 선석산, 각산을 지나 백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까지 35.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백천의 길이는 32km이다.

후기

오늘은 경북 성주에 위치한 세종대왕자 태실을 탐방하기로 하면서 생명문화공원을 찾았다. 이 곳을 탐방하면서 인터넷(다음 지도)에 올라 있는 검암산이라는 봉우리와 함께 탐방할까? 하였는데, 검암산이라는 봉우리가 실제 이름이 있는 봉우리가 아닌 것 같아 탐방하지 않았지만, 세종대왕자태실 입구에 있는 선석산 등산안내도를 보며 석석산을 원점회귀 형태로 탐방하고 세종대왕자태실, 생명문화공원, 태실문화관 그리고 선석사를 차례로 탐방하면 멋진 하루 코스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필자는 오래 전 영암산, 석석산, 비봉산을 탐방하였기에 이번에는 선석산을 제외한 나머지 세종대왕자태실과 생명공원 그리고 선석사만을 탐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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