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 동강면 몽송봉, 옥룡산, 비룡산, 느러지전망대

꼴통 도요새 2025. 5. 1. 04:43

나주 동강면 몽송봉, 옥룡산, 비룡산, 느러지전망대

1. 산행지: 몽송봉(88.5m), 옥룡산(132.9m), 비룡산(101.8m), 느러지 전망대

2. 위치: 전남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3. 일시: 2025년 4월 26일(토)

4. 날씨: 맑고 따스하고 옅은 박무

5. 누구랑: 강일형님과

6. 탐방거리 및 소요시간: 7.8km/ 3시간 20분

7. 들머리/ 날머리: 느러지전망대 주차장[출발/ 도착]

8. 탐방코스: 느러지 전망대→몽승산 정상→옥룡지맥 길→임도 사거리→송전철탑→옥룡산 정상→송전철탑→화정 버스정류장→비룡사 입구→비룡산 정상→도로고개→봉추 버스종점→영산강 자전거길→임도삼거리→느러지 전망대

9. 특징:

느러지전망대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느러지 전망대

표해록/ 최부(崔溥)

조선 선비가 기록한 명나라 여정, 표류문학의 白眉 되다

난징에서 황제의 도읍에 이르기까지 산천과 풍토, 습속을 갖추어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우리나라 사람이 비록 중국을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이로써 알 수 있다." 5만 자 분량의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세계 3대 중국 견문록 '표해록'. 금남 최부가 쓴 이 책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종실록' 기록이다.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남도, 중국 인연자원 시리즈 두 번째로 나주 출신 최부의 표류기 '표해록'를 싣는다. 1487년 9월 전라도 나주 출신의 한 관리가 제주도에 파견됐다. 조선 성종과 연산조 문신인 최부(崔溥, 1454~1504)이다. 직함은 도망친 노비나 범죄자들을 색출하여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이다. 부임 후 두 달이 지난 이듬해 1월, 부친의 별세 소식에 향리·군관·관노 등 일행 42명과 함께 나주 귀향길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폭풍이 올 것이라며 만류했으나 끝내 별도포(화북포)에서 배에 올라 탔다. 뱃길에 나선 후 추자도 인근에 이르자 큰 풍랑이 덮쳐 왔다. 표류가 시작된 것이다. 폭풍우와 기갈, 선원들과의 갈등, 해적 등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견뎌내며, 표류 14일 만인 1월 16일 중국 절강성 태주부 임해현의 우두외양에 표착했다. 다행히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43명 전원이 생존했다. 하지만 다시 시련이 닥쳤다. 중국 관리들은 이들을 왜구로 여겨 죽이려 했던 것이다. 최부는 필담을 통해 유학에 조예가 깊은 조선 선비임을 입증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중국 정부가 말과 수레를 제공했고, 최부 일행은 항저우, 경항대운하 등 조운로를 따라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는데, 최부는 상중이기 때문에 군신의 예 이전에 부자의 도리를 주장하며 비록 황제 앞이라 할지라도 상복을 벗을 수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명나라 예부에서는 신하의 예를 갖춰 관복입기를 끝내 요구해 논쟁끝에 입조때만 예복을 입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명 황제 앞에서도 굽힘이 없는 조선 사대부의 기개를 드러낸 것이다. 이후 북경을 떠나 압록강에 도착한 것이 6월 4일,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만 5개월 만에 밟는 고국 땅이었다.----생략!

우리산줄기이야기

옥룡지맥

땅끝기맥에서 분기한 백룡지맥이 다시 백룡지맥에서 분기하여 조리봉, 오봉산, 태산, 두류산, 고문산, 옥룡산을 지나며 영산강 몽탄나루터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2km인 산줄기이다.

산행후기

어제와 오늘 강일 형님 덕분에 여기저기 전라남북도 지역의 짜투리로 남아 있는 미답지 산들 탐방하면서 주변 관광지 및 볼거리들과 연계하여 산행하였다, 오늘은 느러지전망대라는 유명한 관광지와 함께 멋진 산행을 하였다.

1) 몽승산: 내 지도에는 무명봉이었지만, 정상에는 일부 개인의 표시기가 걸려 있었고 등산로 상태는 느러지 전망대에서 정상 올라가기 약 20m정도는 길이 없으나 잡목이 없어 오를만하고 이후 능선에 오르면 하산 시까지 지맥길이 연결되는데 선명한 등산로 인듯하다가 마지막 날머리에서 심한 가시잡목 구간이었다.

2) 옥룡산: 내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으며, 등산로 상태는 묘지에서 송전철탑까지 길이 없고, 가시잡목이 심하며 송전철탑 이후 길이 좋아져 하산 시 까지 좋은 길이 연결되었다, 정상에는 낡은 의자 및 체육시설이 있으며, 오래 전 만들어 놓은 등산로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은 듯 보였다.

3) 비룡산: 내 지도에는 무명 봉이었으나, 현지에서는 비룡산이라 부르며 정상에 정자가 있었고 등산로는 전체가 임도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