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지도

금산 천비산, 안산, 해철이산, 명막산, 조중봉

꼴통 도요새 2019. 10. 2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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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천비산, 안산, 해철이산, 명막산, 조중봉

1. 산행지: 천비산(465.6m), 안산(264.1m), 해철이산(271.7m), 명막산(331.8m), 조중봉(333.5m)

2. 위치: 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6. 산행거리: 18.5km[시간: 5시간 26]

7. 들머리/ 날머리: 복수면 지량리 지량3교[출발/ 도착]

8. 산행코스: 지량3교→천비산→안산→구만리→구만1교(새고개)→초당골→선골고개(해철이산)→명막산→명막재→조중봉→지량리→지량3교

9. 특징:

대전

대전의 남부지역은 식장산·만인산·안평산·장군봉으로 연결되는 산지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식장산·계족산으로 연결되는 산지가, 서쪽은 대둔산에서 우산봉으로 연결되는 계룡산지가 각각 대전의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을 이루면서 거의 일직선상으로 달리고 있다. 계룡산지, 계족산지, 식장산지, 만인산지 등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전형적인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갑천·유등천·대전천의 연변에 자리하고 있다. 갑천은 대둔산과 계룡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들을 합쳐서 대전분지의 서반부를 관류하는데, 대전분지의 동반부를 관류하는 대전천과 유등천을 회덕 부근에서 합하여 북쪽으로 흘러 신탄진 부근에서 금강 본류에 유입한다. 따라서 대전은 바로 이들 3개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분지이다. 대전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와 갑천·유등천·대전천 연변의 충적지 사이에 있는 구릉지(산록완사면), 그리고 이들 3개 하천 연변의 충적지는 일찍부터 논·밭·주거지로 이용되어 왔다. 동쪽에는 동구 세천동으로부터 북으로 향하여 고봉산(304.3m), 계족산(398.7m), 개머리산(365m), 함각산(314.5m), 연봉, 백골산, 꾀꼬리봉, 꽃봉(285.2m), 약해산 등이 충북의 옥천군·보은군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서쪽은 우산봉(573.8m), 갑하산(469m), 도덕봉(534m), 빈계산(415m), 시루봉(435m), 조개봉(342m)등 계룡산계가 논산군의 두마면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산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안산이 있다. 이 곳 안산은 해발 264m의 낮은 산이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는 별 다른 표지는 없고 이정표에 매달린 코팅지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비산(天庇山)

충청남도 금산군의 복수면 지량리 · 신대리와 대전광역시 중구 정생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466m).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천비산은 군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산 북쪽으로 중암사(中唵寺)와 미륵사(彌勒寺)가 있고 동남쪽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생가 터가 있다. 천비산의 유래는 찾을 수가 없으나, 한자를 풀어보면 하늘을 덮은 산이라 할 수 있다. 

권이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공주 출신. 예조좌랑 권득기(權得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윤(右尹) 권시(權諰), 아버지는 현감 권유(權惟), 어머니는 산림(山林) 송시열(宋時烈)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3(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율봉역(栗峰驛김천역(金泉驛)의 찰방을 거쳐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1706년에는 정언(正言)을 역임했다. 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수찬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었다. 이어서 1698년 설서, 이듬해 지평을 거쳐 1701년에 사서가 되었고, 부수찬을 거쳐 1710년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당론으로 인해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했으나, 1721(경종 1) 좌의정 이광좌(李光佐)의 천거로 승지에 올랐으며, 이듬해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8(영조 4)에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해 호조판서가 되어 궁중에서 민간의 전답을 매입하지 말 것과 공물을 정액 이상으로 거두지 말 것 등을 건의했다. 1731년 공조판서가 되어 산릉제조(山陵提調)를 겸임하면서 천릉(遷陵: 능을 옮김)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 뒤 1733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해, 국경을 넘어와 위원군(渭原郡)에 숨어 살던 청나라 사람들의 체포를 건의하는 장계를 올렸다.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무실(務實) 강직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있다. 시호는 공민(恭敏)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원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을사조약 후 일제(日帝)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新民會)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221일 옥사(獄死)하였다.[출처/ 인터넷]

우리산줄기이야기

금남서대식장보문천비단맥

금남서대지맥이 금남정맥 인대산 동남측 약1.3km 지점에서 북서방향으로 분기하여 흐르다 금성산에서 북서쪽으로 금남서대식장분맥을 분기하여 흐르다가 만인산에서 북서방향으로 보문산으로 가는 금남서대식장보문단맥을 분기하여 흐르다가 안산(410)서북측 약0.5km지점인 등고선상410봉에서 금남서대식장보문단맥은 북동쪽으로 흐르고 한줄기를 동쪽으로 분기하여 대전시 중구와 금산군 복수면의 경계를 따라 느네미재(늘남이재, 말구리재) 도로(250, 1.3)-섬바우(430)-於南(464.5, 1.4/2.7)-도리뫼고개(230, 1/3.7)-天庇(465.4, 1.6/5.3)-(264.1, 3/8.3)을 지나 중구 목달리 장생천이 유등천을 만나는 곳(70, 1.7/10)에서 끝나는 약10km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다음카페 우리산줄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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