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영광 금산, 감투봉, 군유산, 상치봉, 월암산, 돌매산

꼴통 도요새 2019. 2. 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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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영광 금산, 감투봉, 군유산, 상치봉, 월암산, 돌매산

 

1. 산행지: 금산(307.8m), 감투봉(322m), 군유산(405.5m), 상치봉(깃대봉, 368m), 월암산(337m), 돌매산(193m)

2. 위치 : 전남 함평군 신광면, 영광군 군남면

3. 일시: 2019년 2월 23일(토)

4. 날씨: 흐리고 옅은 박무

5. 누구랑: 나 홀로

6. 소요시간: 8시간 14분[이동거리/ 15.22km]

7. 들머리/ 날머리: 용암리 버스정류장[원점회귀]

8. 산행코스: 용암리⟶무명묘금산칡재가기 전 저수지 방향⟶임도감투봉⟶감투봉 삼거리→군유산왕복⟶이앙당재(상론령)→연흥사상치봉(정자)⟶월암산 삼거리→월암산 왕복→임도→정자→돌매산⟶조양마을→용암리

9. 특징:
함평군[咸平郡]
행정구역: 1개읍 8개면 272개리 
삼국시대에 백제의 굴내현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함풍현으로 개칭, 무안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초인 1409년(태종 9) 모평현과 합하여 함평현으로 개칭했다. 함평의 별호는 기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나주부 함평군, 1896년에 전라남도 함평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비입지였던 다경면·해제면을 무안으로 이관하고, 나주의 두입지였던 대화면·장본면·오산면·여황면·적량면을 편입하여 면적이 넓어졌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손불면·신광면·평릉면·해보면·식지면은 그대로, 기성면(일부)·영풍면이 함평면으로, 기성면(일부)·대동면이 대동면으로, 갈동면·대야면·월악면이 월야면으로, 신노면·엄다면이 엄다면으로, 진례면·좌촌면·금동면이 학교면으로 통합되었다. 1932년에 식지면·평릉면이 통합되어 나산면이 되었고, 1963년에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자연환경

저산성 산지인 산맥의 지맥이 군을 지나고 있다. 불갑산(佛甲山 : 516m)·모악산(母岳山: 354m)·군유산(403m)·월암산(月巖山 : 338m) 등의 산들이 연이어 영광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북부가 비교적 높고, 그밖의 지역은 대부분 구릉성 산지로 비교적 평탄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천주봉(天柱峰: 376m)·고산봉(359m) 등이, 서쪽에는 기산봉(箕山峰: 147m)·두류봉(頭流峰: 158m)·노승산(老僧山: 183m) 등이 솟아 있다. 동쪽에는 월악산(月岳山: 165m)·국사봉(282m)·철성산(鐵城山: 226m)·옥마산(玉馬山: 120m), 남서부에는 감방산(258m)·보평산(寶平山: 225m) 등 200m 내외의 구릉지들이 있다. 하천은 나주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군의 남부를 흐르고 있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여러 지류들이 구릉성 산지 사이를 흐르고 있다. 해보천·나산천(羅山川)·고막천으로 이어지는 하천이 군의 동쪽을 남류하여 영산강에 합쳐지고, 군의 서북부에 있는 대동저수지를 시점으로 흐르는 함평천은 군의 중앙을 지나 엄다면에서 무안천과 함께 영산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비옥한 평야들이 펼쳐져 있는데, 동부에는 월야천 유역의 월야평야가 있으며, 함평천 유역에는 함평평야·학교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함평만과 접해 있으며, 함평만의 해안선은 간척사업으로 단조롭게 변모되었다. 함평읍의 함평간척지, 손불면의 월천간척지(삼양사간척지) 등이 산재해 있다.

왕이 머물고 갔다는 군유산(君遊山)의 유래

이산은 신광면 송사리와 손불면 북성리에 위치한 해발 403m로 군내의 산중 가장 높고 영광군과 경계를 이루며, 기암괴석이 없고 짜임새도 모나지 않은 군자의 위풍으로 각종 약초와 울창한 비자, 고로쇠, 동백나무 등은 물론 야생녹차가 두루 자생하고 있다. 특히, 이산은 옛 문헌에 "군니산(君尼山)", 서상산(瑞祥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서상산이 지금까지 밝혀진 이름으로 가장 오래된 이름이며, 왕건이 고려국의 개국 전에 호남정벌하기 위해 3천명의 기마병을 조련하였고, 후에 왕이 되었기에 왕이 머물고 갔다하여 군유산(君遊山), 후에 고려의 공민왕이 3일간 노닐다 갔다하여 "군유산(君游山)"이라 하며, 김해김씨들은 신라흥무왕(김유신)과 관련이 있다고 함에 따라 임금과 관련이 있음은 사실인 듯 하다. 이산 아래로는 삼천명의 군사가 주둔했다는 삼천동이란 마을과 말에게 먹이를 뜯기던 곳이라는 마구청, 산중턱에 군유사((君游寺)라는 고려조의 절터가 있다. 군유사, 서상사 등의 절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고 현재까지 건재한 사찰로는 군남면 용암리의 연흥사가 유일하다. 구전설화에 의하면 마라난타 세존이 법성포가 아닌 손불면과 염산면 사이로 들어와 연흥사라는 절을 짓고 훗날 불갑사를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함평 손불면은 부처의 손자라는 뜻으로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에서 한반도의 패권을 노리는 전투가 벌어졌다. 하루는 칠성평야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간에 전투가 있었는데 싸움에서 진 한 쪽 장군이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고 자결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은 괴주(槐州), 괴양(槐壤)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초기부터 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군유산은 바위지대를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세가 부드러운 육산으로 산세가 군자의 위풍을 닮았다 하여 군자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서해바다의 파노라마와 주홍빛으로 물드는 낙조가 장관으로 동쪽 신광면 들판지대 너머로 불갑산과 모악산이 남으로는 함평 방면이 막힘없이 시야에 들어온다.[출처/ 인터넷]

우리산줄기이야기

영산기맥

백두대간이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고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분기되어 호남정맥이 남으로남으로 달리다가 내장산에서 또 한줄기를 내어 전라남도와 북도의 경계선을 그리며 서진하다가 고창 방장산 벽오봉에서 남진하여 서해안을 따라 줄기차게 남으로 흐르다가 목포 유달산에서 삼학도를 바라보며 끝이나는 약160km를 이름하며 영산강의 북쪽 서쪽 울타리를 이룬다. 주요산과 고개로는 장성새재, 입암산, 갓바위, 노령, 방장산, 양고살재, 솔재, 문수산, 서우치, 살우치, 구황산, 무금치(암치재), 고산, 가래재, 고성산, 깃재, 월랑산, 몰치재, 태청산, 마치, 장암산, 연정재, 뱃재, 선치(밀재), 불갑산, 구수재, 모악산, 노은재, 지경고개, 구봉산, 군유산, 해인마을, 노승산, 건김재, 발봉산, 신광터널, 감방산, 병산, 남산, 연증산어깨, 대치령, 마협봉, 구리재, 구리봉,승달산, 국사봉, 대봉산, 지적산, 대박산, 양을산, 유달산 아리랑고개 등이 있다.

영산상치단맥

영산기맥 군유산에서 서북방향으로 분기하여 상치봉(357.1, 1.7)-배재-바저재 도로(4.8/6.5)-808번지방도로 돌팍재(1.4/7.9)-설매산(200.1, 1.5/9.4)-상론령-하느재-도로(1.6/11)-불가재 임도-봉덕산(295.6, 3.5/14.5)-16번군도 삼거리(1/15.5)-날구봉(117.1)-영광군 송암리 77번국도 삼거리(3.4/18.9)-금호산(123.7, 1.3/20.2)-77번국도 창우마을 삼거리(1.6/21.8)-뒷산(78.5)을 지나 서해바닷가(0.5/22.3)에서 끝나는 약22.3km의 신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

산행후기

어제 저녁 정읍 두승산 탐방을 마치고 오늘은 전남 영광의 군유산 부근을 산들을 탐방하기로 하고 용암리를 찾았다.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쉽게 원점회귀하기 위하여 들머리를 용암리로 잡았다. 처음 들머리부터 금산까지는 길이 전혀 없었으며, 금산 정상에는 산줄기 하시는 분들의 표시기가 몇개 걸려 있었으며, 그 분들이 다닌 길이 흐릿하게 나 있었다. 금산 정상에서 칡재가기 전 감투봉을 찍기 위하여 다시 기맥 길에서 탈출하여 임도로 내려서서 감투봉을 진입하는데, 들머리는 잘 잡았으나,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은 탓에 길이 많이 흐려 있었다. 감투봉 오르는 능선에서 부터는 등산로로 만들어진 밧줄과 함께 제법 좋은 길이 나타났다. 감투봉은 군유산 부근에 감투봉이란 이정표는 있었으나,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기도 걸려 있지 않았다. 군유산은 많이 알려진 탓에 등산로, 이정표, 정상에 안내판, 정자 그리고 조망 모두가 멋지게 되어 있었다. 군유산에서 상치봉으로 가는 길도 선명하게 나 있었으며, 상치봉 가기 전 연흥사란 큰 절이 있었는데, 절의 간판에는 서운산, 등산로에는 깃대봉,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는 없었지만, 내가 가진 지도에는 상치봉, 그리고 마애불좌상의 간판에는 사치봉 모두 4개의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월암산 삼거리에서 월암산까지는 길은 조금 흐리지만 고도의 차이가 심하지 않아 편히 다녀 올 수 있었고, 월암산 삼거리에서 용암마을로 가는 길은 이정표와 함께 선명하게 길이 나 있었다. 마지막 돌매산으로 가는 길은 임도에 있는 정자에서 돌매산 정상을 거쳐 조양마을까지 가는 길은 인적이 없어 전혀 길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산행을 마무리 하고 조양마을로 들어 서는데, 어제와 오늘 아침에 만난 할아버지를 또 만난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산은 잘 돌고 왔냐?시며 술이라도 한잔 같이 하자는 말씀에 깊은 감사의 표시를 전하며 오늘 산행을 모무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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