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

고령산(高嶺山), 첼봉

꼴통 도요새 2017. 5. 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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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개명산, 고령산

 

1. 산행지: 개명산(開明山 546m), 고령산(高嶺山 622m)

2.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백석읍 기산리, 파주시, 고양시 일원

 

9. 산행 코스: 권율장군 묘 ~ 송암천문대 ~ 형제봉(개명산 정상: 546m) ~ 앵무봉(고령산 정상: 622m) ~ 봉화대 ~ 기산저수지(총 소요거리: 9.3 km)

10. 특징:

형제봉

고령산(앵무봉, 622m)으로 행하는 남쪽 능선 길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봉우리다. 형제봉의 유래로는 옛날 형제가 살았는데, 이 봉우리를 지나 서로 왕래하며,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에는 군부대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서 목암고개에서 형제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자주 통제되곤 한다. 그래서 보광사에서 고령산을 오른 뒤 원점회귀하는 산행이 일반적이다. 형제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편안한 흙길 따라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북정맥이 뚜렷이 조망된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오다 두류산을 지나 식개산 분수령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다. 남으로 향하는 백운산, 운악산 자락은 다시 호명산, 도봉산으로 이어진다. 형제봉에서는 이 산자락이 오롯이 바라다 보인다.

[개명산 고령산 유래]

開明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는 高嶺山 또는 高靈山으로 불리었다. 모두 산이 높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 후로 한때는 鷄鳴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여비고(東輿備考)[1682]에서는 고령산을 일명 개명산으로 하였고, 동국여도(東國輿圖)[1801~1822]에는 高靈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령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전기부터 나타난다. 세종실록 1448(세종 30) 1210일조의 기록에 삼군진무소에서 고령산 등을 강무장(講武場)으로 정할 것을 건의하는 기사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령산 또는 高嶺寺[현 보광사(普光寺)]와 관련된 기사가 모두 7건이나 등장한다.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이 고령산에 있었기 때문에, 특히 영조와 정조 시대에 임금이 이곳으로 행차한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

개명산, 고령산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백석읍 기산리, 파주시 광탄면, 고양시 벽제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622m이다. 개명산은 원래 고령산(高嶺山 혹은 高靈山)이라 불렸고, 그 후 한때 계명산(鷄鳴山)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동여비고(1682)는 고령산을 일명 계명산(鷄鳴山)으로 부른다고 하였으며, 동국여도 (1801~1822)는 고령산의 한자를 고령산(高靈山)’으로 적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고령산이란 이름은 15세기 중반의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 30(1448) 1210일 조에는 삼군진사무소에서 고령산(高嶺山) 등을 강무장(講武場) 즉 왕의 수렵장소로 정할 것을 건의하는 기사가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령산 혹은 고령사와 관련하여 총 7건의 기사가 확인된다. 특히 영조정조대에는 왕의 행차기록이 있는데, 숙빈(叔嬪) 최씨의 묘소인 소년원(소령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개명산은 꾀꼬리봉, 즉 앵무봉과 연이어 있는데, 이들 연봉 모두를 개명산 혹은 앵무봉이라고도 한다. 꾀꼬리봉이라는 이름은 산줄기가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끔 기산리와 장흥면 석현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또 다른 꾀꼬리봉과 혼동하여 불려지기도 한다.

일영봉(日迎峰)은 일영리라는 마을이름의 유래와 관련되어 있다. 그 유래는 첫째, 해가 제일 먼저 솟아오르기 때문에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며, 둘째는 동쪽을 향해 있어 해를 바라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셋째로는 중종의 비 신씨가 폐출된 후 친가인 일영리 절골에 거주하면서 절을 짓고 부처님에게 임금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즉 하루 종일(終日) 산에 올라 임금을 위해 기도하였다(迎山拜禮) 하였으니, 여기서 자와 자를 따와 봉우리 이름을 지은 것이라는 설이다.

주변에는 장흥관광지, 돌고개유원지, 기산유원지, 일영유원지 등이 있으며, 장흥 조각 아카데미, 장흥 아트파크, 송암 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과 온릉(사적 제210) 및 권율장군묘(경기도기념물 제2) 등의 문화재가 있다.

 

[권율장군묘] ; 경기도 기념물 제 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권율(15371599)과 정부인 창녕 조씨, 후부인 죽산 박씨의 묘이다. 권율은 안동 권씨로 선조 15(1582)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의주목사로 근무하던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목사에 임명되었다. 한양 수복을 위하여 북상하였으나 용인싸움에서 패하자, 다시 광주로 되돌아가서 군사를 모아 충청도 금산 이치 싸움에서 왜적을 대파시켜 전라도 지역을 지켰다. 이어 함락된 한양의 수복을 위하여 다시 북상하던 중, 수원 독산산성에 진지를 구축하고 왜군의 진격을 막았다. 이후 행주산성으로 진지를 옮겨, 권율이 일사분란하게 통솔하고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 대승을 거둔다. 권율은 이 공으로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으며, 선조 29(1596)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1599) 관직을 물러나 그해 세상을 떠나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일반적인 묘역구조는 봉분 앞에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 앞에는 장명등이 있고, 그 양쪽으로 망주석, 문인석을 각각 1쌍씩 세웠다.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공신이나 훌륭한 학자에게 허용되었던 것으로 묘의 남쪽 가까이 세웠다. 권율의 묘역은 이러한 원칙에 비교적 충실히 하였다. 권율의 묘소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각1기씩 있다. 그리고 무덤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인 망주석과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세우는 동자석·문인석이 각 1쌍씩 세웠다. 묘역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가 비문이 닳아 없어져, 철종 12(1861)에 권율의 후손들이 새로 건립한 것이다. 1971년과 1999년 정화사업으로 묘를새롭게 단장했다.

 

[보광사 普光寺]

보광사는 신라시대인 894(진성여왕 8)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국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215(고종 2) 원진국사(元眞國師)가 중창을 했으며, 법민대사 (法敏大師)가 목조불보살상 5위를 조성하여 대웅보전에 봉안하였다. 1388(우왕 14)에는 무학왕사(無學王師)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22(광해군 4)에 설미(雪眉), 덕인(德仁) 두 스님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고 도솔암(道率庵)을 창건하였다. 1634(인조 12)에 범종(현 숭정칠년명동종·現 崇禎七年銘銅鐘) 봉안 불사가 이루어졌다. 1667(헌종 8) 지간(支干), 석련(石蓮) 두 스님이 대웅보전, 관음전 등을 재건하는 등 절을 중수하였다. 1740(영조 16)에는 보광사 인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 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淑嬪催氏)의 묘인 소령원 (昭寧園)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대웅보전과 광응전 (光膺殿)을 중수하고 만세루(萬歲樓)를 창건하였다. 1863(철종14)에는 쌍세전(雙世殿), 나한전(羅漢殿), 큰 방, 수구암(守口庵) 등을 새로 짓고, 지장보살과 시왕상, 16나한상 등 각 전각의 탱화 등을 나한전과 쌍세전에 봉안 하였으며, 1898(광무2)에 인파(仁坡)스님이 상궁 천씨(尙宮 千氏) 등의 지원을 받아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중수하고 그 후 순빈 엄씨(淳嬪 嚴氏)와 상궁 홍씨(尙宮 洪氏)의 시주로 단청 하는등 절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조선왕조 제17대 영조가 52년간 왕을 했고, 80세까지 장수하였는데, 생모라 하여도 숙빈은 신하라 왕이 찾아 볼 수 없어서, 인근의 "보광사"에 토지를 주어 정성 것 모시게 하였고, 왕은 "보광사"까지만 오고 대신들은 "소령원"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 보광사는 명당이어서 동양철학을 하는 외국 지질학자들도 많이 다녀간다고 한다.

 

산줄기이야기

 

오두지맥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어 휴전선을 넘어 달려오던 한북정맥이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청계산, 운악산, 수원산, 죽엽산을 지나 한강봉에서 첼봉을 향해 가다 오른쪽으로 가지를 쳐서 오두지맥을 만든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오두지맥은 말머리고개, 개명산(560m), 됫박고개, 월룡산(229m), 을 한강 하류에 접해 있는 오두산(110m)에서 맥을 다하는 약 4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오두지맥은 신산경표에서 그것을 한북정맥이라고 해석하고 기존의 한북정맥이 도봉산을 지나 파주의 장명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지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새로운 정맥 구분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오두지맥을 신한북정맥이라고 하지 않고 그대로 오두지맥으로 해석하고 산행을 진행한다.(출처: 금강송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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