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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및 전설 173

관룡사[觀龍寺]

관룡사[觀龍寺] 주소: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내용[1]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관룡산은 구룡산(九龍山)이라고도 한다. 역사적 변천 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서 많은 문화재와 경치 좋은 사찰로 널리 알려졌지만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은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의 창건설화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야에 전해졌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예증이 되기도 한다. 그 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였는데, 보통 이를 창건으로 삼기도 한다. 삼국통일 뒤에는 원효(元曉)가 1,000명의 중국 승려에게 『화엄경』을 ..

유적및 전설 2022.03.21

만어사(萬魚寺)

만어사(萬魚寺) 주소: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내용[1] 이 절은 46년(수로왕 5) 수로왕이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서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雷雨)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하였다. 수로왕은 주술(呪術)로써 이 일을 금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였으므로 예를 갖추고 인도 쪽을 향하여 부처를 청하였다. 부처가 신통으로 왕의 뜻을 알고 6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說法授戒)하여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수로왕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

유적및 전설 2022.03.21

황희[黃喜]

황희[黃喜] 1363(고려 공민왕 12)~1452(문종 2), 조선 전기 문신이다. 자 구부, 懼夫, 호 방촌, 厖村, 시호 익성, 翼成 저서(작품), 방촌집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대표관직(경력)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부사 해설 1376년(우왕 2) 음보로 복안궁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그리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년(공양왕 2) 성균관학록에 제수되었다. ..

유적및 전설 2022.01.26

무장현 관아와 읍성[茂長縣官衙와邑城]

무장현 관아와 읍성[茂長縣官衙와邑城]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49-1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아와 읍성. 읍성은 1417년에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쌓은 평지성으로, 길이는 약 1.2km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세 칸, 옆면 두 칸의 2층 건물이다. 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이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이다. 무장면은 전라북도 고창군 중앙부에 있는 면. 북쪽에는 송림산(295m)·한제산(210m) 등 200m 이상의 산들이 솟아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구릉지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소규모의 하천이 면내 곳곳을 흐르며, 관개를 위한 저수지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수박·메론·복분자·고구마 등이며, 각종 채소류도 많이 생산된다.

유적및 전설 2021.07.06

해미읍성

해미읍성 (海美邑城)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읍성.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며 옹성이 없다.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제116호.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가 15척, 성 안에는 3개의 유물과 군창이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

유적및 전설 2021.03.29

개경포

고령 개경포 경북 고령군 개진면 성산가야 [星山伽倻] 삼국유사에 5가야의 하나로 전해지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있던 나라. 벽진가야(碧珍伽耶)라고도 한다. 성산(星山)이라는 지명은 원래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757년(경덕왕16)에 일리군(一利郡:고령군 성산면)을 개칭함으로써 생긴 것이다.... 이 지역의 지방호족이었던 이총언(李棇言) 세력이 신라 말에 반신라적인 명분의 하나로서 성산가야라는 국명을 조작해 냈다는 것이다.... 본래 이 지역에는 벽진국(碧珍國)이라는 독립소국이 있었다가 4세기 말 이후 신라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결국 6세기 초반 무렵에 완전히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기존에 성산가야는 금관가야(金官伽倻)가 중심이 된 전기 가야연맹의 하나였다가 후에 신라의 영향권에 편입된 나라라고 이해하..

유적및 전설 2021.01.19

논개

논개[論介] 출생/사망: ? ~ 1593 본관 : 신안 주씨 국적 : 조선 출생지 : 전북 장수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여인 논개의 성은 주씨이며 전라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훈장을 하던 주달문,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나름 양반가의 딸이었던 것이다. 논개가 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딸과 자신의 생계를 시동생 주달무에게 의탁한다. 주달무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논개를 마을부자이던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먹고 달아났다.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논개의 어머니는 친정으로 도망을 갔다. 돈을 낸 김풍헌은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맡은 것이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방..

유적및 전설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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